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고,그 중 1년 정도는 커플 모임에도 함께 참석하며 그렇게 잘 만나고 있는거라고 생각했었어.그러던 어느날, 너는 나에게 울면서 헤어지자고 말했지.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그리고 계속해서 긴 연애만 해오던 나와 다르게 짧은 연애만 하던 너에게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어.그래서 두 달 정도의 시간을 가지자고 했고, 너도 그렇게 하자고 했었어.
그리고 두 달 후 다시 만났고, 너는 나에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며 다시 이별을 통보했어.두 달 후에 다시 만나도 아니라면 거기서 끝내자고 약속했으니우리는 거기서 헤어졌어.예전과 다르게 나를 바라보지 않는 너, 말투가 다른 너.더이상 이별을 말하며 울지 않는 너를 보며 정말로 여기가 끝이구나 생각하며 너를 보냈지.
친구들에게도 그날로 서로 관계를 정리했다고 말을 했고친하게 지내던 네 친구들의 여자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그렇게 우리는 2년 4개월의 연애를 정리했어.
그렇게 무심한듯 한달 쯤 지났나?
촉이 좋다고 해야할지 그냥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네 생각이 난 날이 있었어.친구들이랑 뭔가 얘기하면서 너랑 하던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거든.그래서 그냥 한번 무심히 카톡을 열어봤어.
생각이 났던 그날 카톡 프사가 바뀌어있었고, 내가 너를 보며 카메라에 너를 담고 싶었듯이그러한 프사가 걸려있더라.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그래서 그때까지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네 친구 와이프에게 물어봤어.
얘기해주더라. 자기들도 너와 내가 끝난 지 얼마 안된걸로 아는데 불과 2주 만에 친구들 모임 술자리에 네가 말도 없이 새로 만나는 여친이라며 데려와서 자기들도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고 그 여자애랑 어울릴 생각도 안들었다,그래서 뭐하는 앤지도 잘 모르겠고 얼마나 만났는지도 모르겠다,언니 힘들어했던거 아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서 말하는게 미안해서말 못했어, 미안해 언니... 하면서.
거기서 나는 다시 이별했던 다음날로 돌아갔어.
내 기분과 입장을 생각해서였든 자기들이 정말 마음에 안들어서였든술 잘 마시게 생겼다, 날티나게 생겼다 등의 말로 나를 위로하는 네 친구의 여자친구들을 보며처음엔 그렇게 예쁘고 몸매 끝내주는 사람 찾더니 결국 찾았나보네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은 분노했어.
우리가 만났던 시간은 너에게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나,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지,내가 그 친구들을 소개 받은 것이 만난 지 1년 정도 지나서였는데만난 지 2주만에 새로운 여자친구라고 데려갔을 리는 없고그러면 나랑 공식적으로 정리하기 전에 이미 만나고 있었던건가, 바람을 폈던걸까 생각하기도 하며그래 여자친구들 말처럼 그렇다면 어디서 지랑 똑같은거 주워와서 만나는거 같은데똑같이 당해봐라 라는 저주를 하기도 하고그렇게 갈 곳도, 방향도 잃은 내 마음을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일이 바쁜 시기였기에 그 시간이 길게 가지는 않았고 그저 바쁘게 일을 하며, 몸이 여유로울 때 생각이 나면 운동을 하기도 하고,운동할 상황이 아니면 오랜 친구에게 너를 욕하기도 하며 그렇게 폭풍 같은 며칠이 지났어.
어떤 날은 너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고,어떤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를 보며 내 감정은 뭔가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며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드디어 오늘 쉬는 날이 되었어.
오늘 아침은 분노에 찬 날이었는데,컴퓨터를 킨 김에 모든 파일을 정리하고 핸드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정리하려고숨은 폴더까지 털어가며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어.
완벽하게 정리하려면 이름이 비슷한 파일들은 다 열어가며 정리해야하니까그렇게 열어보고 있었는데,저기 어디 폴더 밑에 너와 좋은 시절을 보냈던 대화 내역이 있더라.
거기에는너와 만난 지 얼마 안됐을 때 서로 마냥 좋아하던,너도 나에게 사랑스럽다고 말해주고, 나 안보고 싶냐던 말에 자기도 항상 보고 싶다고 말하던,모 여자 bj가 예쁘고 말도 잘해서 재밌고 좋다는 내 말에 걔보다 내가 더 좋다고 말하던,그리고 네가 힘들고 우울할 때 의지가 되어주던 너와 나의 모습이 있더라.
꽤 긴 대화 내역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좋던 시절이 얼마 안갔다고 생각했는데생각보다 기간이 길었더라.
다 읽었고, 울었어.
네가 단순히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람을 원해서 나에게 남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했는데너는 너에게 감정적으로 크게 의존하지 않고, 조잘조잘 내 얘기를 잘 하고, 네가 처음 취업에 실패해서 잠도 못자고 우울해 하고 맨즈케이브를 시전하듯 연락이 잘 안되던 네가 미안해하며 내게 연락했을 때, 화내지 않고 오히려 너를 위로하며"극복을 해내는 건 결국 너의 몫이고 나는 그걸 기다릴 뿐이지"라고말하던 그런 내 모습을 사랑했던거구나.
연구실에 가면서 바쁘고 챙겨주지 못하는데 내가 항상 몸이 아프니까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보며혼자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안해도 되니 운동을 하라고,네가 원하던 예쁘고 건강한 모습은 부수적인거였구나 라고 깨달았어.
많이 후회했고, 많이 울었어.변한건 네가 아닌 나라고 말하던 너의 말을 이해했고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슬퍼했어.
