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탈모이야기

Raphael |2018.05.18 19:07
조회 421 |추천 2
존칭은 생략합니다.----------------------------------------------------------------------------------------------------------------------------------------
난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시작 나이도 또래보다 일찍 시작했고, 그만큼 일찍 용돈과는 안녕이었고 월급이라는 친구이자 적을 만났다. 나한텐 4살 터울의 친누나가 있는데, 넉넉하지 않은 집에 공부도 잘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제 돈 벌어 제가 쓰는 누나를 나는 너무 부러워했다. 공부를 잘하는 건 전혀 부럽지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비를 받아 사고 싶은걸 사고 다니는 모습이 난 그저 부러웠다. 그 맘이 관세음보살님께 닿았는지 운이 좋게 난 내가 다니던 교회와 연계된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새벽 시간에 스쿠터에 신문을 채우고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돈도 돈 이였지만 새벽 시간에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 타던 재미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 때 였고, 재벌 집 아들내미나 용돈으로 받을 돈을 쥐고 다녔다. (그때 애들 피시방 시켜준 것만 모았어도 이번 달에 살 노트북을 다음 달로 미루지 않았었겠지….)
아르바이트의 짭짤함과 나이에 비교해 가지고 다녔던 큰돈에 취한 나는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학교 인근 번화가에서 닭갈빗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작은 선택이었지만 어느샌가 필수로 해야 하는 상황도 직면해야 했다. 
당시 난 또래보다 키가 컸고(당시 180. 지금은 182) 어려 보이지 않은 외모 덕분에 난 비교적 쉽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았던 최저시급은 3600원이었는데, 후에 시간당 4600원을 받고 나왔던 고2때까지. 난 학교를 마치는 평일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매일 닭갈비 철판을 들고 뛰어다니던 학생이었다. (당시 난 누나가 전교 1등 하던 실업계 고교를 아무 생각 없이 입학했는데, 전공과목은 낙제에 실업계에서 변두리 과목인 국어, 영어,국사 등은 올백을 맞던 이상한 놈이었다.)
지금 나이에 음식점에 가서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애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드는데, 그 당시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그저 재미였고, 또래보다 좀 더 어른 흉내를 낼 수 있는 최고의 도구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힘들다던가, 서러움을 느끼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난 살면서 그때 아르바이트를 일찍 시작했던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공부는 못했지만, 세상은 좀 더 일찍 배울 수가 있었다. 그렇게 배운 세상 속에서의 지금의 나는 그 때를 절대 후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내 인생을 이미 반 이상 정해버린 것이란 걸 알 리가 없었던 그 시절, 어른 흉내에 맛이 들여 나름의 뿌듯함을 가방처럼 메고 다니던 어느 날. 상상하지 못했던 딱 하나의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두발규제가 있던 학교에선 용하게 난 꽤 긴 머리를 유지했는데, 이상하게 학교가 끝날 때 쫌이면 머리를 안 감은 것처럼 떡이 져 있었다. 난 가는 직모이기 때문에 안감이면 바로 티가 난다. 때문에 한 번도 아침에 머리를 안 감은 적이 없었는데, '머리 안 감았냐?' 라는 눈초리를 받을 만큼 내 모발에선 유전이 터지고 있었다. 만수르 부럽지 않은 배럴량이 었다. 
머리카락은 힘이 없고 머리카락을 비교해봐도 너무 얇고 쉽게 끊어졌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에 숱이 없다는 얘기를 하루 이틀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달을 지내다, 내가 머리를 감은 뒤에 남겨진 욕조의 내 머리카락들을 엄마가 보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병원행을 결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전혀 심각성이 없었고. 별일 있겠나 싶어 두피 전문 케어 센터인 'X킨'이란 곳을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난 이미 심각하게 진행 중인 탈모를 발견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삭 했을 때 사진에서 1자였던 이마엔 이미 선명하게 M자가 그려져 있었고, 모발의 영양 상태 또한 최악이었다. 또 라인 앞에 있는 머리는 확대 카메라로 가까이 대야지만 보일 정도로 매달려 있는 모발들은 이미 두피 인사과 구조조정 명단에 1순위로 랭크된 머리들이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절망이란 느낌이었을 것이다. 수술이 있다면 최대한 이른 날짜에 수술을 요청할 정도로 내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무슨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마냥 제정신은 이미 사바세계를 뛰어넘어 사건의 지평선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단 당시엔 모발이식란 기술이 임박할 시점이였기에, 대중화되지도 있다하더라도 가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였기에 이런 두피관리센터같은데가 많았다.)
