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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피해 입었어요" ㅡ 한국의 몰카문화...

명문입니다 |2018.01.10 08:56
조회 347 |추천 0



걸그룹 팬사인회에 ‘안경 몰카‘를 착용하고 왔다가 적발되어 망신을 당했다는 남성을 온종일 생각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가 아니라 ‘무엇이 그런 짓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몰카 범죄’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한국 사회를 생각했다. 여자화장실 벽면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조그마한 구멍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지하철 몰카 범죄. 여자인 동생이나 친적의 사진을 몰래 찍어 게시판에 올리는 일베 회원들. ‘몰카 영상’이 뜨면 삽시간에 모여들어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영상을 공유하는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몰카 장비들. 몰카는 찍는 것도 보는 것도 분명 범죄일 텐데 대체 무엇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몰카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고 가해자는 거의 남성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그 어느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남성 몰카 영상’을 공유해 즐기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남자화장실에서 몰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으며 인터넷에 떠도는 몰카 영상들은 언제나 여성을 주된 피사체로 잡는다. 그러나 몰카를 찍든 보든 유포하든 남성들 중 어느 누구도 죄책감을 보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들도 다 즐기는데 왜 나는 안 되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당당하게 유포자에게 자신의 이메일을 보내 몰카 영상을 요구하면서 오직 ‘재수가 없는’ 사람만이 경찰에 적발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들은 범죄를 범죄로 느끼는 마음속 감각기관이 없다.


범죄를 범죄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몰카 범죄는 수많은 남성들을 통해 자행되고 합리화되며 대물림된다. 이미 한국에서 몰카 범죄는 개인의 범죄가 아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몰카 장비. 함께 영상을 공유하며 죄책감을 벗어던질 수 있는 남성 동지들. 몰카 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찰과 판사들. 클릭 몇 번만 하면 인터넷에서 간단히 다운받을 수 있는 몰카 영상들. 몰카 범죄의 시작부터 끝까지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는 공정이 이미 관습이나 풍속 같은 것이 되어 존재한다. 한국에서 몰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집단의 문화다. 남성 중심의 몰카 문화가 존재하기에 남성은 몰카에 쉽게 빠져들고, 여성은 언제든 몰카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스스로에게 환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성들을 몰카 문화로 끌어들이는 기제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TV를 보며 밥을 먹다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TV 속에서는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걸그룹이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만약 어린 남자 아이라면 대중문화를 통해 맨 처음 접하게 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동화책 속 여성. 만화책 속 여성. TV 애니메이션 속 여성. 예능 프로그램 속 여성. 광고 속 여성. 교과서 속 여성. 드라마 속 여성. 영화 속 여성. 이 여성들의 이미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와 심리를 형상화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따로 교육을 받지 않는 한 남성은 여성의 이미지를 자신이 접하는 대중문화 속 이미지들을 통해 머릿속에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가부장성이 대중문화 속 여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성은 철저하게 대상화된다. 외모로, 신체로, 가사노동과 육아 전담으로, 비이성적이며 감정적인 대상으로, 남성에게 의지하는 존재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아이 낳는 기계로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가운데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 집단의 취향과 기준에 맞게 편집되고 재배열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성장하게 되는 남자 아이는 대중문화 속에 녹아 있는 성차별적 요소들을 일상 속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학습하게 된다.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대중문화의 성차별적 프레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법, 즉 여성을 피사체로 여기는 방법을 배운다.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남성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여성을 다루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어디를 봐도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시선에 포착되는 대상으로 묘사되지 남성에게 감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대상으로는 결코 묘사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금세 알게 된다. 대중문화의 프레임을 이식받은 채 여성을 인식하게 된 남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카메라의 렌즈가 되어 여성들을 관찰하고 품평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런 남성들이 한둘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집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렌즈’는 당연한 것이 되고,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일종의 ‘권력’이 된다. 이로서 남성들은 몰카 문화에 투신할 모든 준비를 마친다.


즉 몰카 문화는 여성을 피사체로 만들어 뽑아낸 이미지들로 가득 찬 한국의 대중문화가 필연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문화라 해야 한다. 대중문화라는 렌즈로 여성을 바라보던 남성들이 이젠 스스로 렌즈가 되어 여성을 피사체로 잡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기기의 등장은 성차별적 대중문화로 인해 점화된 몰카 문화를 또 다른 대중문화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남성들이 몰카 문화에 투신하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노력만 기울이면 되었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 왔던 것―여성은 나와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피사체일 뿐이고 피사체는 오직 찍는 사람의 쾌감을 위해 존재한다―을 어떠한 경우에도 의심하지 않는 것.


그뿐이다. 나머지는 수많은 남성 동지들이 알아서 도와준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몰카 문화에 뛰어 들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다.


여성을 피사체로 여기는 것. 즉 여성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물론 몰카뿐 아니라 다른 범죄 행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성 중심 사회와 남성 집단은 남성 개개인에게 다음과 같은 권력을 보장한다. ‘진정한 남성성은 여성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신체를 독점함으로써 여성을 지배한다.’ 폭력에 불과한 것을 마치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서 남성에게 대단히 큰 권력을 부여한다. ‘그래도 될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을 상대로 그 권력을 직접 행사하려는 남성들은 흔히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여성에게 갖가지 폭력을 가하는데, 자유의 박탈과 신체에 대한 소유욕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와 폭력의 공통적인 요소이자 몰카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다. 몰카 영상 속 여성은 ‘찍히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한 채, 영상을 시청하는 남성들이 오롯이 독점할 수 있도록 카메라 프레임 속에 갇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TV만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몰카 문화는 준비된 남성들을 위해 친절히 마련된 풀코스 요리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득였다. 문명을 거부하고 산 속에 들어가 살지 않는 한 모든 한국 남성은 어릴 때부터 여성을 피사체로 고정하는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점점 익숙해지다 언젠가는 몰카라는 것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몰카 문화는 남성들에게서 죄책감을 빼앗는 대신 당당함과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선물한다. 남성들에게 몰카는 수많은 음식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쿠폰북 속 맛나게 보이는 음식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남성들이 다 그러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작년 연말에 한창 뜨거웠던 광화문 촛불집회의 현장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광화문 네거리가 끝도 없는 인파에 푹 파묻혀 버린 날 그곳을 채운 이들의 숫자는 백만 명쯤이었다. 백만 명은 바로 몰카 커뮤니티 소라넷의 회원 숫자다. 회원과 비회원을 모두 합친 일베 이용자는 대략 6백만 명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화문 촛불 시민들의 여섯 배다. 그 외 몰카 영상의 공유가 활발히 벌어지는 남초 커뮤니티들까지 합치면 일부 남성들의 이야기라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숫자가 된다.


한국에서 몰카는 이미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인식을 학습하기 시작한 무수한 남자 아이들이 곧 몰카 문화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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