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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니가 살아있는거 같은데

|2019.12.29 09:09
조회 4,950 |추천 54
넌 노견이지만 죽을 나이는 아니었다. 열두살이지만 여전히 산책을 좋아하고 절대 걷는 법 없이 뛰어다니고 공을 물고 늘어지고 종종 가구를 뜯어주던 건강한 너라서, 그날 저녁도 조카와 달리기시합을 하던 너라서 그저 그날도 평범한 일상인 줄 알았다.


20시부터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코가 아닌 배로 숨을 쉬는 너를 볼 때에도 이런 현실이 다가올 줄 몰랐다. 토하는 걸 보고서도 그냥 평소처럼 간식 훔쳐먹다 과식해서 체한 줄 알았다. 혹시 몰라 집 근처 24시간 동물병원에 널 놓고 집으로 왔을때도, 그게 너의 살아있던 마지막 모습일거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불안감이 본격적으로 엄습한 것은 2시간 후 니 상태가 안좋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나서였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난 뒤 긴장해서인지 호흡이 더 가빠져서 너를 인큐베이터 안에 넣었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 모두 떠올리기 싫은 그 단어를 떠올렸다. 죽음. 내 개가, 내 동생이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 인지되자마자 가족들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는 기도했고, 아빠는 손발을 떨며 한겨울인데도 베란다에서 바람을 쐬고, 나는 혹시 몰라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아니길 바랬다. 넌 노견이지만 어리니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자정이 넘어서 잔인한 전화가 왔다. 니가 위험하다고, 더는 의사도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동물병원까지 차로 10분인 거리를 아빠가 2분만에 난폭운전해서 갔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이미 니 숨이 넘어갔다고 너를 안타깝게 쓸어만져주던 의사가 차마 우리를 보지 못했다. 너는 큰 눈을 뜨고 있었고, 아직 따듯했다. 털도 여전히 북슬거렸다. 아직 식지않은 너를 끌어안고 엄마가 벌개져서 주저앉았다. 내 입에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비명이 마구 튀어나왔다. 사람이 슬프면 울면서도 그렇게 옥타브가 점점 올라갈수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아빠도 그저 멍하게 서있었고, 떠는 목소리로 의사한테 병원비를 물어봤다. 원래 30만원이지만 의사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의사에게도 너를 봐온 8년의 인연이 이렇게 끊어진다는게 쉬운일이아니었다. 이어서 너의 장례식에 대해 물어보던 아빠가 이내 말을 못잇고 흐느꼈다. 아빠의 입에서는 화장이라는 단어가 차마 나오지 못했다, 넌 따듯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기 싫었다. 반나절만에 서서히 차가워지는 너를 불길에 넣는것을 몇번이나 망설였다. 까만 니가 하얗게 나오고 나서도, 그걸 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벼워진 니가 담긴 유골함도 차마 만질 수 없었다. 널 아빠 고향 근처에 뿌려주자는 엄마의 말에 오히려 왜 뿌리냐고 따졌다. 정작 엄마도 너의 냄새가 깊게 밴 너의 집과 장난감들을 버리지 못하고 네 냄새를 계속 맡았다. 너를 안고자던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3일을 밤을 새웠다.


다음 날 퉁퉁 눈이 부은 채로 학교를 갔다. 하필 그날은 학교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강아지가 죽어서 울었다는 내 말에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웃기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전자도 후자도 전혀 와닿지 않았다. 친구들이 무슨 표현을 하던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머릿속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 해가 바뀌고 새학기가 되었을때, 강아지를 키우냐는 새 친구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죽었어." 라고 말해서 친구들이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냥 딱 머리로만 니가 죽었다고 여기고 가슴으로는 그 어떤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집에는 니가 쓰던 물건들과 사료가 그대로 있었으니까.


의사는 우리에게 위로아닌위로를 했다. 노견들의 수발을 들다 지쳐서 개와 사람 둘다 편하려고 안락사를 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찌 보면 너는 깔끔하게 갔다고. 심장마비라는, 고통이 길지도 않은 병으로 니가 간 것은 어쩌면 남은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고. 그래, 너는 마지막까지 참 밝고 쾌활했다. 근데 그게 너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너에게도 그게 좋다면 좋은건데, 너를 그렇게 허탈하게 보낸 나에게는 그저 화가 날 뿐이다. 12년의 세월 중 8년을 우리가족과 함께한 너를 단 몇시간만에 잃었다는게 내겐 너무 가혹하다.


