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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답답해서 그냥 글 써봅니다.

신개념버들치 |2020.03.29 13:52
조회 162 |추천 1

  2000년 말, 2001년 초 같이 살게 되었죠. 해외에서 일한다고 말로만 듣던 아빠라는 존재와의 생활에 무덤덤하면서도 얼떨떨했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에게 들었던 아빠는 무섭지만 정이 있고 의지할 수 있으며 가르침을 주는 존재였죠. 하지만 들었던 것과 완전히 다르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항상 조용하고 서로 담소를 나누는 생활에서 항상 싸우고 비난하고 남을 탓하고 술먹고 고함지르고 폭력을 보이며 그 어린 11살의 아이를 두려움에 떨게 했죠. 퇴근 후 11살밖에 안되어 사리분별이 안되는 아이에게 소주를 꺼내오라하고 계란후라이를 하라고 하며 술상을 차리라했죠. 잘 못하면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며 핀잔을 주었지요.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그게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해야만 했을 말인가 의문입니다. 자식이 아닌 부하직원이었죠. 핀잔을 듣고 심부름하고 하라는데로 해야만 했으니까요. 그리고는 앞에 앉혀 술에 취해 항상 술주정을 받아야 했으며 전화기를 가져와 이리저리 전화를 하며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까지 온전히봐야했죠. 힘없는 어린 아이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죠. 그리고 엄마의 늦은 퇴근 및 가끔 있는 회식은 싸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엄마 오늘 늦게 온다는데 싸우지마’ 라고 말했을까요. 항상 웃었던 웃으려고 노력하는 엄마의 웃음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친하지도 않은 아빠라는 존재에게 엄마를 그만 힘들게 하고 평화를 찾기위한 어린아이의 용기있는 한마디였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싸움이 이어지고 안방과 작은방 벽 넘어로 고함과 비명, 폭언, 쌍욕이 들리며 새벽까지 두려움에 떨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매일 저녁 7시 15분 쯔음, 스타렉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불안해하며 덜덜 떨었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아빠라는 존재는 온전히 평화로웠던 인생을 바꿔버린 존재였죠. 하지만 그런거와 상관없이 항상 퇴근 후 술상을 차리라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저는 술주정을 받아야 했죠. 고작 나이 11살인 아이가. 1년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항상 조용하게 할 일을 하며 지내왔던 아이가 어른의 술상을 차리고 술주정을 받아야하며 폭언, 쌍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음주는 물론 흡연을 지속적으로 했지만 그 아이는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가끔 술을 끊자 담배를 끊자하며 아빠라는 존재의 건강이 걱정된다 말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엄마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겁니다. 아빠라는 존재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는 다 엄마입니다.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 행했던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을 불러왔죠. 이런 생활을 저는 군대가기전까지 합니다. 11살부터 21살까지 1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어리고 밝아야하고 맑은 10대의 아이가 술주정과 폭언, 폭력, 쌍욕, 다툼에 찌들어 얼굴이 어둡고 불평불만이 드리웠죠. 항상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 방황했으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도저히 편한 곳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고 인상쓰고 삿대질하며 밝지 않은게 아닌 어두운 집에 가기 싫었습니다.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마음은 11살때부터 지금까지도 열린적이 없습니다. ‘돈만벌어오면 된다’라는 말에 ‘그렇지 않다. 돈이 적어도 같이 잘 지내는게 중요하다’ 수십 수백번 말했지만 아빠라는 존재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어오면 아빠라는 존재를 떠받들고 존경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 진로에 대해서 해결은 못해주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원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유대감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아니 안했죠. 항상 술에 절어 있었으며 자신은 돈만 벌어오면 된다는 생각에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미루었죠. 하지만 알고 계십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행한자만이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을. 직책이나 높은 위치에서 이러한 인정이나 존경을 받으려면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일을 해쳐나가는 행동을 보여야합니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를 그러하지 않았죠. 돈만 벌어다 주셨으니. 오로지 돈만 벌어다 주셨으니. 중학교 3학년 16살의 어린아이가 우리집의 세금은 얼마가 나가고, 엄마의 아빠라는 존재의 월급을 알고 있으며 저축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요. 아빠라는 존재의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겠지요. 아빠라는 존재는 모르겠지만 15살 무렵부터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집안의 일에 대해 상의하고 고민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때 아빠라는 존재는 안방에서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셨죠. 어린아이가 알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황과 현실이었습니다.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까? 사춘기가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라는 존재로부터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는데 온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할 수 없었기에. 항상 궁금했습니다. 친척이 많은데 왜 친척들을 잘 볼 수 없는지. 조금 크니 알겠더군요. 상대방에게는 인색하게 행동하며 상대방의 행동에는 꼬투리 잡으며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모습에 어떤 사람이 좋아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왜 상대방의 호의를 원하고 바라는 건가요? 욕심아닌가요? 상대방의 호의를 원한다면 먼저 호의를 베풀어보세요. 왜 먼저 잘해주길 욕심을 부리시죠.