그리고는 바람을 폈던걸지도 모른다는 분노와 의심은 사라졌어.
이제와서 그게 바람이었든 환승이었든 무슨 상관이 있어,그저 나보다 매력적인 사람에게 더 끌린거였을 뿐인데 하고 무심히 넘기기로 했어.
예전에 네가 바람폈었잖아. 이번에도 바람이라면 두번째고.네가 바람을 폈던 일은 어떻게 예쁘게 포장을 한다고 해도 정당화는 될 수 없어.어떤 관계가 불만족스럽다고 다들 바람을 피고 외도를 하는건 아니니까.
하지만,반년 정도 지나가면서 정말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만하고 싶어서 이러는거냐는 말을 주고 받으며서로에게서 이별을 준비해야하나라는 생각을 읽을 때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 이별을 홀로 견뎌야 하는 그 상황이 두려워서,애정결핍은 있지만 타고난 성향 자체가 유혹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그럭저럭 사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애정결핍을 그럭저럭 해소하던 나와 다르게새롭게 일을 시작했지만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길이었던,나보다도 끔찍한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외로움을 많이 타고 유혹에 약했던 너는그렇게 날 배신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바람피던 너를 봐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님을 알면서도,너를 용서하지는 못해도 애써 이해하고 위로하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어.그게 내가 하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믿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학교에서조차 심리학과 인류학, 생애발달 공부를 해가며쌓아올린 것들을 토대로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너는 이렇게까지 생각을 정리하거나 너의 마음을 돌아보기엔 살아온 날들 동안 여유가 너무 없었고너는 아니라고 하지만 너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보는걸 피하고 싶어해보이기도 했었어.그래서 스스로 우울해도 왜 우울한지, 뭐가 화가 나는지 조차도 표현을 못하던 그런 사람이었잖아.그래서 그걸 모른다라는 한마디로 늘 결론지었었지.
새로 만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어.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그것이 두번째 바람이었든 환승이었든...나는 길게 연애하고 누구의 선택이든 헤어진 후 혼자 이별의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익숙하지는 않아도 처음은 아니지만,너는 그렇게 지지리 볶고 싸우는 과정에서 헤어지지 않고 모든 계절을 돌 만큼의 긴 연애를 한 것이 내가 처음이었고그 긴 연애의 끝에서 네가 관계를 끝내는 것도 처음이었잖아.
물론 새로 만나는 그 사람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도 있겠지.
2년을 넘게 서로 참고 만날 정도로 사랑했지만 더이상 버티지 못해 연애를 끝낸 것에 대한 죄책감,그리고 긴 연애 후 이별의 외로움을 홀로 견뎌내는 것이 모두 처음이라서...뻔히 상황 알고 있는 친구들 모임에 말 없이 데려가서 나와 함께 시간을 쌓아올린 너의 친구들과 그 여자친구들의 추억 위에 급하게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듯한 너 답지 않은 성급한 선택을 했을 만큼내가 너와의 이별을 홀로 견뎌내는 것 이상으로너도 나와의 이별을 홀로 견뎌내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난 네가 날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그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나서야그래도 울면서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던 그 순간까지는 나를 사랑하긴 했었구나 라고 답을 찾았어.그래서인지도 모르지, 나에게 이별을 고한 너보다 그걸 들은 내 쪽에 후폭풍이 잔잔하게 오래 오는 것은.너를 온전하게 믿어주지 못했던 지난 날의 벌을 받는 것 같아.
네가 헤어지자고 말하기 얼마 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걸 알게 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너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그랬던 너의 모습까지도 마냥 미워하기만 할 수 없는 나를 바라보며나도 참 어지간하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표현을 못하던 너와항상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으로 그런 너를 바라보며 불안해 하던 나,
그 이별을 홀로 견디기 힘들었던 너와그 이별 후 좋았던 시절의 기록을 정리하며 뒤늦게 너의 사랑을 깨닫는 나.
우리 둘다 만나는 내내 많이 사랑했음을,하지만 서로의 표현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많이 외로웠음을,그만큼 너와 나 둘다 어리석었음을,나는 이제서야 멀리서 바라보며 홀로 버텨내고 있어.
멀티가 되지 않는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는 너는 이제 이런 내가 생각이 나지 않을거야.돌이키고 싶은 마음도 없을거고.돌이키고 싶다 생각해도 이제는 돌이키면 안되는 관계가 된 것을 나도 알아.그래서 나도 돌이키고 싶단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아. 나도 많이 힘들었거든.
마지막은 나에게 사랑보다 상처를 더 많이 안겨줬던 너였지만,과거에 네가 나에게 그렇게 했듯이 지금의 그 누군가에게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일테니저주하고 미워하며 새로운 사람에게 보내는 것보다는지금 당장 내 마음은 아파도 웃으며 축하하고 박수치며 보내주는것이 나를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고,정확히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이미 다른 이에게 간 너를 혹시 어떻게 돌려 세워볼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과와 착한 척보단짧으면 짧았고 길면 길었던 2년 4개월을 돌아보고 뭐가 고마웠고 뭐가 미안했는지 그렇게 턴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
그래야 나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새로운 시작을 하며 새로운 사람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그게 앞으로 내게 올 새로운 사람에 대한 예의일테니까.그렇게 가다가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서 졸업한 것을 축하해.그리고 새로운 사람 만난 것 축하해.나와 그랬듯이, 오래 만나다보면 마냥 행복하고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거야.그런 순간이 왔을 때, 현명하게 잘 이겨나가길 바랄게.
고마웠고 미안했어.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