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지 어느덧 3년..나름 치열하게 살았는데.. 결과는 처음보다 못하네요. 오히려 더 힘들고, 힘듭니다.제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이전 내용들을 나열하려다가 지우고 다시 씁니다.. 쓸데없는 내용인 것 같아서..저는 아르바이트와 편입공부를 병행했습니다. 홀어머니가 계셨지만, 수입은 빠듯했고, 학업만을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습니다. 편입공부가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1년여정도..그때쯤 헬스를 통해서 약 반년만에 몸무게를 15kg감량하면서 자신감도 상승했었던 때인데..도전욕구가 생기더군요.. 대학진학해도 현재의 가정형편으로는 제대로 대학을 다닐 수 있을지 의문에 휩싸인 상태이기도 했구요.그래서 찾아보게 된 것이 사업아이템입니다.그러다가 소자본 창업 아이템들을 선별하게 되었고, 반년도 안돼어서 쇼핑몰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반응이 예상보다 좋았습니다. 오픈마켓 입점 후 둘째주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한달만에 사무실 및 여러가지 사업비용들을 내고도 돈이 남을정도가 되었으니 자신감이 남달랐지요.두달째즘.. 여러가지 사업비용을 지불하고, 가족들 외식시켜줄 정도의 수익까지 발생했습니다.아르바이트보다 나은 상황이 되었지요. 여기서 사업 초보자이자 실무경험이 없던 저는 낙관하게 되었습니다. 5개월즘 접어들었을 때는 수익이 직장인 수준으로 봐도 될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 바로 사업의 규모를 두배로 키우기 위해서 중소기업청에 대출을 신청하게 되었고, 부채를 안은 채로 사무실 역시 서울로 옮기게 됩니다.비용은 순식간에 두배,세배가 되었습니다. 약간의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죠.그리고..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협력업체에 서버증설 및 수익창출을 하는 프로그램의 규모 증설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약 세달여간 수익이 반의반토막나면서 마이너스가 커졌습니다..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루종일 매달리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여기서 또 사업초보자는 업체측에 별다른 요구도 않고, 해결에 집중만 하고, 해결이 되자 업체측의 부주의에 대해 문제도 삼지않고, 다시 판매에 집중하게 됩니다.이 상황을 겪으면서 가뜩이나 적은 자본을 가졌던 저는 순식간에 휘청이게 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버티자 다시 수익이 늘어가는게 보이더군요.문제는 또 발생하더군요.. 해당 사업아이템이 갑작스럽게 전국적으로 뉴스보도될정도로 이슈가 되자 정년퇴직자들일까요? 갑작스럽게 비슷한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됩니다.수익이 다시 이유없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버텨보려고 직장까지 들어갔습니다.쇼핑몰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 너무나 아깝고, 그걸 포기하면 실패자가 되는 거 같고, 꿈도 잃는 상황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업아이템의 특성상 퇴근후에도 업무를 하면 운영이 가능했습니다.물론, 추가적인 수익 창출을 하기엔 역부족이지만, 이미 구축해놓은 컨텐츠와 상품들만으로도 적지만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문제는 또 생기더군요.. 직장 출근 후 퇴근 후 쇼핑몰 주문접수, 발주업무, C/S업무까지.. 하다보면 늦은 새벽에 잠들기 일쑤.. 거기다가 때는 12월을 지나 1월.. 그 상황을 지나 환절기로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몸이 급격히 나빠지더군요. 하루종일 극심한 두통과 몸살에 시달리길 한달여..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고, 그 한달간 쇼핑몰의 유지조차 힘들어해서인지 해당 사업아이템의 필수요소인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해주질 못 했고, C/S업무와 취소등의 컴플레인만 처리하기 바빴습니다. 간신히 유지하던 그 수익조차 사라져가는걸 목격한 저는.. 절망에 빠집니다.대출에 대출.. 절대 해서는 안됐을 짓을.. 자영업자들이 불경기에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대출받기.. 를 저도 하고 있었습니다. 재기의 여부도 알지 못 한 채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 목적과 의미도 잃은 채 어떻게든 유지하고, 다시 살려보려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하지만, 너무 늦었을까요.. 악화된 상황속에서도 비용은 꾸준히 발생했고.. 여기서 유능한 실무 경험자들이라면, 해당 비용들을 진즉에 끊었었겠지만, 저는 그 기회조차도 예전에 놓치고 말았습니다.결국, 폐업.. 조차도 할 마음도 의지도 사라진채로 서울의 모든걸 정리하고 다시 어머니가 사시는 지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만해도 열정을 완전 잃은것은 아니었습니다.그리고 애써 괜찮은척 웃으며 주변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가족들을 안심시키며 지방으로 복귀했건만..