내 나이 이제 18살…. 키 작고 배 나와도 대머리만 아니면 된다는 '롤러코스터 소개팅 편'에서 여자의 나레이션이 M자 라인을 스쳤다…. 내 멘탈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는지 안내 직원은 물들어온다! 늘 외치며 에프 터 사진들을 쏟아냈다. 그 사진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건 정말 나뿐이었을까.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받아 새 삶을 살게 된 회원(?)들의 사진들이 질 리 때쯤 가장 중요한 대화가 시작됐다.
"그래서 비용이…. 좀 얼마나 들까요 아들 아직 학생인데….""학생 상관없이 1년에 500만 원 입니다." "……. 아네 제 아들과 좀 더 상의를 해볼게요~" 
내 월급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세상에 빠른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때 그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좀 더 빠르게 엄마와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니!! 돈을 왜 모아?!! 아플 때 쓸려고, 잘살진 못해도, 최소한 아프며 살지 않으려고 돈 모으는 거 아냐??! 그래서 나도 아르바이트하고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우리 가족 다 일하는 거 아니냐?!? 근데 무슨 500이 대수라고 듣자마자 도망 나와?! 아들 상태 못 봤어!? 엄마 아들 20살도 안 됐어!!"
내 어머니는 내가 2마디 이상 말대꾸를 하면 말보다 스매싱이 앞서는 분이었다. 한데 그날은 어째 내가 바락바락 대들어도 별말씀이 없었다. 대머리로 죽느니 엄마한테 맞아 죽는 것을 택하기로 하고 난 발악을 하며 대들었는데…. 
"그래 엄마도 봤는데…. 우리집이 당장 500이 어딨니…." 
좀 치사하게 엄마는 펙트로 내 입을 닫아버렸고, 난 더 이 상 할 말이 없었다. 없다는데…. 뭘 어떡하란 말인가…. 나는 완전히 삐졌다는 표시로 엄마랑 3M 정도를 떨어져 걸었다 
당시 나는 버스로 좀 떨어진 곳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애매했다. 엄마가 아까부터 같이 밥을 먹자 했지만, 밥을 먹기엔 늦고 안 먹고 가자니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김경호의 헤드뱅잉에 뻑이가 록커에 꿈을 꾸던 내가 대머리가 된다는데…. 밥이 들어갈 리가.. 결국 엄마는 말없이 조용히 따라오다 알바가는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한번 나온 내 입은 들어갈 줄을 몰랐다.
"어휴. 그럼 아르바이트 조심히 하고, 엄마는 근처에서 먹고 들어갈게.~ 집에 늦지 않게 와"
하며 엄마가 뒤돌아서는 순간..... 내 머리 속에 단 한 가지가 떠올랐다.

 
'…. 어쩌면 엄마는.. 나보다 더 내 머리를 고치고 싶지 않을까…?' 


신은 분명 아들이란 존재를 애당초 불효자로 만든 게 틀림없다. 어떻게 300M를 걸어오면서 단 한 번도 들지 않던 생각이 어째서 뒤돌고 나서야 드는 걸까…. 엄마를 붙잡고 밥 먹고 가자고 하려 했지만 있는 지랄 없는 지랄을 다 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엄마가 조금씩 시야 사라지기 전에 내 눈물이 먼저 시야를 가렸고. 만원 버스 구석에 앉아 난 정말 많이 울었다. 내 상태를 보며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돈 앞에 도망쳐나와야 했던 부모님 생각과 서러움에 꺼이꺼이 대며 울었던 것 같다.
그 날 난 퉁퉁 부은 눈으로 아르바이트를 끝마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든 운 얼굴이 들키지 않게 용을 쓰며 들어왔다. 엄마는 불 꺼진 안방에서 주무시진 않은 채 누워계셨고, 난 조용히 침대 밑에 앉아 침대에 기대어 불 꺼진 방에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내 머리….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 너무 신경 쓰지마"
 "그래에~ 편식하지 말고, 머리에 좋은 거 엄마도 찾아볼 테니까, 좀만 기다려보자~" 
난 방문을 닫고 천당 없이 지옥문만 몇 번을 체크인 한 그날 하루를 로그아웃했다.
