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달 있으면 30으로 꺽이는 여자입니다.
부모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태어날 때 부터
보육원에서 자라왔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되서야,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라는 사실이 어렴풋이 깨달았고,
커가면서 언니 친구들이 하나 둘 원을 나서는 것을 바라보며
막연하지만 언제가는 떠나야 했기에,
두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독립을 홀로 준비했습니다.
대학갈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남들 수시 원서 쓸 때
저는 머리 행구는 것을 먼저 배웠습니다.
보조에서 가위를 잡기 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기다림이 있었지만,
맡은 자리에서 인내하며 더 나은 미래를 간절히 갈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디자이너라는 명찰, 정직원 신분으로 받아낸 월급내역서를 보고
그날 하루 펑펑 울었습니다.
대학교 다니는 친구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사회구성원으로 작게 내밀을 수 있는
작은 이정표가 생겼고,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너무나 기뻤고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근무력증이랍니다.
이제야 내 힘으로 반지하가 아닌 햇살이 드는 집으로 옮기고, 짧지만 강렬했던 해외여행 갈 수 있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되었는데...
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를 지탱해주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병이 지금도 너무나도 증오스럽고 끔직합니다.
하루종일 거뜬했던 두 다리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게되고,
섬세했던 가위질은 둔탁해지다 못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마저 힘들어졌습니다.
힘들게 얻어 낸 나의 조그만한 결실는 불과 1년만에 바닥을 쳤고,
그 1년동안 죽은 듯이 방안에 있었습니다.
끝없은 망각 속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이대로 주져않기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호흡이 가빠질 앞으로의 저에게 의미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수능 공부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얼마나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고.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번 년도는 4~6등급을 얻어냈습니다.
이 점수로 원서를 낼 수 있는 대학교는 아마도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의 발목만큼은
따라잡은 것만 같고, 근무력증이라는 병 앞에서 조금이나마 의연해 질 수 있었던 같습니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오늘의 마음가짐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두 빌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