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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만 자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속도모르... |2008.10.30 22:11
조회 3,336 |추천 0

 

 

안녕하세요^^..

스물 한 살인 대학교 다니는 평범한 여자입니다. <- 다들 이렇게 시작하시길래^^;

요렇게 시작들 하시길래 이렇게 시작해봤어요..

먼저 제 글을 클릭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편견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삶을 한번에 쓰려니 말하지 못한게 많아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도 있고요..

이렇게 길지만..

읽으신 것만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격려 한마디만 해주세요..

 

 

사실 지금은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 좋은 어머니 좋은 동생 그리고 좋은 아버지.

제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면 유년기. 그 뿐 지금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비록 기초생활수급자이고 모두가 떨어져 살고있긴 하지만요..^^;

 

어떻게 말하면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7살 때 아버지 사업 실패하셔서 모든게 무너졌습니다.

모든 재산에 빨간 딱지.... 우리 가족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영화처럼 아버진 잠적하시고.. 정말 말그대로 영화였죠..

어머니와 7살인 저와 4살인 동생만 덩그러니 남았으니까요..

그리고 함께 남은건 어머니 앞으로 4억이라는 빚.. 아버지께서 좀 큰 사업을 하셨었어요..

10년 전에 4억이면 어느 정도이신지 아시겠죠..

참 웃기죠? 어머니께서 지금도 말씀하시더라구요.

"하하. 웃기지? 빚이 4천도 아니고 4억이래 "

이렇게 기가차게 웃으시면서요. 물론 13년 전엔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없었겠죠.

지금은 지나왔고 일어섰기 때문에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요..

 

당시 어머닌 어린 저와 제 동생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시다가

키우기로 결정했고 외할머니에게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저희와 함께 살 수 있을 때 까지 열심히 홀로 돈을 벌 것이고

그 만큼 돈을 모으면 꼭 아이들을 데려가겠다고요.

하지만 네. 모두가 말렸습니다.

네.외삼촌. 큰외삼촌. 큰외숙모. 이모. 이모부. 그리고 다른 모든 친척들이 말렸습니다.

 

니가 왜 아이를 키우냐고.

고아원에 보내든지. 입양시키든지.

나이도 젊은 니가 (당시 어머니 나이가 30세셨어요.) 아이들을 왜 맡느냐.

아이들 다 할아버지 집으로 갖다줘버리든지

애들 그냥 고아원에 보내고 재혼해서 잘 살라고.

 

그런데 엄만 그게 싫으셨나봐요.

어떻게 내 배로 내가 낳은 아이를 버릴 수 있냐고.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내가 못 키워도 아빠한테 줄 수는 없다고.

(아버지가 사실 사업실패 이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톡에 자주 나오는 그런..)

이 때 엄마가 얼마나 수많은 눈물을 흘렸고 고생하셨을지 눈에도 훤합니다.

 

그렇게 7살인 저와 4살인 제 동생은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맡겨졌습니다.

그 때부터 제 슬픈 유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죠. 이런 상황일 때 누구나 엄마에게 그랬을거에요.

애들 너가 키우지말고 입양시키든지 하고 새 삶 시작하라고요..

그런데 왜 다들 아이들 생각은 하지 않을까요..

제가 그 아이들이 입장이 되어봐서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엄마가 그랬어요.

꼭 1년뒤에 너희를 데려올게.

지금은 함께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니까 돈 많이 벌면 꼭 데려올게.

조금만 참으면 우리 행복하게 함께 살자^^

 

그 때부터 저와 제 동생의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요.

날이 가면 갈 수록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습니다.

막상 쓰려니 또 눈물이 나오려 하네요..^^;;

저와 제 동생의 그 때 소원은 <엄마와 함께 사는 것> 이었으니까요.

매일 밤 손이 닳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꼭 내년엔 엄마와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저의 소원은 그 뿐이에요 꼭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가끔은 초등학생인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전생에 어떤 죄를 지어서 이렇게 엄마와 떨어져 살게 하셨냐구요..

용서해달라고요..

 

어머닌 서울에서 일을 시작하셨고 시골에 있는 우리를 보러 한 달에 한번씩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내려오는 그 한달에 한번을 매일 손꼽아 기다렸고

엄마가 오는 날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동생과 난 엄마 손을 꼭 잡고 놓을 생각도 안 하고 엄마와 하루종일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떠나는 밤이 오면.. 그 때부터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잠자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집에 갈땐 울지 말아야지.. 꼭 울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요..

엄마가 서울가는 버스를 타러 갈 때면 예외없이 눈물이 펑펑 나더군요.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그 때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은 절 위로해줬습니다.

세 살이나 많은 누나가 엄마 갔다고 그렇게 우는데

어린 제 동생은 눈물 하나 안 보이고 꿋꿋하게 제 눈물을 닦아주더군요..

항상 그랬어요..

 

그 때 우리 남매에게 의지할 사람은 서로밖에 없어서 그런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와 제 동생은 사이가 매우 각별합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아홉살이 되어 엄마에게 우리 같이 안 사냐고 물어보았을때

엄마는 아직 힘들다며 1년만 더 기다리라고 하셨고

그렇게 1년을 더 기다려 열 살이 되었을 땐 엄마는 3년만 더 기달려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엄마가 저흴 버리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고마워

행복함으로 마음을 달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일기를 쓰고 매일 밤 기도를 하고

아무도 없는 논 밭에서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께 묻고 또 묻고..