 

  항상 대범하게 무언가를 해보라고 하셨죠. 하지만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하지말라고 하셨죠.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자신이 갖지 못한부분을 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혼란스럽고 자신감을 없앴고 나아가 자존감까지 없앴습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세상을 바라볼 때 맨 처음 보는 존재인데 제일 가까운 부모의 존재가 전적인 믿음을 주지 못하는 모습에 어떤 것을 믿고 의지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떠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말씀드리면 ‘난 모른다 알아서 해라 내가 뭘 아냐’ 하셨습니다. 사실 말해도 모른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면 누구한테 말해야 할까요? 옆집 아줌마한테 말해야 할까요? 항상 패배주의에 빠져있고 앞을 보지 못하고 어두운 삶만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라는 존재의 의식과 생각에 점점 전염되는게 무서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아빠라는 존재와는 닮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다짐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집안일을 돕고 심부름을 하고 여러 가지를 하며 조금이나마 짐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에 이렇게 됐습니다. 요리가 귀찮고 설거지가 귀찮고 청소하는게 귀찮고 __질하는게 귀찮고 욕실청소하는게 귀찮을 때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짐을 조금 덜어주고자 조금이나마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될까 항상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사람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아빠라는 존재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원만한 관계를 이루며 서로 도움을 주고 살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더라고 말한마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며 서로 힘내자, 파이팅하자라는 말로 친근감을 표현하며 지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은 술도 마시는 것을 즐기고 건설적인 이야기, 미래이야기, 걱정거리를 나누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시지 않았습니까? 지인과의 약속으로 만남을 가질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누구를 주로 만나는지, 어떤 영향을 받고 왔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왔는지.

