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도에 거주중인 여학생입니다.
제주 4.3 사건이라고 하면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테고 관심 없으신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계속 4.3에 대해 알리지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무고한 희생자분들과 그 잔혹했던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부터 제주 4.3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긴 이야기고 귀찮으시더라도 한 번만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읽어주시고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제주도민 약 3만명이 모여서 제28주년 삼일절 기념대회를 열었고, 기념식 후 가두시위(길거리에서 행하는 시위)를 진행하는 도중 구경하던 한 아이가 기마 경찰의 말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마 경찰이 그대로 가려고 하자 일부 군중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심지어 사망자에는 어린 아이도 있었고 젖먹이 아기를 안은 여인도 있었습니다.이를 통해 시위대가 아닌 그냥 구경꾼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것을알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미군 정보보고서 또한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할정도의 과잉진압 이었고 경찰은 오히려 시위 군중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시위를 주도한 이들을 체포하였습니다.그리고 육지에서는 수백명의 경찰 지원 병력을 내려보냈습니다.
이러한 경찰의 행태에 항의하는 도민들은 3월 10일부터 중앙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민관 합동 총파업(일반 시민들 뿐만이 아니라 공무원들도 참여하는 큰 규모의 파업)을 열었습니다.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3.1 시위 당시 경찰의 발포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의 처벌, 유가족의 지원 등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도민들의 요구를 무시하였고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남로당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하여 파업에 참여한 경찰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서북 청년파 강경파 인물들이 육지에서 내려왔습니다. 서북청년파는 빨갱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죽이고 강간을 일삼았던 사실상 테러단체였습니다.그리고 이승만 정권은 서북청년단에게 보수 등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서북청년단은 제주도민을 약탈하였습니다.
이런 와중 제주도에 신임 도지사로 유해진이라는 사람이 왔습니다. 이 사람은 도민들의 의견을 듣지않고 강경진압을 하던 이였습니다. 1948년 경찰에 끌려간 청년 3명이 연달아 고문에 의해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하여 300여명의 무장대가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경찰서와 우익 인사의 집을 습격하며 봉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미군정이 파견한 김익렬이라는 경비 대장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무장대와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평화협정내에 방해공작(오라리 방화사건: 경찰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무장대가 하였다고 거짓증언을 하게 만든 사건)을 하여 협상이 결렬되고맙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우리나라는 정부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중에 이승만을 중심으로한 세력은 남한 지방에서라도 선거를 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구, 김규식등 분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거 불참을 주장하였고 남로당 무장대 또한 분단을 반대하는 세력이었기에 투표소에 불을 지르는둥 온갖 방법으로 투표를 막았습니다.이로 인해 제주도는 5.10 총선거 당시 62.8%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이승만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초토화 작전' 이라고 부르는 강경 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토벌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토벌대가 심심풀이로 주민들을 상대로 사살연습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이렇게 사망한 희생자들이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까지 이르고 이로 인해 현재에도 마을별로 제사가 비슷한 날에 치뤄지고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잔혹했던 학살을 알 수 있습니다.
4.3 사건은 1954년 9월 21일 발발 7년 7개월만에 종결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쓸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였고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고난 후에도 꽤 오랜 시간 4.3의 진실은 수면 아래 감춰 있었습니다.
2000년이 되서야 4.3 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었고2003년에는 정부의 공식보고서가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평화공원이 세워졌고
2014년에는 4.3 사건 발발 66년만에 4.3사건이 국가 추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피해 배상이 아직도 이뤄지지않았고 4.3 사건에 대한 교육도 잘 이뤄지지않고 있습니다. ( 역사 교과서에도 4.3사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
거기에다가 이번 제주 4.3 사건 70주년에서 원희룡 제주 지사가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4.3 희생자 추모식에 처음 참석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고 4.3 위원회 폐지 법안에도 찬성을 하였었습니다.
저는 제주도의 학생이자 제주도민으로서 이러한 끔찍한 역사가 잘 알려지지않았다는게 슬프고 희생자의 유가족분들이 정당하게 피해배상을 받으시고 정부가 4.3사건의 진상 규명을 하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주도민으로서 원희룡 제주 지사의 발언을 보고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이에 저같은 학생이라도 4.3에 대해 알아보고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지만 4.3 사건 70주년인 오늘 조차도 4.3 사건에 대해 올라오는 바가 별로 없어서 이렇게 찾아봐서 쓰게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조금만 찾아봐주시면 4.3 사건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시던 희생자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5uiTVH2qR0
(설민석 선생님 영상 링크입니다. 한 번 시청해주시길 바래 첨부합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96338
(1948년 4.3 사건 당시 영상 링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