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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글) 생일만 되면 너무 우울해져요

ㅇㅇ |2019.02.26 05:19
조회 34,750 |추천 276
오늘은 제 생일인데 24년을 살면서 제가 기억하는 한 생일이 기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저 보잘 것 없는 가정환경에서 아등바등 키워온 꿈도 오늘 포기했어요. 너무 힘든데 항상 밝게 웃고 다니는데.. 그러느라 제 얘기를 아무한테도 못했어요. 내 이미지는 밝고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애라서... 이런 얘기 친구한테는 너무 무거울 거라서. 그냥 누구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익명이라서 써 봐요. 더 힘드신 분 계실텐데 죄송해요.

생일이란 뭘까 생각하다가 날 낳아준 엄마와의 관계를 좀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써봐요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3일 뒤에 엄마, 아빠가 헤어지게 되었어요. 3월에 눈이 내리던 밤, 공중전화로 외갓집에 전화해서 '할머니 저희 지금 가도 돼요?' 라고 물었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했어요. 때때로 저와 동생을 둔 채 친구들과 놀러나가곤 했던 것 같아요. 혼자 남았는데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아빠한테 전화해서 '아빠 저랑 ㅇㅇ이랑 배가 너무 고픈데 이거 먹어도 돼요?' 라고 했고, 그날 밤 엄마가 돌아오고 아빠가 엄마한테 폭력을 휘둘렀던 것 같아요.

그 길로 엄마, 동생과 외갓집에 와있는데 어느 날 아빠가 저와 동생을 데리러 왔어요. 폭력 쓰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던 저는 할머니가 끌어서 집어던지는데도 다시 달려와서 엄마와 살 거라고 매달렸어요. 그 후 동생은 아빠와, 저는 엄마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와 동생은 그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이후 외가에서 엄마와 살게 되었지만 엄마는 저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가 된 엄마에게 아마 제가 큰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매일 때리고, 신경질만 냈는데도 멍청하게도 엄마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면 날 좋아할까, 예뻐해줄까 생각했어요. 엄마는 근처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고 이후 엄마 일기장을 보고서 일을 그만둔 원인이 문구점 사장님과의 불륜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꽤 큰 문구점이어서 소문도 빠르게 퍼졌고, 학원의 몇몇 언니들이 너희 엄마가 그렇다며? 하는 걸 듣게 됐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후로 엄마는 집을 나가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만나지 못했어요. 엄마로부터 경제적인 지원도받지 못한채, 어린 손녀에 대한 양육부담이 컸던 외가에선 절 구박하기 시작했고 생일? 삼시세끼 밥 받아먹는것도 눈치보이는데 그게 축하받을 일이라는 사실도 잘 몰랐어요. 특히 방학중이어서 '아 아무도 내 생일을 몰라서 다행이다' 라고 어린게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4학년이 되서는 엄마가 3달에 1번 꼴로 집에 왔는데 엄마가 가는게 너무 싫어서 갈때마다 골목길에서 엄마 제발 가지마 하고 울었고, 할머니가 저런 애미가 그래도 애미라고 좋냐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던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일을 쉬게 되었고 외가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정말 바보스럽게도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고, 그냥 행복했어요. 이후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 몇 천원씩 모은 저금마저 들고서 매일 채팅을 통해 알게된 남자들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냥 엄마가 너무 그리웠어요.

이후 잠깐 여행가자며 절 데려가서 만난 남자는 애가 딸려있는 남자였는데 그 남자 집에서 밥도해먹고, 정말 가족처럼 2일 정도를 묵게 되었어요. 제가 자고 있는 옆에서 엄마는 낯선 그 사람과 그짓을 했고 다음날 남자가 엄마에게 핸드폰을 사줬어요. 이때 처음으로 더럽다는 생각을 했네요.. 이틀의 지옥같은 여행을 마치고 외가에 돌아오자 삼촌이 엄마를 다그쳤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편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엄마는 다시 떠났고, 저는 외가에 또다시 홀로 남겨져서 모든걸 떠안게 됐어요. 외가 식구들의 구박에 12살 나이에 유서도 써 보고 높은 곳만 올라가면 떨어질 생각만 했어요. 다행히도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이 잘 돌봐주셨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밝아지려고 했고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중학생 때도 반에서 5등 안엔 무조건 들었고, 할머니에게도 전 자랑스러운 손녀였죠.