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머리속을 떠나지 않습니다.조금만 현명한 판단으로.. 대처를 했다면, 결과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거기에 짊어지게 된 대출금 수천만원.. 난생처음 얻은 빚에 대한 부담감과 후회와 미련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지방으로 돌아올때의 그 마음가짐은 점차 무너졌습니다.그게 6개월을 갔습니다. 가족의 질타와 비난어린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사회속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습니다. 다시금 실패할까봐.. 정신차린건.. 휴대폰 요금조차도 내기 힘든 상황이 도래했을 때였습니다.. 진즉에 연체가 되었지만, 쌓이고 쌓여 정지가 될 상황이었고, 대출금의 독촉 역시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법원에 접수가 되고, 법정에서 행정서류가 집으로 날아오자 현 상황이 최후통첩이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까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그길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급한대로 근처 강소기업의 성수기 물량 처리를 위한 단기계약직 3개월로 제조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움직이는 일이었고, 급여도 생각보다 셌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분들과 함께해서일까요? 저 역시 전처럼 다시 살아나던 시기가 이때였습니다.다시금 헬스를 시작했고, 주말까지 정말 쉴틈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일을 하면서도 대출을 해결하는 법을 알아냈고, 신용회복위원회에 요청.. 일하는 도중에 승인 전화를 받고, 6개월간 시달리던 독촉에서 해방됨을 깨닫고, 날아갈듯 기뻐했던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계약기간이 끝나고, 바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이어서 금새 서울에 소재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쇼핑몰 때 했던 업무와 비슷한 업무였기에 금새 적응을 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근대 그것도 잠시.. 특이한 직장이었습니다. 퇴근후 단체로 게임을 시작합니다.매일같이.. 매일같이.. 집에 도착하면 밤10시 밤11시.. 실질적으로 부대끼는 상사들이 모두 참여하는거라서 빠질수도 없었습니다. 토요일엔 약간의 업무가 있어서 격주 또는 연속으로 출근했고, 점심먹고 퇴근..이 되어야 했지만, 토요일 역시 게임으로 밤에 집에 도착했고..그 상황이 이어지면서 저는 위기의식을 느꼇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냥 이대로 저들과 같이 이굴레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라는 강박적인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열정으로 시작한 서울 직장생활.. 단기 중기 장기적인 목표도 있었습니다. 이 직장에서라면 그 모든게 무너질게 눈에 훤하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다른 직장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일자를 잡는 이중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문제는.. 보통의 회사들의 면접일정이 퇴근후에 참여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걸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소규모의 기업만이 사장님이나 명목상의 이사일뿐일 인사담당자가 퇴근후의 시간까지 기다려준다고 했지만, 그 시간까지 갈 수 있는 거리의 면접장소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선택을 강요 받았습니다. 남아있거나 관둔 후 구직활동을 다시 시작해라.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앞선 실패..를 겪었고,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힘겹게 붙잡은 직장인으로서의 미래까지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저질렀습니다.일당직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의 월세와 생활비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울리며 사용한 카드금액이 눈앞에 아른거렸기에 재취직을 함에 있어서 쉴 수 없었습니다. 물류상하차 업무부터 포장업무까지.. 일이 있는 날은 출근하였고, 퇴근 후 새벽까지 이력서를 돌리며 면접들을 기다렸습니다. 면접이 잡힌 날에는 일당직을 쉬었습니다.이력서를 이백통에 가깝게 보낸 것 같습니다. 물량의 승부였을까요. 고맙게도 면접제의를 많이 받았고, 집근처 위주로만 지원했음에도 일주일에 두세군데의 면접을 보러 다녔습니다.면접 본 모든 곳에서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한달정도의 시간동안 면접없는 날은 일당직.. 매일같이 밤과 새벽까지 이력서를 돌리기.. 정신이 피폐해지더군요.. 