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성이고, 갓 스무살이 되었습니다.
많이 우울한 인생사예요. 좀 자극적인 일이 많아서... 드물겠지만 가정폭력 트라우마 있으신 분들은 안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 털어놓고 싶어서 판 가입하고 처음으로 글 씁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글을 캡쳐해서 타 사이트로 퍼가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나는 대로 막 적어서 글이 좀 두서없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대로 행복했던 적 한 번 없이 불행하기만 했어요. 아주 어릴적부터 줄곧 그랬고요.
6살 무렵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어요...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빠가 쓰레기였더라구요. 결혼을 했는데 엄마랑 바람을 피워서 절 낳은 거예요. 사생아였던 거죠.
왜 지울까, 지울까 했다면서 굳이 절 낳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엄마가 허구헌날 "너만 없었어도" 같은 소릴 해서 그럼 왜 낳았냐고 물어보면 생겨서 낳았다고 하는데, 그럼 콘돔을 끼든 하지 왜 안 끼고 쳐해서 책임도 못 질 걸 낳고 면박을 주나 싶었거든요. 이모도 제가 사생아라는 걸 알고 자란 줄 알았는데, 엄마가 숨기고 키워서 저도 작년에야 우연히 알게 됐어요. "너 낳으면 그 놈이 이혼하고 자기한테 오기라도 할 줄 알았나 보지"라는 말이 있었던 걸 보면 별로 알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의 사정이 있었나 봐요.
근데 그 전까지 정말 나쁜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고도 정말 아무런 감흥이 없었어요. 정말 그 자리에서 이모한테 "아 진짜? 그랬구나... 나도 몰랐네" 이러고 넘어갔어요.
엄마를 왜 그렇게 싫어하냐, 그래도 자식인데 말이 심한 거 아니냐 같은 생각 하고 계세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혼하고 혼자서 나 키우느라 힘들었겠지 하고 많이 울었어요. 내가 이해해야 한다, 큰 걸 바라면 안 된다 하고요.
저도 알아요. 엄마가 날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그렇게 큰 걸 바랐나 싶어요. 처음에는 관심과 사랑을 바랐어요. 그게 제 처지에 과분했다는 걸 깨달았던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바라는 것도 점점 작아졌지만 엄마는 변하지 않았어요. 관심과 사랑에서 최소한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이 되어 주는 것으로, 거기서 또 작아져서 그저 제게 심한 말을 하지만 않는 것으로 변했는데도요.
대화도 여러 번 시도해 봤어요. 처음엔 "엄마가 혼자 나 키우느라 힘들었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식으로 말했는데, 엄마는 늘 "고아원 안 보낸 걸로 감사해야지" 식으로 화를 내거나 절 때렸어요.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절 싫어하는 건 아니더라도 귀찮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엄마랑 둘이 지내게 된 건 엄마가 이혼을 하고 7년이 지난 뒤였어요. 13살이면 어느 정도 머리가 컸을 때였죠.
엄마는 저를 유아 시절에는 파출부에게 맡겨 키웠었고, 6살부터 9살까지는 어린이집에 위탁시켜서 키웠어요. 두번 다 학대를 당하면서 자랐지만 엄마만 몰랐고요.
특히 6살부터 9살까지 자란 어린이집에서는 냉난방도 되지 않는 반실외 통로에 절 혼자 가둬놓고 사시사철 내복 차림으로 공부만 시켰는데, 아침에 표시해 둔 분량을 저녁까지 다 못 풀면 입술이 터져 피가 나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어요. 밥은 아이들을 주고 남은 반찬들을 개밥 주듯 말아서 하루에 두 끼 정도 먹였고요. 계속 그렇게 살다보니 어차피 다 풀지 못하고 맞는 게 일상인 거 아예 원장이 어린이집을 나갈 때마다 몰래 통로를 나와서 아이들과 TV를 본 뒤 밤마다 맞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린이집 원장이 저에게 집에서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잘 지낸다고 대답하란 식의 세뇌를 했어요. 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였으니 2주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이 오면 늘 엄마한테 재밌게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죠. 이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실망하게 된 진짜 문제는 실제로 이게 아니었고요.
