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브의 역사
허브는 영어로 'herb' 라고 쓰며 향기나는 풀을 의미한다. 허브의 어원은 라틴어의 "푸른풀"에서 비롯되었으며,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는 허브를 "잎이나 줄기를 식용, 약용으로 쓰거나, 향기나 향미가 이용되는 식물" 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허브의 품종은 학자에 따라서 수백 가지에서 수천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 이전부터, 서양에서는 기원전 2,000년전부터 허브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신옹본초경에는 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그것들의 치료 효과를 열거하였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의 부패를 막고 초향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파이스와 허브를 사용하였다. 또 인도에서는 홀리 바질을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허브라고 여겼으며, 이 허브가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 라고 하여 죽은 사람의 가슴에 홀리 바질의 잎을 놓아두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점토판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의 목록이 새겨져 있으며, 고대 로마시대의 학자 디오스토리데스(dioscorides)가 기원전 1세기에 저술한 약학, 의학, 식물학의 원전인 『약물지』에는 600여 종의 허브가 적혀 있다. 의술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도 약초의 치료법을 기술하고 있는 등, 허브는 우리 일류의 문화와 함께 전해져 내려왔다.
중세 사람들은 치커리를 학질이나 간장병을 고치는 약초로, 로즈마리의 향기는 두통에 뛰어난 치료효과가 있고 기억력을 증진시킨다고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장독대 주위에 박하나 백합을 심어서 냄새를 정화시키거나 창포에 머리를 감는다거나, 상처가 생겼을 때 소독약으로 쑥잎을 붙이고 복통이나 소화불량에 쑥을 찧어서 그 즙을 마시는 등 민간요법으로 허브를 사용하여 왔다.
12세기경의 약제사이자 식물학자였던 허벌리스트(herbalist)들이 저술한 식물지『허발(herbal)』은 동양의 『본초강목』과 같은 것으로 각종 약초가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으며 약효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허벌리스트 존 제라드(john gerard)가 1597년에 저술한『식물의 이야기(the herbal of general history of plants)』는 오늘날까지 허브의 역사를 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약용으로 이용되던 허브는 점점 사치 용품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향 마사지, 향 목욕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대 로마인들이 유럽 전역을 지배하게 된 다음부터는 지중해 연안에서 유럽 각지로 허브가 확산되었고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라는 방향 요법이 정착되었다.
또한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정원에 약용식물, 과수류와 함께 허브를 재배하였는데 이것이 허브 가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허브 가든은 처음에는 단순히 실용 목적이던 것이 점차 보고 체험하기 위한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이나 식용을 목적으로 한 '키친 가든(kichen garden)'으로 세분화되었고 뒤에는 식물원인 '보태니컬 가든(botanical garden)'으로 발전하였다.
♣ 고대의 허브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푸른 싹, 스위스 신석기 시대의 호서유적, 중국 신농본초경, bc 2700년경에 식물의 치료 효과를 열기, bc 2600 년경에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단군 신화에 나오는 쑥과 마늘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 중세의 허브는 유럽의 육류 중심의 식생활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 본격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
♣ 근대의 허브는 전 인류의 식문화의 변화로 허브가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향과 향수의 발달이 급속히 이루어 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