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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묵시록<밀레니엄>

밀ㄹ네 |2005.02.08 00:00
조회 962 |추천 0


 크리스 카터의 <밀레니엄>

▲ 세상을 구한다는 식의 거시담론과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미시담론 사이에서 고뇌하는 가장의 모습을 통해, 크리스 카터는 정형화된 미국식 가정제일주의의 전복을 꿈꾼다.

▲ 악마의 존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인간의 죄의식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더욱 심화되는 동시에, 장르적인 완성도 역시 결정적으로 공고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밀레니엄>은 이 부분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기독교 교리관들을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린다.  <엑스파일>을 범 대중적 블록버스터, 혹은 단란한 가족영화 정도로 보이게 할 정도로, <밀레니엄>의 표현 수위와 내용들은 하드고어와 신성모독의 궤를 수시로 넘나든다. 프랭크 블랙의 가장 큰 고민이자 드라마의 주요 모티브인 '가족애'가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회 철철 넘쳐흐르는 핏줄기와 엽기적인 이야기의 충격은 좀처럼 상쇄될 줄 몰랐다. 공고한 기독교 사회인 미국에서 <밀레니엄>은 소수의 마니아 그룹을 생성했을망정,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리스 카터가 직접 지휘한 밀레니엄 1시즌은 최근의 < csi >를 보는 듯한 범죄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을 들었던(동시에 대중들이 등을 돌려버리는 유력한 이유를 제공했던) 글렌 모간-제임스 웡 콤비의 2시즌은 급기야 구체화되는 악마의 실체를 거론하며 오컬트 장르의 형식을 도입했고, 웬만한 호러물보다 '훨씬' 무서웠던 2시즌의 뒤를 이은 3시즌은, 그러나 너무 크게 벌린 사건의 스케일을 수습하지 못한 채 결국 시리즈 종영으로 가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결국, <밀레니엄>은 99년 3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이라는 운명을 맞이한다. 물론 아직도 4번째 시즌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설정상, 2000년을 훌쩍 지나버린 현 시점에서 <밀레니엄>을 다시 시작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밀레니엄>은 팬들의 마음속에 짧고 굵은, 선명한 핏빛의 기록을 남겨놓고야 말았다. 지난 연말에는 크리스 카터가 <밀레니엄>의 극장판을 제작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결국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프랭크 블랙을 연기하는 랜스 헤릭슨의 목소리는 흡사 지옥에서 끓어 올라오는 듯한 저음인데다가, 그의 얼굴을 난도질하듯 가로지르는 굵은 주름살들은 그것이 마치 우리 가슴에 그어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치명적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러한 외면적 생채기들이 블랙의 딜레마를 마치 우리의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들며 잦아든다는 점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블랙의 모습은 '열혈'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 안타까움을 함께 하다보면 어느덧 함께 뛰고 있는 관객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식이다. (여담이지만, 랜스 헤릭슨이 제대로 된 가정의 가장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밀레니엄> 이 최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듯하다)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정서적 함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밀레니엄>에서는 명백하게 발견되는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세상을 구한다는 식의 거시담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미시담론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가장의 모습이다. 자신의 영적 능력으로 인해 가족의 신변이 위협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떠날 수 없는 블랙의 고민을 통해, 크리스 카터는 정형화된 미국식 가정제일주의의 전복을 꿈꾼다. 그리고 파행으로 치닫는 결과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가장의 고민에 방점을 찍는다. 더불어, <밀레니엄>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큰 줄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구체화되는 악마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악마의 존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인간의 죄의식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더욱 심화되는 동시에, 장르적인 완성도 역시 결정적으로 공고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밀레니엄>은 이 부분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기독교 교리관들을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린다. 마치 작금의 <다빈치 코드>가 그러하듯이 성서의 구절들, 특히 요한 묵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충격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결국 <밀레니엄>은 가족제도와 기독교라는 가장 미국적인 가치를 역설적으로 파괴시켜며 이단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한 꼴이 되고 말았다. 보기 드문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 드라마를 결국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야흐로 드라마의 홍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 수많은 드라마들 가운데 실제 주목해볼만한 작품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는 회의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시기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밀레니엄> 이 표현하는 인간의 죄의식과 금기에 도전하는 도전적 자세는 언제 다시 꺼내보더라도 새로운 감동을 전해줄 만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의 사악함과 구제받을 수 없는 악마적 존재들은 새천년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암약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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