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친하진 않지만 낯가리는 귀여운 모습에 반해서 고1 때부터 걔만 좋아하느라 나 좋다는 애들 다 걷어차고 맨날 걔만 봤다
걔가 공부를 잘해서 혹시라도 같은 대학 갈 수 있을까 싶어서 밑바닥이던 성적 끌어올려서 대학도 잘 갔고
내가 유일하게 걔보다 잘하는 건 수학이기 때문에 언젠간 내가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교내에서 연 수학경시대회에서 상도 탔다
페북에 올라오는 걔 사진이 보이면 저장해놓고 몰래 보다가 걔가 기분 나쁠까 봐 삭제하고 삭제하길 반복했고
고집이 유난히 세던 나를 바꿔준 유일한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고 내 첫사랑이었다
이번주 목요일 졸업식에서 항상 그렇듯이 친구들한테 둘러싸여서 웃고 있던 그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친구들한테 걔랑 사진 찍겠다고 선전포고 다 해놨는데 걔 앞에선 그냥 부끄러워하는 한 명일 뿐이더라
싸가지 없단 소릴 듣더라도 할 말은 다하고 패기 넘쳤던 난데 걔만 보면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내 친구의 남자친구가 걔랑 친해서 겨우겨우 끌고 왔다
친구가 사진 찍어주고 나는 혹시 몰라 썼던 편지와 전날 준비했던 선물 상자를 사진 찍자마자 주었고 여전히 내 앞에서 낯을 가리는 그 아이가 어리둥절하게 그걸 받아들였다
자기 건 줄 모를까 봐 "니 거야" 한 마디 던지고 친구 팔을 잡고 다른 곳으로 튀었다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만 수시 합격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나한텐 상상 속 존재나 다름 없었으니까
선물 상자에는 걔가 좋아한다는 과자 젤리 초콜릿 그리고 시 읽는 걸 좋아한다길래 시집 한 권 졸업 축하한다고 꽃 한송이 체육대회 때마다 검은색 손목밴드를 차길래 하얀색 손목밴드도 하나 샀고 옷을 얇게 입고 다닌대서 안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폴라티랑 안 어울릴까봐 못 입는다는 셔츠도 하나 사서 넣었다
편지에는 선물들을 산 이유랑 너는 키 크고 멋있으니까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릴 거고 꿈이 매번 바뀌더니 결국 첫번째 꿈이던 경찰을 하고 싶다기에 뭘 해도 잘할 거라고 응원메시지를 썼고 끝까지 부끄러워서 쓰고 지우는 걸 반복했던 좋아한다는 말을 그날 아침에서야 휘갈겨 썼다
그날 밤 페메가 왔다 고맙다고 했다 선물은 물론이고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 잘 지내라는 말도 했다
이제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잊으려고 그 페메를 삭제했다 아 물론 답장은 했다 대학 가서 잘 지내라고
기적처럼 소설처럼 내심 대화가 더 이어지길 바랬지만 내 말을 끝으로 진짜 끝이 났다
그냥 누워서 하루를 보내고 자다 깨다 먹다가 자다가 생활을 반복한 지금까지도 걔는 나 모르게 바쁘다
진짜 끝이고 걔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걔한테 가졌던 감정은 그렇게 얕지 않았는데
좋아해 한 마디만 쓰지는 말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