그럼에도 구박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명절에는 제 또래의 공부못하는 사촌아이를 둔 이모가 저와 그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저에게 도대체 집안 살림을 하니? 얘는 살림 잘하는데 라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툭하면 절 괴롭히셨어요. 공부머리는 있어도 일머리가 없네~ 여자가 집안일 못해서 어디다쓰니, 라며 늘 명절 설거지는 제몫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하면 눈치가 너무 보여서 늘 '설거지하고 먹을게요' 라며 명절엔 산적꼬치 3개를 입에 후다닥 집어넣고, 밥을 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당하다보니 '얹혀사는 주제에' 반박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잿더미 신데렐라보다 더 먼지덩어리 같은 신세였어요ㅎ

이후 엄마는 제가 고3때 한 남자를 데리고 갑자기 나타나 무조건 잘보이라고 인사 시켰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어요. 6월 모의고사 2일 전이였는데 엄마의 임신에 충격과 왜 하필 지금이냐는 알 수 없는 분노까지 느끼면서 시험을 망쳤고, 엄마는 끝내 제 수능날까지 역시 임신했을땐 우리집이 최고라며 노산이라 힘들다고 외갓집 제 방 반절을 쓰더군요. 악을 쓰며 도대체 생각이 있냐며 나가라고 했는데 제 뺨을 때리면서 그럼 내가 언제까지 너 혼자 키우고 살아? 라고 하더라구요. 날 언제 키워줬는지 모르겠지만 엄만 끝끝내 수능이 끝난 12월, 이부동생을 낳았어요. 성적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서울 갈 형편은 도저히 안되서 나름 근처 명문이라는 국립대를 지원하게 됐어요. 160만원이라는 한 학기 등록금을 낼 형편이 도저히 안된다 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한텐 하나뿐인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만 제 생각은 티끌도 하지 않았어요.

이후 아등바등 살아서 연애?여행? 꿈도 못꾸고 이전부터 꿈이었던 고시, 6개월 금융기관에서 인턴해서 모은 돈으로 1년간 준비했는데 2차는 가볍게 떨어지더라구요. 제가 천재도 아니고 당연하겠죠. 제 돈으로 했지만 돈도 떨어진 이상 이 집에 살면서 도저히 일년 더 하겠단 소리가 안나와요. 제 주제에 무슨 고시겠어요. 돈이나 벌어야죠... 엄마도 이런 꿈 접고 빨리 취업하래요. 근데 전 이말이 너무 서운하네요.. 너무 간절해서.. 제 자존심이고 뭐고 엄마한테 한번만 부탁하고 싶은데 그냥 접게 돼요...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꿈이란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돈 벌어서 나중에 도전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고시라는게 시간투자한다고 다 되는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 생일을 기점으로 저는 제 꿈을 잠시 접어두려고 해요 살아남기 위해서. 근데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오늘만 지나면 늘 그랬듯 밝은 애로 돌아올 것 같아요 다 잘되겠죠?

매일 쓰는 답안지처럼 글에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횡설수설한 제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생일이라는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ㅎㅎ

+ 추가

글쓴입니다! 평생을 버텨오게 해 준 꿈을 포기하게 되면서 저답지 않게 감정이 무너지게 되었어요. 답답함을 어디든 말하고 싶었는데 주위에 이야기 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생일이 지나고 어느정도 감정이 추스려져서 삭제하려고 들어왔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면식 없는 타인임에도 그저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 축하해 주신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 공감해 주신 분들 댓글들 정말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기있는 댓글 전부 빠짐 없이 읽었습니다. 몇몇 댓글들에 힘도 얻고 많이 울면서 읽었네요ㅎㅎ 엄마는 제게 늘 '네가 커보면 엄마를 이해하게 될 거야' 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를 이해하긴 힘들어요. 어린 시절엔 많이 약했고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크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점차 깨우치게 되었고 상처에도 무던해지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제 살 길 잘 찾아 나가 보려구요! 제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건 처음인데... 음 글이라서 잘 표현은 안되지만 정말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ㅠㅠ 덕분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만나뵌 적 없는 분들이라 은혜 갚을 방법은 없지만, 받은 따뜻함 꼭 기억해서 다른 힘든 분들께도 전할 수 있도록 잘 살아볼게요!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 행복해지시길 먼 곳에서나마 바라겠습니다! + 글은 지우지 않을게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힘을 얻어가시길 바라요!
추천수276
반대수7
베플행복하세요|2019.02.27 17:56
무슨 저런 댓글이 달리나요? 퇴근길에 읽다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로그인 하려고 비밀번호까지 찾았어요. 먼저 생일 축하드립니다! 사실 엄마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한테서 이렇게 올바르고 똑똑하게 자란 글쓴이가 대단하네요! 이제 성인이고, 머리도 좋으니깐 좋은 직장 들어가셔서 항상 행복한 꽃길만 걷길 바랄게요! 좋은 직장 잡아서 일년정도 버시고 경력도 쌓으셔서 고시가 한이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세요 말이라서 너무 쉬운가요ㅠㅠ? 응원합니다!
베플응응|2019.02.27 18:43
생일 축하해요 :) 힘냈으면 좋겠어요! 응원할게요 ㅎㅎ
베플남자인생|2019.02.27 18:36
마음이 너무아파요. 저 역시 사는게 참 힘들었으니까요. 당신의 아픔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퇴근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내 아픈 기억도 떠오릅니다. 평생 잊지못할 그 기억이지만 이것을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볼까 싶어요. 작은 개울가에 흙탕물로 시작해서 자잘한 돌과 부딪치고 폭포를 만나 끝없이 추락도 하겠지만 언젠가 우리는 바다를 마주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도 그 바다의 일부가 될 것임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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