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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논쟁

이방이맞는가 |2018.05.26 18:31
조회 1,148 |추천 0

매일 이 곳의 글을 읽으며 세상의 기가 막힌 일들을 간접체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읽으면서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순간이 오겠지..막연한 생각을 갖고 이 글을 쓰는데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 멘탈이 약한 경향도 있지만, 이렇게 제 과거를 마주하고 가슴 아픈 일을 곱씹게 되는 게 두렵더라고요. 그런데 오늘에서야 쓰게 됩니다.

 

저는 좀 모든 것이 늦은 편입니다. 깨닫는데도 늦고, 회복하는 것도 좀 느린 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서른에 크게 한 번 인간한테 큰 깨달음의 기회를 얻습니다.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습니다. 전 참고로 외모는 참합니다. 성격은 안 그런데 외모만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합니다. 어쨌든 외모만을 가지고 참한 여자를 찾는 한 남자와 소개팅을 합니다. 같은 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직원 식당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소개팅 이후 애프터도 받았고 몇 번 만남이 지속되고 깊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결혼 얘기도 자연스럽게 오갔습니다. 나이가 그럴 나이었고, 전 결혼이란게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면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기대를 하고선 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어, 여자인 친구랑 저랑 해외 여행을 갔는데, 갑자기 이 사람이랑 카톡이 안됩니다. 연락이 안됩니다. 한국 돌아와서 그를 봤을 때, 뭔가 지쳐 보입니다. 전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는데.. 아무 일 없답니다. 일단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에도 그럽니다. 갑자기 뭔가 쎄...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근무시간에 인터넷을 켜고,... 그 사람이 주로 쓰는 아이디를 구*에 쳐봤습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채...

 

네.. 저 판도라의 상자.. 열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보편화된 지금, 예전에는 미X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전 사용 안해서 몰랐는데, 그 사람은 친구추가를 안해놓으면 비밀일기장처럼 쓸 수 있는 곳인줄 알고, 온갖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네, 제목과 같습니다.

 

내용을 다 읽어보면 처녀는 하얀색 운동화로 표현되어져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도 처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만나보려고 노력했던거 같습니다. 글 곳곳에서 힘들어 하는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헤어졌고, 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저도 처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에 미안해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처음엔 안쓰러웠습니다. 제가 치료해주고 다독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피자 배달원이 문을... 당기시오.라는 표지를 못보고 계속 밀고 있길래,

 

“저기요. 그거 당기셔야해요.”라고 말을 해준게 화근이었습니다.

“넌 왜 모르는 남자한테 친절해?”

저... 친절했나요? 그랬나요? 하하...

 

전 대학시절에 참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걸 인정받아 교수님을 모시고 캐나다에 3주간 동기들과 캐나다 대학의 수업도 듣고 기업 탐방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자, 캐나다에서 잠은 어디서 잤냐? 누구랑 갔냐? 남자애는 몇 명이었냐? 등등을 물으며 안색이 안좋아집니다. 전 이상한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다 말해줍니다. 별 일없었습니다. 교수님 저보다 한 30살은 많으셨던 학부장님 이셨고, 전 대학을 늦게 들어가 동기들이 다 저보다 5살은 어렸습니다. 그리고 잠은 기숙사에서 잤습니다. 그 기숙사는 술 반입 금지였고, 캐나다는 리쿼스토어에서만 술 구입이 가능하고, 저희 차도 없어서 늘 배달시켜 먹거나 코디로 따라붙은 캐나다 여자애 차를 얻어타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행사 있을 때만... 밥도 학교에서 먹었고요. 파티 이런데는 가본적도 없고, 교수님들 댁에 식사 초대만 2번, 대낮 바비큐 파티 1번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남자분들 중에 캐나다, 호주, 일본 다녀온 여자는 믿고 걸러라...라는 말 하시는 분들 있죠? 이 사람도 그 중 하나였나봅니다. 저랑 양재 이마트를 다녀오고 나서 집에서 말합니다.

 

“너같은 여자랑 결혼 못하겠어....”

 

그래서 당황한 제가 묻습니다.

 

“나같은 여자??? 나 같은 여자가 뭔데??”