너는 정말 미운게, 10년간 꿈에도 한번 안나오더라. 그만큼 니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원망이 깊어서 그런걸까? 그날 저녁에 식탐이 많던 니가 사료를 남겼을때부터 병원에 널 데려갔으면, 너는 그것보단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며칠전서부터 구토를 3번 했을 때라도 데려갔으면, 너의 생명은 연장됐을까. 아니면 사람을 절대 핥지않던 니가 유독 마지막 3일을 온 가족을 정성스럽게 핥아줬을때 눈치를 챘다면 어땠을까. 정말 그게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눈치채고난뒤 적어도 이별에 대한 각오는 했을텐데 나는 참 나쁜 주인이고, 언니다. 니가 토한것도 뭐 훔쳐먹고 토한거라 생각해서 너에게 잔소리를 했고, 자꾸 핥는 너로 인해 피부가 간지럽다고 피했다. 생각해보니 종종 내 인형을 뺏어가서 니꺼라고 우기며 으르렁대던 넌데, 처음으로 니가 가장 좋아하던 인형을 내 머리맡에 두던 게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니가 지금 살아있다면 22살. 사람도 백세시대라 개들도 20살 살수 있다고 한다. 너 키울때만해도 개들 평균 수명은 15년정도였다. 난 아직도 니가 내 인형을 훔쳐가서 너의 집에 쑤셔놓고 모른척하던게 생생한데, 내 동생은 나중에 내가 죽어야만 만날 수 있다. 니가 떠나고 한동안 마중나오는 존재가 없다는게 이렇게 힘든일이라는걸 6개월 내내 겪었다. 강아지들 수명 짧은거 알고 있는데도 니가 그렇게 짧은 생을 살다 간건 인정 못하겠더라.


너 때문에, 질투많은 니가 하늘에서 불만가질까봐, 또 바보같이 울까봐 우리가족 전부 개를 안기르려고 했다. 근데, 우리가족은 바보였다. 펫샵에서 나이찼다고 공장으로 보내지기 직전의 새끼를, 아빠가 도저히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왔다. 웃긴건 걔 너처럼 못생겼다. 시커먼 슈나우저인데 토끼귀에 숏다리다. 너처럼 뭔가 훔쳐먹을때만 머리가 좋다. 너가 부엌 식탁위의 음식 훔쳐먹으려고 아무리 의자를 멀찍이 놓아도 의자를 끌고가서 음식 싹쓸이하던 짓을 얘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18년째 외출할 때 부엌의자를 눕혀놓고 간다. 너처럼 질투도 많고 지랄견 아니랄까봐 산책을 많이 해도 인간들 심심할까봐 쓰레기통을 뒤지고 엎곤 한다. 얘도 내 인형 많이 뺏어간다. 니가 그랬듯 아빠를 제일 따르고 나는 서열 꼴찌다. 그래도 눈은 니가 더 크고 초롱초롱하다.


얘도 이제 노견인지라 너처럼 크게 아팠었는데, 병원에서는 가망없다고 안락사하라더라. 살아봤자 개한테 안좋다고 해서 솔직히 우리가족 고민했었는데, 너처럼 너무 쉽게 잃기 싫어서 살려보겠다고 별짓을 다했다. 개 안키우는 사람들이 보면 한낱 동물한테 뭔 돈을 그리 쏟아붓냐고 할정도로 병원비도 천문학적이더라. 그래도 너 떠났을때 마음고생한거 조금이라도 덜라는 하늘의 뜻인지, 얘는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그래도 니가 참 많이 보고싶다. 너의 전주인이 너를 4년 간 키우며 슈나우저 지랄견이라 사납고 힘들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그 지랄조차 참 즐거웠어. 산책을 하루에 2번해도 나가자고 낑낑대는 너덕에 가족나들이도 참 많이 했고, 사준 장난감보다 내 인형을 탐내는것도 귀여워서 인형들도 참 많이 샀고, 무엇보다도 세나개가 없던 때라 동물농장 개과천선을 보며 서투르게 너에 대해 알아가는것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는 기쁨이었다는걸, 세나개가 퍼진 지금 너에 대해 몰랐던 부분은 너무 미안하다는것을, 너가 하늘에서 알아줬으면 좋겠어.

단비야 사랑해, 언젠간 꼭 다시 만나.

(사진은 단비 동생 까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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