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 큐티 ^ ^ ♥
{마가복음 3:1~6}
[아무도 낙오하는 자 없는 승리!]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원어사전:
선한 good,ajgaqov"(18, 아가도스)
아가도스는 형용사와 실명사로 사용되며, 사물이나 인격의 탁월이나 중요성을 표현한다. 형용사로서 이 단어는 '탁월한, 우수한, 좋은, 선한, 훌륭한'을 뜻한다. 실명사로서 이 단어가 인격의 탁월성, 사물의 질, 또는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의 좋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 철학에서 도덕적, 영적 고결을, 헬레니즘과 성경에서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선(善)에 대한 접근 방식은 헬레니즘에서와 같이 종교적인 것이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구약성경에서 선의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선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은 인간의 힘의 통제권 밖에 존재한다(창 3:5).
(f) 세상에서는 선이라고 할 만한 아무 것도, 선하다고 할 만한 아무도 없다. 인간들이 세운 제도들 사이에 있는 옳음과 그릇됨의 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1) 하나님 홀로 선하시고 다른 아무 것도 선하지 않다는 것과 (2) 멜론타 아가타(장차 오는 좋은 것)는 그것들 안에서 죄와 사망이 폐하여 지기 때문에 오직 참된 아가도스이다는 사실이 알려 준다.
악행하다 do wrong, 해치다 harm.kakopoievw(2554, 카코포이에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코포이에오(Aeschyl. 이래)는 카코포이오스(kakopoiov", 2555)에서 유래했으며,
(a) '악을 행하다',
(b) '해치다, 해하다, 부당하게 대우하다(학대하다)',
(c) '파괴(멸)시키다'를 의미한다.
# 오늘 본문에 유대인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어떻게 트집을 잡을까 엿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3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무리, 그 무리를 막아 잡는 무리,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3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속의 당시에는 예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유대인과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열심히 돕는 동역자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겠습니다.
성경 속에서도 이와 같은 3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벨과 가인, 노아와 노아 시대 사람,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다니엘과 그를 막는 신하들,
다윗과 사울이 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정성들여 주님을 섬길 수 있을까 전심을 다합니다. 가장 육질이 좋은 나이 적은 어린양으로 제사를 드리며 정성들여 기름을 내어 온 마음을 다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는 제사를 드리고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아 다시 정성을 들일 것이 무엇인가를 회개 연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바라봅니다. 아벨을 시기하여 엿보며 어떻게 하면 흠을 잡아 죽일까 연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고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만을 엿보고 흠을 잡으려 합니다.
아담은 자녀의 분쟁을 중재하여야할 입장으로 훈육하여야 하건만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한 세 번째 부류의 사람같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전심을 다하여 방주를 짓고 그의 자녀들과 함께 동역하며 주님의 일을 하는 자가 있고
하나님은 바라 볼줄 모르고 하나님과 노아를 무시하고 노아를 때때로 엿보며 모욕하는 당시의 사람들이 있고
노아의 일에는 전혀 무관심한 멸망당할 가인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다니엘 때에는 늘 정기적으로 누가 뭐라 하든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만인의 사람들 앞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다니엘이 있는 가 하면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엿보아 그의 흠을 잡아 시기하고 죽이려는 신하의 무리가 있고
다니엘과 그의 신하들의 갈등에는 전혀 관심 없고 신상을 제작하고 그에 경배하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왕과 백성의 무리가 있습니다.
