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김미화 글 / 전옥란 (아름다운 세상 작가)
개그우먼 김미화가 올해로 방송 데뷔 20년을
맞았다. 19세에 방송을 시작, 줄곧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였으니 사람들은 실제 나이보다
위로 본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브라운관
밖에서 만난 김미화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 어깨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스스럼없는 태도가 참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하고 함께 있으면 저 사람은 밥을 먹었을까? 저 사람은 기분이 좋을까? 배려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 피곤한데도 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해요. 음악 크게 틀어 놓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혼자 있는 차 안이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인 셈이죠.”
『하루라도 웃지 않은 날은 공친 날이다』. 10년 전 김미화가 펴낸 개그 폭소집 제목이다. 20년을 ‘공친 날 없이’ 꽉 차게 살아온 때문일까. 배낭을 둘러메고 거리로 나서면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기발랄하다. 실제로도 대학교 3학년 생(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개그맨 후배들이나 01학번과 동기들도 ‘누나, 누나’ 부르며 따른다. 건강상의 이유로 지금은 떠났지만, kbs 「개그 콘서트」의 산파 역할을 했던 그녀가 방송국 간부를 찾아가 한 말도 “개그의 생명은 스피드. 젊어지지 않으면 개그의 미래는 없다.”였다고 한다.
“서세원 씨와 「코미디 세상만사」를 4년 정도 진행하다 보니, 제가 주부들이 좋아하는 코미디언으로만 국한되는 게 답답하고 싫었어요. 게다가 개그맨 실에 가 보면, 능력 있는 후배들이 선배들 커피 심부름이나 하면서 몇 년씩 보내는 게 마음 아팠어요. 그래서 ‘신인들과 현장 코미디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방송사에서는 ‘신인들로는 위험하니까 강호동, 남희석과 함께 하라’며 선뜻 허락하지 않았어요. ‘일주일 내내 연습해야 되기 때문에 안 된다’라고 고집을 부렸죠.심현섭 같은 경우는 6, 7년 동안 sbs에서 방송 시작 전에 바람 잡는 역할만 했거든요. 선배들이 볼 때는 굉장히 능력 있는 친군데 말예요. 그런 친구들 한 7, 8명 모아서 두세 달 연습해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개그 콘서트」였어요. 전유성 선배님이 ‘앵콜 코미디’라는 아이디어를 보태 줘, 틀이 확실히 잡혔죠. 젊은 친구들과 뭉쳐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 힘으로 저도 10년 정도 젊어질 테니 ‘김미화=젊은 연기자’가 되는 거고, 그러면 후배들 덕분에 저도 한 10년은 더 먹고 살 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도 했었죠. 하하하하~.”
유난히 인기의 부침이 심한 개그계에서 20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 온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이다.김미화 역시 ‘tv형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로 2년 넘게 뒤에서 동료들 연기를 지켜보던 신인 시절이 있었다. 배역 없이 스튜디오에 나오는 사람은 혼자뿐이었다. 창피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선배들 연기를 지켜보면서 ‘나중에 저런 역할이 주어지면 저렇게 해야지’, ‘저거보다는 요렇게 해야지’, ‘나중에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꼭 이뤄 내리라’ 수없이 다짐했다.
“지금 생각하니, 출연료를 받은 동기들을 따라다니며 눈칫밥을 얻어먹던 그때가 참 소중한 시절이었어요. 연기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전 코미디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내가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에 프라이드를 느껴요. mc를 해도 항상 코미디에 한 발을 걸쳐 놓고 있었어요. 지금도 코미디에 대한 생각을 하루 8시간 이상은 하는 것 같아요. 새벽 1시에 귀가하는 날도 서재에 들어가 책 읽고, 비디오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잠을 설치죠.”
가족들도 그녀의 스케줄에 맞춰서 생활해 왔다고 한다.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아이들을 친정 어머니한테 맡기고 주말에만 돌봐 온 그녀는 최근에야 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바쁜 엄마 대신 남편 김영남(46) 씨가 유림(12), 예림(8) 두 딸을 알뜰히 보살피고, 집안 살림도 척척 해낸다. ‘나는 참 이기적인 엄마’라고 자책하지만, ‘걸어 다니는 아이디어 사전’으로 불리는 전유성 씨가 “개그맨 생활 30년에 생각나는 건 아이디어 회의뿐.”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녀의 고충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어린 시절, 제 꿈이 코미디언이었어요.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드문데, 저는 굉장히 행운아죠. 어릴 때 아버지가 폐병으로 누워 계셔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거든요. 엄마는 보따리 행상을 하느라 집에 늘 안 계셨고요. 동네 어른들 앞에서 이미자 씨 노래도 부르고, 서영춘, 배삼룡 선생님의 개다리 춤까지 흉내 내면 모두들 잘한다고 부추겨 주셨죠. 그때부터 ‘코미디언이 되어야지’ 마음먹었어요.”
별명이 ‘까불이’였고, ‘서영춘, 배삼룡 선생님’이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해장국집을 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빨리 커서 코미디언으로 성공해 ‘불쌍한 우리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 1986년, 숯 검댕이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로 분장한 ‘쓰리랑 부부’로 마침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양옥집을 사 드리고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김미화는 남몰래 선행도 자주 베푼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현재 회원 가입을 비롯해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는 시민단체가 스무 곳이 넘는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자식을 둔 엄마로서 화가 나 지난 연말 ‘촛불 시위’에 참가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국회는 저를 전쟁 범죄국 국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저의 시위는 누구를 겨냥한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반대할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합니다.”라며 국회 앞에서 파병안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건 공부다. 누구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공부가 제일 힘들다.”고 털어놓는 그녀는 “사회복지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간 만큼 박사 과정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기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고 여기저기서 불러 대지만, 나중에 나이 들고 인기가 떨어지면 그때는 내가 스스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잖아요. 직접 가서 노력 봉사라도 하려면 제가 좀더 깊이 있게 잘 알아야 될 것 같아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돼서도 보람된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거든요.”
154cm, 42kg의 김미화. 갑자기 그녀가 훨씬 커 보였다. 그리고 이름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건 공부다. 누구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공부가 제일 힘들다.”고 털어놓는 그녀는 “사회복지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간 만큼 박사 과정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기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고 여기저기서 불러 대지만, 나중에 나이 들고 인기가 떨어지면 그때는 내가 스스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잖아요. 직접 가서 노력 봉사라도 하려면 제가 좀더 깊이 있게 잘 알아야 될 것 같아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돼서도 보람된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거든요.”
154cm, 42kg의 김미화. 갑자기 그녀가 훨씬 커 보였다. 그리고 이름처럼 아름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