다음 날인 주말에 난 눈뜨자마자 미용실로 가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왁스로 머리에 힘을 주어 올려버리니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탈모가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를 정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이후 탈모인이 된 나는 엉겁결에 실용음악학부에 입학해 대학 생활도 짧게나마 해봤고, 알바몬에 나의 아르바이트 이야기라는 글을 1, 2로 나눠서 기고할 만큼 많은 일을 했었다. 그렇게 모발이식 수술을 했던 작년까지, 7년 동안 난 항상 가방에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모발이식 병원에서도 놀랄 정도로 기가 막힌 왁스 링으로 탈모를 가리며 살아왔다.
그리곤 군대를 제대해 매달 100만 원씩 어머니께 생활비 겸 해서 드렸고, 어머니는 그걸 쓰지 않고 모아 총 1천 1600만 원이란 거금을 모았다. 그 돈의 일부를 들여 작년 2월에 모발이식 수술을 한 것. 현재는 1년여의 세월이 지나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결과는 대만족.
(덧붙혀 슬슬 머리가 빠지는 걸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이식수술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땀이 나면 머리가 망가지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피하다 보니 이제는 떡볶이도 매워서 잘 못 먹고, 남들 볼 때 항상 머리숱부터 보게 되고, 모자를 쓰고 다니면 벗을 때가 감당이 안 돼 머리에 뭘 써본 건 훈련소 때 철모밖에 없고, 왁스 링이 잘 안되면 지각을 하더라도 감고 다시 해서 출근하고….  당연할 정도로 머리에 좋다는 약, 먹을것, 샴푸 등 셀수도 없는 많은걸 해보고 탈모를 카바 하려면 파마가 필수라 늘 2달에 한 번씩 10만 원씩 들여 머리를 해야 했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난 최소한 탈모에 잠식되어 살진 않았다. 내 주위에 내가 탈모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티가 나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하고 다녔다. 남에게 흉 하게 보일 수는 없기에 가릴 수 있다면 가리고 다녔지만, 누가 나보고 대머리라 놀려도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되려 자학개그로 탈모란 자체를 웃음소재로 쓴적도 많았고 나도 웃으니 그저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다. 아마 내가 주변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처보다 훨씬 깊은... 이미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심연을…. 내가 탈모란 걸 처음 알게 된 날... 알게되었고, 난 그 깊은 바닥에 주저 앉아 진하게 울었다.  
 그날.. 그 만원버스에서 사람들이 모두가 쳐다볼 정도로 흘렸던 눈물이 없었다면.. 나는 적어도 모발이식을 했던 그 시점까지 엄마를 원망하고, 10원 한푼 안남기시고 탈모유전자만을 남겨주신 양가 할아버지들을 탓하며 태생을 저주했을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고민하고 온갖 신경을 쓰며 나를 옥죄었을것이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던건.. 그날 그렇게 울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날 이후 그 이상의 상처는 없었고, 그 날 버스 안에서 흘린 눈물로 그 상처를 메꿨다. 그 뒤로 그 어떤 것도 나를 상처입힐 수 없었다.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부정할 수 없다만. 적어도 상처와 두려움 앞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적을 이길 수 없다면 안아버려야 한다는 걸 엄마의 뒷모습으로 배웠다.
누구나 컴플렉스를 가지고 다닌다. 심지어 김태희도 자신의 얼굴에 비해 치아가 너무 큰게 컴플렉스라고 하니 말 다했다;; 보이지 않더라도, 아니 보이지 않기에 컴플렉스라고 들 한다. 하지만 그 컴플렉스에 쫓겨다니는 것과 컴플렉스와 동행하는 길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줍잖게 피하기만 하기보다는 때론 정면으로 부딪혀 된통 깨지더라도, 그 깨진 조각에서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가질 수 없다면 부시고, 부실 수 없다면 끌어 안자.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리며, 모발이식이나 병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니기에사진을 올리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조언을 구하신다면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부족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