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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원 노동자의 삶..

애아버지 |2019.10.24 22:34
조회 81 |추천 0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19살 청년의 노동 현실은 전기노동자의 그것과 판박이다. 전기노동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에서 일을 했고, 청년은 지하철이 질주하던 선로에서 일을 했다. 잠깐의 멈춤이 허용되었더라면,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잠깐의 멈춤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노동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전기노동자와 청년이 매일 직면했던 위험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 불편과 비용 절감, 원청기업의 갑질과 기득권자들의 야합 탓에 강요된 위험이었다. 이들이 강요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노동은 신성하다. 세상을 움직이고, 우리의 삶을 지켜준다.

그러나 생계라는 쇠사슬에 묶여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강요된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현대판 노예 노동이다. 쇠사슬이 강철에서 생계로 바뀌었을 뿐이다.

두 사고의 차이점도 있다. 스크린도어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작업자의 안전규정 미준수’가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의 항의와 공분이 이어졌고, 결국 회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감전사고에 대한 경향신문 보도 직후, 한국전력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사 방법을 바꾼 이유는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서였고, 감전사고의 원인은 공사 방법 때문이 아니라 ‘작업자의 안전규정 미준수’라고 적혀 있다.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하기 위해 고압전선을 직접 만지면서 일하도록 했다니,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그러나 전기노동자 감전사고는 경향신문 이외의 매체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이 사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 했고, 항의와 공분도없다. 한마디로 그냥 _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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