8살 첫 방학에 외가에 갔을 때 갈비뼈가 다 드러나는 몸에 멍자국이 얼룩덜룩한 걸 본 이모와 할머니가 돌려보내지 말자는 말을 해서 한 달 정도는 거기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개학을 할 무렵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어요.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다시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 같이 놀던 애까지 동원해가며 보고 싶다고 착한 척을 하는데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애가 뭘 알았겠나요. 때려도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드물게 내키면 정 좀 줬다고 펑펑 울면서 돌아가겠다고 말했죠.
외할머니가 걱정했었는데 그냥 말 들을 걸 그랬네요. 당연하게도 돌아가자마사 다시 맞았어요. 그 때 제가 안 괴롭힌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냐고 물었는데,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뻥이라고 하는 거야"라던 원장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참 웃기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까지 동원해 가며 그 짓을 했다는 게. 돈 맛이 좋긴 했나 봐요.
이것도 많이 생략해서 쓴 건데, 이 시절이 그렇게 끔찍했는지 6살 이전의 기억은 극히 단편적인 기억 한두 개를 제외하면 전부 잊어버렸어요.
저도 뒤늦게 자각했는데,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됐었더라구요. 그 땐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그래서 9살 이후에 외갓집 식구들을 만나면 다들 날 아는데 나만 그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이라 혼자 의아해 했었나 봐요. 식구들은 기억하는데 저만 기억 못하는 일들도 많았고요.
어쨌든 9살에 이모와 잠깐 목욕탕에 갔을 때 제 몸에 있는 피멍 자국을 본 이모가 엄마한테 따졌지만 엄마는 "뭐 어쩌라고" 식으로 나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대요.
그래서 9살 여름부터 13살이 될 때까진 이모가 절 거둬서 키워줬어요. 학교 생활이 썩 좋진 못했어도 이 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을 거예요. 이모는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었는데, 절 딸처럼 키워줬거든요. 엄마가 양육비를 준 것도 아닌데 물질적으로도 꽤 풍요로웠고요.
학교 생활 말인데요. 저는 가정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열악하게 자랐는데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를 가질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이모랑 지내면서부터 그나마 사람처럼 지내게 됐어도 아주 어릴 적부터 배우지 못한 걸 갑자기 터득할 순 없는 거였고요. 그래서 왕따를 심하게 당했어요.
말도 말이지만 신체적으로도 그랬어요. 초등학생 때라서 더 과격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걷어차이거나 맞기도 했고요. 담임한테 말하면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다들 방관했어요. 이게 열악했던 성장환경에 겹쳐서 절 더 망가뜨렸던 것 같아요.
엄마 집에 잠깐 갔을 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털어놓았는데, 아무리 망가진 상태였더라도 어린 마음에 최소한 제 편은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 다른 말은 잊어버렸어도 "네가 뭔가 잘못을 했겠지", "네가 약한 거야", "넌 왜 그것밖에 안 돼?" 이 말을 들었던 건 안 잊혀져요. 이외에도 제가 고작 9, 10살이었던 시절부터 제게 "너만 없었어도", "너 같은 애는 필요 없어" 등등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이모는 제 편이었어서 그럭저럭 버텼던 것 같아요. 그러다 13살이 될 무렵 엄마가 재혼을 한다고 절 데려갔어요. 상대는 꽤 잘 사는 사람이었는데, 엄마한테 반했다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면서 고백을 했다나봐요. 저보다 나이가 4살 많은 아들이 하나, 12살 많은 아들이 하나, 얼굴은 못 봤지만 딸이 하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니었어요.
