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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가는 길

난 달라진 것 같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내면의 내가, 변했다.

뭘까. 뭘까. 버스를 타고 홀로 어딘가로 떠나는 이 여정은 낯설지 않은데, 여정을 함께하는 나는 낯설다. 뭔가가 빠져나간 느낌. 쓸쓸한 느낌. 외로운 느낌. 평범한, 느낌.

평범한, 외로워 하는, 인간이 된 느낌.

아무렇지 않을리가 없었다. 적지 않은 부분이었다. 아니, 거의 세상의 전부였다. 끝이 빠르게 났다고 해서 그 세상이 아주 빠르게 깔끔하게 사라져버린건 아니었다. 그럴리 없잖아. 세상은 무너졌고 잔해는 남았을 것이다. 어딘가에.

그 잔해는 평소엔 없는 듯 살다가 이렇게 모든게 걷히고 나면, 공허해야 하는 벌판에 우스스 흩어져 남아있나보다. 그래서, 느낌이 다른가보다. 그저 텅 비어야만 하는 이럴 때, 그 익숙한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켕긴다. 켕기고 밟히고 아프다. 아프다. 거의 다 굳어가던 딱지가 갑자기 떨어져 나간 듯.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랑하지 않았나? 의아했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그리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아프지 않아서.

교통사고 같다. 쾅 하고 박는 그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알아채기도 전에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멀쩡히 집에 걸어들어가는데, 며칠 뒤, 몇 달 뒤, 심지어 몇 년 뒤에도 훅, 하고 갑자기 찾아온다는 그 후유증. 끝이 나버리는 상황도 후유증도, 꼭 교통사고 같나보다. 연애는. 사랑은.

그게 아주 엿같다. 안심할 수 없다는거. 평생, 괜찮은 듯 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빵, 이렇게 파고들어와 온 몸을 괴롭히는 후유증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하는거다. 엿같다.

카톡을 보내지 않기 시작했고, 이름 한 번 떠올리지 않는 하루가 늘어났고, 결국 내 손으로는 평생 하지 않을 것 같던 차단까지 먹이고 나서, 끝이라고,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생각, 했다. 생각은 정말이지 힘이 하나도 없다. 마음에게 늘 먹힌다. 언제 거기 생각이 있었냐는 듯, 마음은 온 정신을 지배한다.

비웃음. 마음의 비웃음을 들으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떠올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 회상은 고통만 깊게 할 뿐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이제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연락을 하거나 신호조차 보낼 순 없다.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것이기에.

그래서 그냥 괴로워한다. 마냥 괴롭다. 마음 앞에서, 그리움 앞에서, 괴로움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이제 내 나이 스물 여섯. 별 일 없이 산 것 같은데, 열 여섯 때와 다를 것 없이 자란 것 같았는데. 사실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놨구나. 앞으로 남은 인생 약 칠십년.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겪게 될까. 얼마나 다양한 나를 만나게 될까. 그 때마다 낯선 나에게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언젠간 이마저도 익숙해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릴 때에도 인생이 안힘들지 않았어." 나의 아저씨에서 스물 한 살 지안이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좀 덜 힘들거 아니에요."하자 30대 정희가 했던 말. 인생은 정말이지, 끝없이 괴로워야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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