 

되돌아오는 말은 자기 말에 그렇게 토달지 말랍니다.

 

그래서 그 길로 제가 두고 썼던 화장품, 옷 등등을 챙겨 나가려고 했습니다. 갑자기 문을 막습니다. 당황했나봅니다. 혼자서 갈등 많이 했겠죠. 자기는 처녀가 좋은데.. 그래도 얘랑은 헤어지긴 힘들고..그래도 처녀랑 결혼해야하는데... 근데 이별은 힘들고 계속 머릿속에서 갈등하는게 제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미X에서 본 글들.. 미안한데 나 다 읽었다. 너가 뭘 원하는지 알고, 도와주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난 의사가 아니다. 넌 내가 아니라 의사가 필요한거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넌 동거도 했고 너도 처음 아니면서 왜 나한테 이러냐고 하니, 난 남자잖아..

 

그래서 뒤도 안돌아보고 집에와서 부모님께 파혼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좀..시골 분이고 나이도 있으셔서 파혼은 이혼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셔서;;;; 상심이 크셨습니다. 엄마도 상심하셨겟지만, 엄마는 차라리 잘됐다고... 그 시어머니 자리 보니 너 고생하게 생겨서 싫었는데 잘됐다고 하셨고, 오빠는 늘 그렇듯 별 말이 없습니다... 침묵이 금인 사람입니다.

(아, 참고로 결혼 날짜 잡고 스드메 계약하고 식장도 예약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도 친지분들에게도 다 말씀드린 상태)

 

아버지는 그 뒤로 술을 더 드셨습니다. 전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를.. 계속 다녔습니다. 직원식당에서 그를 한번 더 봤던거 같습니다. 제 직장분들은 저를 평소때와 같이 대해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가 참..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자꾸 밤마다 식은 땀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발목이 붓고 걸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병원 세 곳을 전전했지만 원인을 못찾았습니다. 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지 3개월 뒤.. 다른 병원에 갔더니 혹시 모르니 엑스레이 다시 한번 찍어보자합니다. 뭐.. 그 때 돈은 걱정이 없던 시절이라 의사샘 말에 순순히 하자는거 다 했습니다. 결과는... 결핵이었습니다.

 

결핵 환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약이 참 독하고.. 땀이 약 색깔로 납니다. 하얀 속옷은 갈색으로 변하고, 햇빛 조금만 받으면 바로 선탠한 사람처럼 됩니다. 혈중 약물 농도가 최고를 찍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공복에 10개 정도 되는 약을 한번에 먹습니다. 아.. 나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병 걸려 죽든 내가 삶을 마감하든 둘 중 하나는 나한테 다가오겠다는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년간 일했던 정든 직장을 떠났습니다.

 

제 퇴사 일자가 9월 30일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그 다음해 9월 30일에 퇴사를 했습니다. 저랑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곧 결혼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봤는데...(저도 참 찌질하네요...) 분당의 한 요가원에 있는 능력있는 요가 선생님과 결혼하셨더라구요. 말리고 뭐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미 결혼한 뒤였어요. 그것도 몇 달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여자분은... 처녀일까...? 미국에서 유학도 하셨던데... 그에게 집요한 질문은 받지 않으셨을까? 뭐.. 알아서 잘 하셨겠죠.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자기계발 뭐 그런거죠. 남자는 무서워서 쳐다도 못 보겠고, 3년간 연애도 못하고 혼자 바보처럼 영어공부만 했습니다. 한 동생이 묻습니다. 누나는 언제 놀아요? 제가 대답합니다. 난 안놀아.. 그동안 충분히 놀았어.. 이젠 내 삶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야. 너 많이 놀아 젊고 이쁠 때.

 

영어공부도 했겠다. 미국으로 자원봉사를 갑니다. 운좋게 만난 친구와 그의 아버지 덕에 자원봉사를 한창 하던 중 3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지내? 너의 집 앞을 운전하면서 지나다가.. 네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네 얼굴 보고 할 말이 있는데 만나 줄 수 있겠니?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봅니다. 결혼도 한 놈이 저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았을까요? 한국에 없으니 카톡으로 말하라고 했습니다.