이 인간은 돈을 벌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르는 사람의 정도를 넘어 시장을 보는 것 정도로 엄마한테 면박을 줬어요. 애비가 숟가락을 들어야 나머지가 밥을 먹는 거라는 가부장적인 인간의 표본이면서, 또 자기 자식들한테는 가정폭력범이었죠. 그린 듯한 시월드형 집안이었어요. 알고 보니 우리 이전에도 6명이 이 인간을 못 견디고 나가떨어졌다네요. 엄마랑 저는 7번째로 들어온 거고요. 결국 1년만에 헤어졌어요. 근데 얼마 뒤 도로에서 옆 차선에 있는 걸 봤는데, 며칠도 안 돼서 새 여자를 만났더라구요. 어쩌면 그 전부터 만났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깨달은 건데, 이 새끼 페도필리아였어요. 가족간의 사랑이랍시고, 얼마나 자랐는지 본다면서 13살밖에 안 된 제 옷 속에 손을 넣고 몸을 더듬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엄마는 바로 옆에서 이걸 방관하고 있었던 거네요.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는데, 그 때 거시기를 비틀어 버렸어야 했어요.
그 뒤로는 쭉 엄마랑 둘이 지냈어요. 가끔 남자를 사귀었다가 헤어지긴 했지만 오래 가도 1년 정도였고요.
조금씩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를 가지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어요. 그 때부터 3년간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해서 지금의 제가 됐구요. 그나마 지금처럼 자란 것도 전부 저 혼자 생각하고 공부한 거예요.
엄마랑 둘이 지내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는 줄곧 가정폭력에 시달렸어요. 따로 자란 상태에서 갑자기 둘이서만 지내게 됐는데 성격이 맞을 리가 있나요. 심지어 엄마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 더 힘들었고요.
엄마는 어릴 때부터 해 오던 말들에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저를 마구 때리는 걸 두고 훈계라고 말했지만, 전 이게 어딜 봐서 절 위한 훈계인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살해당할 뻔한 적도 많았는걸요. 전 지금껏 단 한 번도 절 위한 훈계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창 시절에 소위 말하는 '노는 애들'이었던 것도 아니에요. 학교에서 저는 소심한 편이었어요. 학교에서 복장이나 화장으로 걸려 본 적도 없고요. 제 밥도 제가 알아서 잘 챙겨먹었고, 집안일도 분담해서 했어요.
엄마는 그냥 의견이 다를 때나 자기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면서 절 때렸어요. 어이없지만 매우 흔했던 일들 중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사례를 들자면, 엄마가 큰 볼일이 급할 때 제가 샤워를 하고 있어서 절 끌어내 마구 때리고 목을 졸랐던 일이 생각나요. 이 날 얼굴에 난 상처가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거든요. 그 때 엄마가 절 때리면서 했던 말이 가관이에요. "어디서 >감히< 지 애미를 두고 화장실을 쓰고 있냐"는 말을 했어요. 감히요.
그러고 나면 엄마는 친구들과 전화를 할 때 이걸 안줏거리 삼아 떠들어댔어요. 이 때 제가 제 목을 조른 팔을 떼어내느라 손톱으로 인해 작은 상처가 났는데, 엄마는 이걸 두고 주변 사람들한테 절 패륜아라 욕하고 다녔어요.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보는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며 제 얼굴에 상처를 낸 걸 당연한 걸로 여겼어요.
엄마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자기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지금 보면 꼭 나이만 먹은 어린애 같아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고, 하지 말라는 사업을 쉬워 보인다는 이유로 굳이 시작해서 역시나 실패해요. 늘 자기가 무조건 옳고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내가 뭘 어쨌든 다 니탓이고 뻔하게도 그 성격에 누구 밑에 있기는 싫어서 창업이 아닌 취업은 절대 하지 않는데 창업이 안 되니까 이제 온라인 고스톱으로 게임머니를 벌어서 파는 걸 생업으로 여겨요. 너무 한심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자꾸 스트레스를 받아요.
엄마 때문에 자살 생각도 많이 했고, 실제로 손목도 그었어요. 자해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습관이 돼서 그걸 끊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모가 상처 발견하고 울면서 이런 건 하지 말라고 안아줬는데, 그래서 겨우 끊은 거예요.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략한 게 많은데 더 쓸 기운은 없네요. 정신없이 써서 글이 많이 어수선해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