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is different.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항상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은 확실히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사람은 사람이라서 똑같다’. 이 말은 내가 한국사람이 외국 친구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할 때 하는 말이다. 분명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되는 외국 사람에 대해 나는 다른 점을 언급하지 않고 똑같은 점을 조언으로서 언급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그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다. 그에 따른 내 생각의 끝은 아마도 이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런던에서 이뤄지는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이 사람은 나와는 다를 거야”라는 방어적인 접근법보다는 “이 사람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는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라는 겉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사실상 굉장히 모험적인 접근법이 결국에는 덜 상처받기 쉽고 더 넓고 깊은 인간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살며 외국 친구들의 인생을 관찰해보면 결국 그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미친다. 영국에서 태어난 토종 백인 영국인 친구는 비록 내가 전날 숙취로 고생할 때 돈이 있으면 한국에서 돼지국밥을 먹거나 돈이 없으면 라면을 끓여 먹지만 그는 돈이 있다면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를 먹거나 돈이 없다면 감자튀김과 에너지음료로 아침 식사와 숙취를 동시에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포인트는 우리는 전날 다 같이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시며 시답잖은 이야기들과 담배 연기로 그 밤들을 채워나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다른 점을 볼 수 있는 것도 분명 인생을 살아가며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은 똑같다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며 선명하므로 우리는 쉽게 다르다는 것만 기억하고 비슷하거나 똑같은 점은 간과해버리기에 십상이다. 즉, 외국인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검거나 하얗거나 아니면 갈색인 피부 색깔의 친구들이 나와는 매우 다를 거라는 생각은 외국 친구들의 인종, 피부 색깔, 언어, 문화 등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요하고 필수적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짜 내 childhood 친구에 견주어도 멀지 않고 가까운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면 “이 외국인도 나와 똑같이 밥 먹고 똥을 싸고 대화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여자친구한테 차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좋아해서 예쁘게 가슴 아파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아주 싫어하고 저주하며 내가 자기의 편이 돼주길 원한다.”라는 생각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방법은 모험적이다. 단기적으로 더 많은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인간관계로 인해 더 힘들어하거나 때로는 내가 외국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결국 나중에 페이스북에 수백 명의 외국 친구들의 뉴스피드를 받아볼 수 있지만, 그 페이스북 메세지로 그 중 단 한 명과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만약 외국 친구가 나와 비슷할 거라는 전제하에서 그 친구를 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나중에 많지는 않지만 진정한 몇몇 외국 친구들을 페이스북이 아니라 카카오톡에 친구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사람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표면적으로 친한 관계 밖에 맺어질 수가 없다. 다름을 너무 확고하게 인지하면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 많은 배려를 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그렇게 되면 그 상대방도 그 정도의 높은 수치의 배려를 인지하게 되고 서로서로 조심만 하고 어디 놀러 가면 서로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사진만 찍다가 오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친구들은 우리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결국에는 쉽게 고민을 털어놓고 포옹과 어깨를 빌릴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 고민은 털어놓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선물과 함께 나도 나중에 사주어야 한다는 고민 덩어리만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친구가 나의 친한 친구라고 나누는 기준은 내가 이 친구와 있을 때 오 분 이상의 침묵이 어색한가 아닌가이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 또는 내 친구의 실수도 서로 용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다름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가장 좋은 외국 친구들에 대한 접근법은 이 친구에게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친구는 나와 똑같을 거야’라는 전제 속에서 나는 그 친구에게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다가가서 이야기할 것이며 분명히 나는 몇 가지의 실수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친구는 웃음을 터트리게 될 것이고 긴장의 끈을 서서히 풀 것이다. 물론 이 방법으로 ‘나와 이 사람은 잘 맞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잘된 일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누군가와의 사이가 멀어질까 봐 되게 노심조차 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왜 친구로 만들려고 나답지도 않은 행동을 하며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당연히 멀어지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100명의 페이스북의 친구보다는 나는 10명의 평생 친구를 선호한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내 생각들을 적어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