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삼촌과 조카가 결혼한 사례

완소혜교 |2006.11.15 17:25
조회 1,850 |추천 0

보통 삼촌과 조카는 우리네 촌수(寸數)로는 3촌, 무지 가까운 사이다.

일반상식으로 알기론 외국에선 사촌(四寸)끼리 결혼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삼촌과 조카가 결혼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누구나 생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불륜(不倫)관계가 아니고, 神 앞에서의 사랑의 맹세와 함께 신부를 비롯한 사제(司祭)들의 축복 앞에서..

 

그러나 이게 행해진 적이 있다.

그것도 아버지의 친동생이랑 형의 딸이랑 정당한 결혼을 한다.

그것도 기독교(가톨릭)를 믿는 나라에서.

동성동본(同姓同本)조차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갈 것이다.

 

이 사례가 왕실(王室)에서 일어났다면 약간의 수긍은 갈 수 있다.

워낙 우리나라 고려왕실도 이복형제끼리 결혼도 하고 했는데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건 10세기 이전의 일이고 18세기에 벌어졌다면?

도리어 인류의 인륜과 사고방식이 퇴행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 마저든다.

정상적 한국인이라면 사고하기 힘들 것이다.

 

이 삼촌과 조카의 결합은 포르투갈 왕실에서 벌어졌다.

18세기 포르투갈을 지배하는 브라간사(Bragança) 가문에서 한 결혼이 추진되었는데 당사자는 현 국왕인 조제1세(Joseph I:1714~1777)의 장녀인 마리아(Maria:1734~1816)와 국왕의 친동생인 페드로(Pedro:1717~1786)였다.

국왕과 신랑은 어버지도 어머니도 같은 3살 차이의 친형제였고, 신부 마리아는 이웃 스페인 왕의 딸이었고 왕비인 마리아 아나(Maria Anne:1718~1781)와 국왕 사이에 난 친딸이었다.

 

조제1세는 스페인 공주 출신의 왕비와 사이에 7명(1남6녀)의 자녀를 낳았으나, 높은 유아사망으로 인해 살아남은 자식이라고는 딸 3명이었다. 당연 공주는 국왕이 될 수 없었고 다음 후계자는 친동생인 페드로의 몫이었다.

 

국왕은 이게 무척 배 아팠던 모양이다. 즉 자신의 혈통이 군주의 자라를 잇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과거 로마제국아우구스투스 황제처럼 이런 현실적 사실을 용납 못하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의 왕위계승은 정당한 결혼을 통해서 얻은 자식만이 상속권을 가지기 때문에, 국왕이 아무리 다른 여자와 사이에 난 자식을 100명이나 얻어도 한 명도 상속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국왕은 세간의 비난을 무시하고 종교지도자들을 회유하면서 장녀인 마리아를 친동생에게 억지로 시집 보내버리는데, 자신이 살아있을 때 외손자를 보려고 두 사람을 1760년에 후딱 결혼시킨다. 물론 두 사람의 나이 차는 17년, 국왕이 빨리 장가간 덕분에 공주도 빨리 태어나서 나이차는 그리 나지 않았다.

 

국왕의 기대를 두 사람은 저버리지 않고 7명(4남3녀)의 자녀를 낳았는데, 우리의 관점에선 꽤나 복잡한 촌수관계가 아닐까?

두 사람의 아이들은 국왕 조제1세 관점에선 조카이자 외손자들이고 마리아 입장에서 사촌이자 자식들, 이건 정말 복잡한 관계다.

마치 근래 회자되는 대리모(代理母)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가 몇 명?

여기서는 아버지는 외종조인가? 어머니는 사촌이 아닐까? 이런 문제 등등.

 

1761년부터 1776년까지 7명 자녀가 태어나서 어른(16세 이상)이 된 사람은 단 3명 뿐이었다고 한다. 이들 자녀들의 왕위계승은 포르투갈 왕실이 2차대전 후 군사정부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과거나 현재나 권력에 대한 미련은 대단히 무섭다.

인간이 지니는 모든 일반 상식조차 파괴시켜 버리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도 끝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예이다.

 

출처 : 네이버 오픈 백과사전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