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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아동학대. 부모?

친미 |2018.02.12 22:32
조회 216 |추천 0
이 나라에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진짜 안 겪어본 사람이 드물 꺼라고 생각해 나는. 더군다나 그것이 대물림 되는 걸, 3대를 걸쳐서 내려오는 걸 직접 봤고, 심지어는 겪었던. 아니 아직도 겪어오고 있는 사람이 여기서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이런 가정사 어디가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거라 여기서라도 마음편히 풀고 싶어서, 물론 읽는 이는 마음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흔히 그러잖아, 사랑의 매. 근데 그게 제 3자의 입장이 아니라 맞고 있는 자식에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눈감고 지나가야 하는 걸까. 내가 너무 불편해하는 걸까.

늘 그랬어. 어느 날은 일기를 쓰지 않아서 맞았고, 막내를 돌보다 모서리에 부딪히게 했다는 이유로 맞았고, 또 어떤 날은 수학 문제를 많이 틀렸다는 이유로 맞았지. 근데 나는 매일 억지로 알지도 못하는 영어 문장 배껴써야 하는 일기가 싫었던 거고, 아무리 막내가 어렸다해도 막 중학생이 된 내가 어떻게 아기를 잘 다룰 수 있었을까 하며, 학원도 하다 다니지 않으면서 경시대회 문제집 끌어다 억지로 풀리며 동그라미가 쳐질 때까지 맞았어야 했을까.

처음에는 손바닥이었고, 너무 아파서 피하면 그 밑에 꿇고 있던 허벅지였어. 그 다음은 마구잡이로 휘둘러 종아리에도 멍을 달고 살았고. 손바닥에 든 멍, 무릎에 든 피멍, 종아리에 난 회초리 자국을 나는 넘어진 거라고 애써 무마했어 주위 사람들한테.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던 그 날밤. 나는 맞기 싫어 소리를 지르며 도망다녔고. 그 날도 사회생활에 얻어온 스트레스를 부득불 딸에게 풀겠다고 달려드는 아빠라는 사람은 화장실까지 들이닥쳐 나를 때리다 밀쳤어. 욕조에 부딪혀 코에서 다량의 피가 흘렀고. 나는 그 상황에서 그래도 걱정했길 기도했다. 웃기지. 그 사람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엄마가 오기 전 핏자국을 없애는 거였어. 옷을 갈아입으라 종용하다가 결국엔 샤워호스를 들고 찬물을 끼얹었어. 나는 소리를 질렀고 아파트 단지 내 고성방가에 신고가 들어갔지.

경찰이 왔고, 아빠라는 사람은 아무일도 아니라며 쫓아내기 바빴어. 정신없이 울고있는 나에게 경찰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부모의 말만 들은 채 돌아갔어.

그 다음 날 제 정신으로 학교를 갈 수 있었을까. 나는 무단결석을 했고, 결석사유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놨어. 선생님도 어릴 적 나와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같이 울어주셨어. 교무실에서 둘이 그렇게 훌쩍이는 소리만 가득했었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 기숙사의 자리를 어떻게 마련해주셔서 주말에는 방에만 쳐박혀있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겨우 끝냈어.

그리고 되물림. 그거 진짜 무섭더라. 엄마의 돈을 훔쳐 피씨방을 가려다 들킨 남동생에게 뭐라 하다 말싸움이 붙었어. 헤드셋을 끼고 아무렇지 않게 당당한 모습에 어이가 없어 식사 중인 앞접시를 쳤고 엎어졌지. 그리고 걔는 흥분해 나한테 달려들어서는 내 뒤통수와 오른팔을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어.

앞니가 부러져 살릴 수 없게 되었고, 오른팔이 뼈가 조각이 났고, 코에 피멍이 들었어. 나는 응급실에 갔고. 현재는 치아 교정, 깁스,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야.

나는 화가 났어. 대학교 생활을 막 시작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을 깽판 친 걔가 너무 당당하게 있는 게. 그래서 욕도 해봤어. 근데 걔가.

지가 잘못한 건 없는 줄 아냐.

난 이 말을 듣고 나서. 아, 이 집구석은 글러먹었구나. 애초에 정상이길 바랄 수가 없다는 것을.

괴담아니야? 자기가 겪은 일을, 당했던 일을 그대로 자기가 행했으면서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다니 말야.

나는 지금 교정에 드는 돈이 아까워 어쩔 줄 모르는 아빠라는 사람을 보면서, 저 행동을 하고도 남동생을 혼내지도 않는 그런 사람을 보면서.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그렇다고 엄마라고 내게 의지가 됬냐. 아니. 나보고 남자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대. 이렇게 다치고 난 후로 밥도 먹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보며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잘 살다가 왜 이러냐고.

진짜 그 사람 눈에는 내가 잘 살아왔던 거로 보였던 걸까. 자다가도 저 말이 생각나면 소리를 지르며 깨. 벼랑너머로 몰리는 악몽을 꾸고. 울고. 소리를 지르며.

사실 이렇게 쓰면서 더 울컥했어. 누가 이 긴 글을 읽어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의 시작이 술에 취한 아빠가 내 생일케잌을 부엌 싱크대에 집어던진 것부터야. 6살이었을 꺼야 아마. 이렇게 살아왔어.

난 언젠가 저런 괴물이 될까 무서워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미래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면 한 번만 뒤돌아보는 걸로. 약속해줬으면 좋겠다. 횡설수설 늘어놓고 나니 난 좀 후련한데, 짐을 떠넘기고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고마워 읽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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