 

역시나 미국에서 뭐하고 있냐고 묻더라구요. 네 알바 아니니 할 말이나 어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싱가폴로 MBA 간답니다. 그리고.. 미안했답니다.

 

그래서 결혼 축하하고, 미안한건 다 지난 일이니 잊으라. 그리고 가서 공부 잘해라.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점점 선을 넘습니다.

 

결혼은 했는데.. 싱가폴 혼자 간다. 자꾸 와이프랑 싸운다. 너무 드세다. 싱가폴 혼자가는건 거의 별거의 의미다. 그래서 가기 전에 너 얼굴보고 같이 밥 한끼하고 싶었다. 이런 개소리들을 시전합니다.

그래서 제가...

 

밥은 됐고, 생각해보니 결혼 깬 건 너니까 드레시 피팅비랑 스드메 계약 위약금 너한테 못받고 헤어졌더라. 내가 그 땐 어려서.. 통장 계좌번호 알려줄테니 당장 백만원 입금해라.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싱가폴 가느라 돈이 없구.. 저보고.. 많이 변했네..합니다.

 

진짜 강아지

 

응.. 나 예전에 너가 알던 걔 아니야. 변했지. 세월이 얼만데. 그리고 너 이런식으로 연락하면 이거 다 캡쳐해서 니 와이프한테 보낸다고 했습니다. 니 와이프 직장 어딘지 알아. 인터넷에 다 나오던데? 얼굴도 알아. 그 요가원 원장님이 너랑 니 와이프 사진 블로그에 올려서 그것도 봤어.

 

그랬더니

 

와이프랑 요새 사이도 안좋고.. 그래도 내 기억엔 너랑은 말이 좀 통했던거 같아 연락했던건데.. 싱가폴 가서도 가끔 안부도 묻고..

 

이런 개소리 시전하길래 차단했습니다.

 

아. 돈은 못받았어요. 줄 놈이 아닙니다. 그리고.. 파혼하고 나서 2년 안에 청구해야합니다. 근데 걔는 모르더라구요. 냅다 도망쳤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지금 돈이 쫌 궁한 저는 그 백만원이 아깝습니다.. 그거면 지금 남치니랑 맛있는거 많이 먹으러 다닐텐데ㅠㅠ

 

지금 저는... 영어공부 열심히 한 댓가로 좋은 직장에 다시 입사해서 좋은 보스 밑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회사도 가깝고 걸어갈 수도 있어요. 물론 땀은 좀 많이 흘리지만...

원래 땀이 안나던 스타일이었는데 결핵 걸리고 나서 쫌만 뭐해도 땀이 줄줄 납니다.

 

아...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예요. 그리고 여자분들 너무 착해서 모성애(?) 같은 걸로 휘둘리시는데 절대 그러지 마세요. 처음부터 모성애 자극하는 남자를 만나지를 마세요. 혹시 파혼하시게 되면 파혼하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위자료 청구는 2년 안에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슬퍼도 밥 드세요. 입맛 없어도 죽지 않을 만큼은 드세요. 한번 망가진 몸은 다시 회복이 안됩니다. 땀 뻘뻘 흘릴 때 마다, 부모님이 주신 몸 제대로 관리 못한 죄책감이 큽니다. 엄청난 불효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만나시고, 본인도 그렇게 되세요. 전 제 남친 주름도 사랑합니다. 이마에 자글자글합니다. 반대로 남치니는 제가 술먹고 개소리해도 아침에 제가 방긋 웃으면 사르륵 녹습니다. 그게 보입니다 제 눈에. 아, 만난지는 1년 반 정도 됐습니다. 행복합니다. 열심히 살다보니 저에게도 이런 행복이 오네요.

 

남자분들, 혹시 처녀 만나고 싶으신 분들은 당당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래야 저희가 비켜드리죠? 저희에게 기회를 주세요. 도망칠 기회를!

 

한동안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과연 잘한 짓인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건 아닐까? 마치 상대방의 핸드폰을 보는 것과 같은거 아닐까? 그거 안좋은 거랬는데.... 그런데, 제 결론은

 

아무래도 조상신이 도우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상자는 열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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