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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로 산다는 것은

착콤 |2018.09.20 11:40
조회 204 |추천 0

 

 

 

큰 딸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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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로 산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큰 짐이었다.

하지만 그 커다란 짐을 당연하듯 지고 걸어오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

 

부모님은 어릴 적 부터 착한 사람, 착한 언니가 되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oo는 언니니까 동생한테 양보해야지 그치? 옳지 착하다.'

'남들을 배려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나쁜거야.'

 

무조건적인, 그 것 들을 어겨버리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릴 것 만 같은..

나는 무조건 착한 사람 착한 언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착한아이 컴플렉스'라는 단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해 생긴 말인 것 만 같다.

 

아주 가끔은 내가 가졌으면 하는, 이것만은 내가 욕심내고 싶은 것 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잠깐이라도 가진만큼 그 마음을 가졌다는 자체로 죄책감이 배로 들었다.

 

그래서 욕심낼 수 없었다. 양보해야만 했다. 양보해야만, 내가 희생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죄책감을 습관처럼 가져버린 탓에 욕심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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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동생도 성인이 되어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이제 내가 짐을 좀 덜 수있을까? 의젓한 언니가 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동생은 어린나이에 아기를 낳았다. 낳기까지도 나는 부모님과 동생 사이에서 고통스러웠다.

사정이 생겨 어린아들을 혼자 키우는 동생에게, 난 더 좋은 언니가 되어야했다.

 

'네 동생은 아기가 있잖아.'

'네가 언니니까 네가 해야지.'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더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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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상태로 부모님과 싸움이 잦아졌다.

엄마는 연락 없이 집을 나가 몇일 째 들어오지 않았고,

나에게는 언제나 그랬듯,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힘든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 해 줄 사람이 없었다.

 

수면제를 있는대로 다 삼켜버렸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다 잊버리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나는 남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 하나쯤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남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슬퍼하길 바랬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지 않았다. 요즘 약들은 많이 먹어도 죽지 않게 끔 만드나보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엄마는 응급실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밖에.

그 이후로 가족들은 아무도 나에게 그 때 일을 묻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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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기억력이 심각하게 안좋아졌다. 오늘이 몇 일 인지도. 방금 먹은 점심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났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괜찮아 지겠지.

 

퇴근 길,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숨이 막혔다. 걸을 수 가 없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 택시를 탄 뒤 집에 겨우 도착했다. 발작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2시간 만에 겨우 진정을 했다. 지금도 아찔할 정도로 너무 끔찍했다. 다음 날 집앞 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라고 한다. 정신과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심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어떤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나는 항상 눈물부터 나와 입을 떼지 못한다.

 

어렵게 꺼낸 말들. 힘들었던 기억들.

가족들에 대한 문제와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같이 상담도 받아야 한다고.

 

'엄마 우리 가족상담 받는게 어때?'

 

내가 정신과에 다니는 것도 부정하고 싶어하는 엄마에게 그 말을 차라리 꺼내지 말걸. 후회했다.

 

엄마는 우리가족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듯 하다.

청소년 상담사였던 엄마에게는 더욱 부정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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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어버이날.

전년 어버이날에 가족들 모두 모시고 뷔페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oo는 언제 맛있는거 사주려나. 식사도 사드리면 좋겠는데.' 라는 말들로 나에게 적지않게 압박감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난 역시나 착한 큰 딸, 착한 언니가 되어야 하니까.

 

다음 해 어버이날, 생각지도 못한 전달 지출에 자금이 바닥이 나있었다.

무엇이라도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비누꽃 바구니와, 카네이션을 그린 액자를 드렸다.

 

"oo는 작년에 뷔페 데려가더니, 이번엔 안사주나보네."

"나 돈 없어.. 이번 달에 돈이 너무 많이 나갔어.."

"그럼 이걸 생각하고 썼어야지. 이번엔 못먹겠네."

 

엄마의 말이 진심이었던, 장난이었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억울했다. 화도 났다.

하지만 화낼 수 없었다. 식사를 대접하지 못한 내가 잘못이니까. 내가 못난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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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집에서 나와 혼자 지낸다. 스트레스도 받지않고 누구도 나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이젠 나를 찾고싶다. 나를 위해 욕심도 내보고, 오직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남을 위해서 양보하지도 않고, 내가 욕심내도 되나 싶은 망설이던 것들에 욕심 낼 것이다.

 

이번 추석은 가지 않으려 한다.

용돈과 설거지부터 모든 것들을 나에게 부담을 줄 추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연휴는 단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직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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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잠깐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보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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