다윗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시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 전심을 다하여 연구하고 자기 백성을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울 수 있을까 경건히 살아가는 다윗이 있는 가 하면
사람들을 바라보아 창화하는 여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사람인 다윗을 엿보아 어떻게 하면 시기하여 죽일까를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연구하는 사울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블렛셋이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벨과 노아, 다니엘, 다윗은 죽을 때까지 전심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었다는 것과 가인과 가인의 후손은 홍수로 멸망 당할때까지, 다니엘을 훼방한 신하들은 사자굴에서 죽을 때까지, 사울은 블렛셋 전투에서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두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섬기고 다 같이 동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이글을 보는 모든 분과 각 교회와 각 가정과 일터에서 누구하나 낙오하는 자 없이 같이 동역하며 사랑의 띠로 묶어 주님 앞에 다같이 칭찬 받을 때까지 동역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부류의 모든 이들이 돌이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해를 당하면 기뻐할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똑같은 사람인 이상 그가 또한 해를 당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오히려 더 마음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내가 그에게 당한 괴로움의 눈물보다 그가 큰 해를 당함으로 인한 괴로움의 눈물이 더 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와 가까운자나 먼자나 모두가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고 동역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원수인 사울도 귀히 여겨 사울의 죽음 앞에 사울을 죽이고 의기 양양한 자를 제거하고 블레셋을 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대대에 기억될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시를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그들의 죽음에 피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그들 외에도 자신을 괴롭힌 자의 해 당함을 늘 안타까워하며 대성통곡하고 매우 괴로워하는 것을 봅니다. 유대인의 행동이 어리석고 미워 보일지 몰라도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무지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었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내가 보기 안타까워도 그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형통하여 잘 되기를 바라고 축복하고 선대하고 남들에게 좋게 이야기하고 앞으로 잘 되어지기를 기도하여야 겠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과 생각과 비젼이 있기에 사람들은 제 각기의 갈 길을 가고 있기에 누구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영생 얻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기에 주님의 맘과 같이 축복하기를 항상 누구에게든 원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는 남한과 그들 기독인을 죽이고 방해하는 북한의 지도부 그리고 북한 우상화와 남한의 기독인과는 관련이 없는 배회하는 인물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3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든 잘 대하고 선대하고 모두 하나님께 돌아 오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상대를 어찌 하려기 보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모두가 다 주님께 돌아와 구원 받기를 기도하여야 겠습니다.
북한의 민족이 중국인에게 강간 및 인신매매와 설움을 당하는 것
우리 한국이 대국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
남북이 분단 되 열악한 현실에서 형제간 연합을 못해 나약한 우리들을 마음껏 모욕하는 그들을 볼 때 북한이 안되는 것에 마냥 좋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 남북한 형제간의 분열의 약점으로 인해 그들은 얼마든지 우리를 요리할 수 있는 수치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얼마의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끼리의 싸움은 열국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아직도 국어 책에는 기록이 되어 있나요 어슴프래 기억이 나는 것은 일제 강점기 배경으로 만주에 정익호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술망나니 동네 조선인들의 근심 덩어리입니다. 그러면서 그곳의 중국인들에게 끔찍하게 설움을 당해 죽어가?는 내용인거 같습니다. 나라가 어렵고 힘들고 같은 조선인 끼리 연합하지 못하고 자국 조선인의 고통 거리가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수치스런일까요 언제 쯤 그 젊은이가 철이 들어 같이 설움 당하는 조선인의 보호자요 기쁨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똑같이 중국인에게 설움을 당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방종으로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하는 것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반도의 현실은 아닐까요 한반도의 열강들에 의해 설움을 같이 한민족이 당하면서 같은 한민족끼리 같이 싸우고 있는 통탄한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로 연합하여 열강들에 대응하여도 부족할 판에 같이 핵과 포와 총으로 같은 민족끼리 전멸 시키기 위해 아웅다웅을 하고 있습니다. 둘이 싸우다 전멸하면 그 빈자리를 중국이 반을 채우고 남쪽은 일본이 채우겠지요 열강들은 은근히 우리의 다툼을 바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망나니 정익호는 다른 인물이 아닙니다. 서로의 분열을 유도하고 서로 전쟁을 유도 하는 남북한의 악한 싸움과 미움의 정욕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인간은 나날이 분열을 서로 유도합니다. 종국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 남북한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우상같이 우리 서로를 가로 막고 서있는 분열의 우상은 하나님만이 제거 하실 수 있습니다. 속히 평화 통일을 이루어 남북한의 한민족이 같이 손을 잡고 어깨 동무하며 같이 한라산과 금강산과 백두산을 오고 갈수 있는 눈물의 감격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 합니다. 아멘! 아멘!
사랑의 하나님, 나를 돕는 자든 반대하는 자든 모르는 자든 항상 축원하기를 원합니다. 선대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사랑없는 거리를 만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가 내게 해를 주더라도 모든 이를 선대하고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어제보단 더 나은 모습들이 되어지기를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북한이 밉기도 하지만 같이 한 피를 이룬 형제국가입니다.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의 마른 손에 새힘을 주시어 살게 하옵시며 그들의 마른 마음에 생기를 주어 하나님을 알게 하옵시며 자유로이 하나님을 믿는 구원의 북한 민족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 평화의 사랑의 기도와 마음이 열매를 맺어 기쁜 마음으로 한라금강백두를 마음껏 오가며 온세상의 기쁨과 감격과 평화의 눈물이 흐르게 되는 그날이 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