하지만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저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TV를 보면.. 정말 슬프게 여기는 거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10살 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많은데 이렇게 버리지 않아줘서 고맙다구요.

그 때 엄마가 전화 빨리 끊어야한다면서 허겁지겁 끊더라구요..

나중에 말씀해주셨는데 너무 눈물이 나서 전화를 더 할 수가 없었대요..

 

그렇게 저와 제 동생이 할머니네서 엄마 아빠와 떨어져 6년동안 살았습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초등학교 6년을 다녔습니다.

차라리 이 그리움 하나로 6년을 보냈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슬픈 일이 많았습니다.

 

명절이라도 되면 할머니네에 친척들이 붐볐는데 그 때마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눈치가 보여서요..

저희도 그 때 알았어요. 친척들이 저랑 제 동생 싫어하는거요..

저랑 제 동생 아니었으면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테니까요..

단지 외숙모의 모자를 만졌을 뿐인데 니가 왜 만지냐며 맞기도 했었으니까요..

단 한번도 친척들 품에 안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친척동생들이 안기는 것만 보면서 그저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만 했죠..

친척들이 우릴 고아원에 보내고 싶어하는 것도 알았고

어느 날인가는 외삼촌이 엄마에게 말도 없이 저희를 할아버지댁에 두고 온 적도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그 때 그걸 알고 너무 많이 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초등학교 다니면서 친구들한테도 마음 아픈 소리 많이 들었었어요.

어릴 때니까 당연히 철이 없었겠지만

" 엄마 아빠도 없으면서 "

이 말이 얼마나 가슴에 아프던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네요.

그 때 울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어요. 속으로만 말했죠.

'아니야.. 나 그래도 엄마는 있어...' 이렇게요.. 부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요 그 땐 제게 엄마와 아빠가 없었던게 사실이었으니까요.

 

이렇게 6년을 보냈네요.

열심히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나봐요

(아. 참고로 전 기독교는 아니에요..^^; )

6학년이 되고 11월이 되자 어머니께서 함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어머니 혼자 번 돈으로 살 수 있었던게 아니라 정말 기적같게도

빚이 자동으로 없어진 것도 있었고 여러모로 여기저기서 도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따로 만나시는 분도 계셨구요.

 

그렇게 드디어 함께 부대끼고 살게 되었어요. 소원이 이루어진거죠.

그 때 그 행복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그 행복함이요.

하지만 처음엔 아빠가 날 버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엄마에게도 버림받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잔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자 그런 두려움은 점차 사라졌고

그 후부터는 활발하고 낙천적으로 성격이 바뀌더라구요.

 

건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어릴 때 경험 때문인지 독하기도 했고요.

어느 누구도 제가 그렇게 살았다는걸 의심할 수 없을만큼

저는 매우 평범해보였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도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래저래 하다보니 아버지와도 연락이 닿았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함께 연락하면서 가끔 만나기도 하며 지내는데요..

 

이젠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어린 시절에 불행했던 시간을 보상 받고 싶은 심리가 있었나봅니다.

저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약간 아기처럼 구는 일도 있었구요.

심리적인 것이겠죠. 고착단계로의 역행 같은 거요.

 

그 시절에서 배운게 참 많고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좋은 것을 많이 배웠고 인생의 지혜를 많이 배웠습니다만..

사람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어요.

성격에 어떤 결함같은 것도 없구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뭐 딱히 다혈질이라든지 통합력이 없다든지.. 이런 것도 전혀 없고..

그냥 정말 아무도 '쟤 과거에 안 좋은 경험 있었을 것 같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만큼

제가 참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거든요.. 참 감사하죠..

 

어쨌든 그런데 같은 과 언니랑 밥 먹으면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면서 어리광도 많이 부리고......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한테 그러더군요.

 

"너 받고만 자란 애 같다."

"너 받고만 자란 애 같다."

"너 받고만 자란 애 같다."

 

.........................

그 말을 듣는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긴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그냥 그 자리에서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고등학교 땐 아픔이 컸고 여전히 삶에 대한 여유가 없어서

참 조숙했어요. 어린 나이에 많이 성숙했다고나 할까요. 그런 소릴 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기가 다 지나갔고 더이상 어른인 척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이젠 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요?

 

어른처럼 행동해야만 어른답다는 말을 듣는게 너무나 싫네요..

전 정말 받고만 자랐다는 말을 듣는게 옳은 것일까요?

 

그냥 들은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어릴 때의 시간들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나는 '받고만 자랐다'는 말을 듣기위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던게 아닌데 말이에요..

 

휴.. 제가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게 웃긴 행동일까요?..

너무 긴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길게 써서^^;;;....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어머니 사진이에요.. 한 3년 정도 됐는데 (40대 초반이실 때)..

두번 째 사진은 어머니 20대 중반이실 때 사진이구요^^..

저희 어머니도 좀 동안이시고 미인이셔서.. 고생하고 사신 걸 모르는 분들이 많답니다 휴..

어쨌든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우신 어머니랍니다.

엄마 사랑해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한마디 모두 모두 소중히 여길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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