맥주한캔으로 매일 술기운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던중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면접제의가 왔습니다.거리가 먼 곳 이었습니다. 이전에 연락왔던 곳이지만, 거절했던 곳이기도 하구요..재연락이 온 것입니다. 때마침 가장 기대했던 회사에서 면접퇴짜 메세지가 오더군요.상의결과 부적합한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좋은 곳을 찾길 바란다는 친절한 내용이..^^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갔습니다. 재연락이 온 곳으로..면접결과를 성공적이었습니다.급여 역시 전직장보다 많은 액수였고, 해당 업종에서는 신입이 받을 수 없는 급여였습니다.어느정도의 경력을 인정해해준다는 뜻이었지요. 저의 경험들을 좋게 봐주는 케이스와 그 반대로 봐주는 케이스의 인사 담당자들이 있는데.. 면접에 합격한 업체의 인사담당자는 전자에 해당했고, 추가적으로 저를 굉장히 호감으로 봐주셨습니다.여차저차하며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재취직에 성공하여 환희에 휩싸였고, 서울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계획했던 중단기의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모든 미팅이나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소극적인 태도의 사람들 속에서 그 행동은 굉장히 빛을 바랬고, 저는 단연 모두의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입사한 해당 업계에 경력이 저에 비해 상당했던 여성과 업무적으로 잦은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저의 적극적인 발언들과 행동이 못마땅한듯 부딪치기 일쑤였고, 전 저의 업무에 있어서 독립적인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상태였고, 정상적인 업무 수행에 있어서 다른 업무를 맡고 있던 해당 여성의 관섭은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하에 똑같은 논리로 대응을 해주었습니다.시간이 흘러.. 저를 채용했던 총책임자는 운영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퇴사를 권유받았고, 저와 업무적으로 다투던 여성이 해당 업종에 경력이 가장 길다는 이유로 책임자의 직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업무적으로 보복을 자주 겪기 시작했습니다.이전의 업무적인 트러블 때문인지 공식적인 석상에서 집중적인 조롱과 비판을 당했습니다.팀을 위해 팀의 일부라는 생각하에 참고 참다가 터지게 되었고, 말다툼 후 화해를 했지만,그 여성이 사장님께 보고 하였고, 타지에 있던 사장님은 전후사정도 모른채 저를 비난했습니다.저의 퇴직까지 이야기하시더군요.. 저는 크게 실망하였고, 버티려면 버틸 수 있음에도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게 큰 실수라는걸 당시는 몰랐습니다.퇴사 후 다시 재취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식은 전과 같습니다.달라진건 좀 더 나은 여건의 일당직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큰 규모의 업체에서 진행하는 일당직 업무였고, 급여도 좋고, 근무여건도 좋았습니다.알바이상의 급여였으니간요..그러던중 제의를 하더군요.. 저에게 알바가 아닌 공석인 직원의 역활을요..제의를 준 인사담당자와 여러차례 상담을 이어갔고, 다른데 취직되어 떠나도 좋으니 일단 해보라는 권유..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해당 업무의 급여는 여지껏 받았던 직장들의 급여를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니..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란 생각에.. 안정적인 상황에서 좀 더 좋은 직장을 구하자..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무 역시 오후에 하는 업무였기에.. 면접일정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도 들었구요.그게 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해당 업무에 제가 입사하던 시기가 성수기였고, 저는 굉장히 큰 대기업수준의 급여를 연달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안정감에 취했던 걸까요..재취업에 대한 활동은 소홀해졌습니다.급여를 많이 주는 업무의 단점이 있습니다. 누구든 저를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겁니다.경력이 쌓여도 인정받지 못 하는 업무였고, 저는 또다시 불안정에 시달리기 싫어서 급여가 적어도 처음 세웠던 직장생활의 중단기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원래의 직종으로 복귀하고자 바보같이.. 이때는 정말 바보같이.. 퇴사를 했습니다. 면접일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아..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누군가 봐주실지 모르겠지만, 뒷 얘기는 나중에 또 쓰겠습니다..별다를게 없는 내용이지만.. 글을 쓰면서 누군가에 이야기했다는 생각에 마음의 응어리를 털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