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우리는 사물들을 나타나게 하는가?
이곳 지구상에서 우리는 집안 청소하는 데 하루를 보내지만, 금성의 주부들은 새 가구세트를 오후 내에 완전히 새로이 창조해 낼 수가 있다. 그곳에서는 이런 급속한 변화가 보편적인 삶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금성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이처럼 사물을 마음의 힘으로 창조하여 물현시키는 것에는 반드시 엄청난 훈련과 책임이 함께 뒤따라야만 한다. 또한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조화의 법칙’이 엄격히 준수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저 마음속의 명확하지 않은 막연한 이미지만으로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완전한 의자의 모습을 심상화하는 대신에 의자 그림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밋밋하고 엉성한 뭔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자!”라고 단순히 발성만 함으로써 의자가 나타나도록 명령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스트랄적 삶이 시작된 초기에 사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가 않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많은 자유를 부여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상념체(Thought Form)를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른들 만큼의 동일한 수준의 주의력을 갖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따라 주의(注意)가 한 가지 사물에서 다른 것으로 금방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온갖 종류의 사물들을 물현시키기 시작하는 것은 아주 어린 나이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첫 장난감이나 옷가지들은 그들의 부모에 의해서 아이들을 위해 창조된 것들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스트랄계에서 충분히 발육돼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는 거기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며, 또한 그들은 물질 행성들에서 아이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성의 아이들은 부모의 교육에 의해서 주의를 집중한 힘으로 자신의 생생한 상상력을 통제하는 훈련을 받는다.
에너지로부터 사물들을 바로 나타나게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제조업의 단계를 없애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개인에게든 마음으로 물현시키는 대상을 설계하는 것은 중요한 난관이었으며, 특히 개인적인 구현의 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러했다. 처음에 하는 마음의 디자인들은 불완전하고 균형이 잡혀있지 않거나, 주위 환경과 조화돼 있지 않다.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정확한 치수와 구성, 색깔, 그리고 아주 세부적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의 완전한 이미지를 마음속에다 그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혹시라도 정신적인 이미지 속에서 의자의 한 다리를 빠뜨렸다면, 실제 의자는 다리 한쪽이 없는 의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 만약 심상화(心像化) 과정에서 그 치수가 잘못 되었다면, 그 때 그 실제 의자는 어떤 식으로든 뒤틀려지거나 균형이 어긋나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색채와 재질, 그리고 형태가 균형 잡히고 그 방의 테마와 일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부주의한 창조행위는 결국 폐물 덩어리들만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아스트랄 차원으로서의 금성은 사념의 힘으로 인해 혼란하거나 무질서한 세계가 아니다. 모든 것은 견고하며, 개개인들이 그것을 변화시키기까지는 모든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인 채로 있다. 예컨대 나의 이모와 삼촌이 테우토니아를 몇 년 동안 떠나있을 경우, 그 집은 원래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만든 창조물들에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창조된 물질은 쉽게 해체시켜 사라지게 할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은 디자인을 고쳐서 재설계될 수가 있는데,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조심성 있게 되고, 폐기물 덩어리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방이 설계되어 창조되고 나면, 그것은 누군가 그것을 변화시킬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즉 향기를 내는 오렌지색의 소파에 앉는다면, 그 창조자가 소파를 변화시키기로 결정할 대까지 언제나 그것은 장미 향기를 방출할 것이다.
상당한 실험과 시도가 있은 후에, 마침내 한 가족이 집에 정착하여 그들을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딱 맞는 스타일과 분위기의 세간들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한 번 나의 이모와 삼촌이 정말 원했던 집을 건조했다면, 매일 매일 그것을 고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끝없이 변화하는 삶속에서 안정적으로 사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거기에 익숙해 있고, 완전한 통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나는 금성에서 왔다 / 옴넥오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