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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양현석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여러분들도 이미 언론을 통해 접하신 것처럼 4년 동안 한솥밥을 먹던 휘성이가
아쉽게도 yg와 m.boat 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휘성이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세븐의 일본 콘서트 때문에 이틀 동안 오사카를 방문하였을 때입니다. yg 부사장으로부터 휘성이가 회사에 찾아와 yg와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긴 한숨을 내쉬고 휘성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했을 테니 다른 곳에 가더라도 마음 편히 잘 지내라고 말하고 조용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가 내쉰 긴 한숨의 의미는 휘성이가 yg를 떠나서가 아니라....
제가 기대했던 이별의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재계약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마다 제일 먼저 저에게 협의하겠다던 휘성이..
절묘하게도 제가 서울에 돌아오던 날 휘성이는 미국으로 행사를 떠났고
휘성이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오렌지쇼크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기사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양)현석 형님께 어렵게 재계약을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라고 올라온 휘성이의 글..
많이 아쉽지만 휘성이를 이해하겠습니다.
4년간 제가 보여준 믿음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휘성이에게 멋진 이별을 기대했던 이유만은 알아주고 갔으면 합니다.
1997년 지누션과 원타임으로 시작한 yg는 당시만 해도 홍보 능력이 없어
2001년까지 다른 기획사에서 yg의 홍보를 대신 맡아 진행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m.boat라는 신생회사를 만난 이후, yg가 그들의 홍보 일을 도맡아야만 했고
그 첫출발이 바로 2002년에 발표한 휘성 1집 앨범이었습니다.
예전 가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급적 노출을 꺼려왔던 제가 밤낮이 바뀐 오래된 생활 패턴을 바꾸고, 수개월간 아침 8시부터 신문사와 방송사를 찾아다녔던 기억..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가장 어려운 친구인 서태지를 찾아 휘성의 데모 음악을 들려주며 불편한 부탁을 했던 기억.. 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냉정한 그가 친구를 돕겠다며 자신의 공연에 올려준 휘성의 데뷔 첫 무대.. 평소에는 연락도 잘 안 하던 제가 뻔뻔하게 신승훈 형을 찾아가 부탁했던 기억 등등...
다소 힘들었던 시절.. 휘성이에 대한 많은 추억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약속대로 휘성이가 저를 찾아와 자신의 입장과 계획들을 말해주었다면
같이 고민해주었을 것이며 같이 상의해주었을 것입니다.
4년 동안 함께 했던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모인 오늘 지누의 결혼식에 오지 못할 만큼
어색한 이별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부디 “돈은 잃어도 사람은 절대 잃지 말라” 는 저의 충고를 가슴속에 깊이 담아두고 가길 바랍니다.
앞으로는 좀더 진실된 모습으로.. 좀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휘성이 영입에 성공한 오렌지쇼크...
얼마 전 cf곡인 “애니클럽”에 들어갈 랩을 부탁하기위해 강남에서 제가 있는 홍대까지
수차례 걸쳐 찾아오셨던 박근태 씨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원타임 테디가 미국에 있어 인터넷으로 어렵게 녹음 작업을 했던 기억들..
수차례에 걸친 지나친 수정 요구 사항에도 오히려 테디를 설득하고 달래가며
진행했던 일주일간의 힘든 기억들과 랩 참여 비용을 주시겠다는 말에
그냥 박근태씨 다 쓰세요~라고 거절했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죄송하게도 앞으로는 그 기억들을 좋게 간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yg보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yg에서는 해줄 수 없는 거액으로 휘성이를 데려가셨으니
부디 휘성이에게 더 나은 미래와 커다란 행복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날카로운 이빨을 가리며 뒤돌아 웃고 있을 모 대기업과
지난 날 저와의 친분을 과시했던 여러분들..
돈이면 다 된다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당신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당신들과는 본질이 다른 진정한 yg family 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