  아빠라는 존재와 제가 진지한 대화를 나눈적이 있나요? 저는 기억이 안납니다. 제가 하는 말은 대화가 하닌 말대꾸가 되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폭언을 내뱉기 때문이죠. 이러한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같은 결과를 불러왔고 저 또한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항상 뻔하기 때문이죠.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분에 따른 폭언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요.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있는 그대로 다 표출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다 표출하면서 상대방은 참는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일어나는 감정은 막을 수 없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하는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고요. 참고하세요. 저는 생각이 없어서, 화가 안나서, 감정이 안나서 표현을 안했을까요? 저는 지금 20년간 참았습니다. 제가 지금 30입니다. 그 어린아이가 세상을 알고 인지하는 나이 10살때부터 지금 현재까지 참아오고 있다고요. 사람들은 모두 그정도는 참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아빠라는 존재와 엄마가 부부가 되었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게 아닙니다. 내일이라도 뒤돌아서서 평생안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배려가 필요하고 그 순간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받고 고마운 일이 있고, 밥이 맛있거나, 청소가 되어 집이 깨끗하거나, 어떠한 일을 잘 처리했을 때 감사의 표현을하고 감정의 표현을 해야하는 겁니다. 부부의 관계, 연인의 관계가 절대적인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절대적인거 어디있고 영원한게 어딨죠? 그것은 욕심이고 허영심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한 일들만 가득합니다. 마음속에 새기고 새겨 평생 간직해야 할것입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너네한테 욕을 했냐 때리기를 했냐. 어이가 없습니다.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전쟁을 겪는 스트레스와 동일합니다. 저는 유치원때부터 새벽에 전화로 싸우는 모습을 봐왔으며 11살때부터는 눈으로 봐왔지요. 그 어린아이가 두려움에 떨고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지 아시는지요? 아빠라는 존재의 고함소리 때문입니다. 누가 큰 소리만 내어도 지금도 놀라죠. 덕분입니다. 어릴 때 겪은 경험은 안고쳐지더라구요. 아빠라는 존재와 함께 하면서 창피했던 적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외가에서 상을 뒤엎은 일, 만취 후 동네에서 실수한 일, 쓰레기를 버리고 경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모습, 가까운 친척에게 하는 비꼬는 말, 병원에서 소리지르고 난리치는 일 등등 수도 없이 많죠. 항상 숨고 싶었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언행으로 주변사람과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을 때 기분나쁜 일은 짚고 넘어가더군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며, 일반적이지 않은 이해를 하며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당사자에게 말하고 싸우지도 못하면서 주변사람에게 말하며 주변사람까지 힘들게 합니다. 부정적인 언행은 상대방을 힘들게 합니다. 상대방도 그 감정에 물들어 기분 좋은 사람도 나쁜 감정으로 변하게 되죠. 우리 가족은 모두가 그러한 상태입니다. 대화는 이렇게 사라지는 겁니다. 저는 돈만 지원해주는 아빠라는 존재 아래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되었더군요. 저와 깊은 대화를 나눈적이 있나요? 기분이 어떤가 알고 싶긴 한가요? 왜 우리는 보통의 가정같이 생활하지 못하는가 궁금하지 않나요? 그 이유가 혹시 돈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정답을 알든 모르시든 상관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왜 존경받길 바라고 존중해주길 바라나요? 과거 20년간 유대감도 없는 관계인데. 왜 존경하고 존중해야하죠?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유대감을 쌓고 친해지고자 노력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더군요. 집안일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귀찮은 일일 뿐이었고 책임을 회피하며 일의 그르침에 따른 비난만하는 태도를 보이더군요.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비난과 탓만을 하며 지내더군요.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비난하고 싶고 탓을 하고 싶었나요? 그 비난거리가 지금도 기억에 있나요? 저는 비난 받은 것이 생생히 기억나는데. 좋겠습니다. 기억이 안나서. 지난 20년간 기억없이 어떻게 지내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주변사람들에게 폭언, 폭행, 쌍욕을 하시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화는 내면 낼수록 다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화는 화를 부르고 그 화는 또 다른 화를 불러 결국 자기 자신을 삼기게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처음부터 저렇게 억세게 대하셨나요? 엄마가 홧병이 있는건 알고 계신가요? 홧병증세가 95년도 쯤부터 있는걸 알고 계신가요? 지금 위경련이 그냥 갑자기 생긴걸까요? 아빠라는 존재의 화가 엄마를 저렇게 만들었습니다. 약 30년간 천천히 사람을 말려가며. 일상적인 상식적인 생활을 못하게 막고 지인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의심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폭언을 하면서 30년간 천천히 사람을 말렸죠. 대상포진이 왜 났을 것이라 생각되십니까? 이제는 답을 알겠습니까? 기본적인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과의 생활이 몸에 홧병을 지니게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상포진이 생기고 위경련이 생겼습니다. 언제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말을 함부로 할때입니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오로지 자신의 기분만 중요시되며 상대방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생각하지 않더군요.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과 언행을 하시는데 어느 누가 좋아할까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외롭습니까? 외롭게 만든 사람이 누굴까요? 왜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 지내야 하는지 아십니까? 미래의 나이든 내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나이가 들고 약해지기도하며 어떠한 일이 생기며 고난을 겪에 됩니다. 그때의 내 자신을 위해서 도덕적으로 잘 지내는 겁니다. 좋은 사람이라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도와주고 함께하고 싶으니까요. 평생을 자기 자신을 외롭게 만들도록 노력해서 외롭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는데 주변사람에게 화를 내고 힘들게 하는거죠?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졌는데 말이에요. 아빠라는 존재가 원하는게 이런 삶이었잖습니까. 사람도 안오고 혼자 편하게. 근데 왜 외롭다고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거죠?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습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지금 하는 행동들은 모두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던 큰아빠라는 존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게 없지 않습니까? 집에서 가장 만만하다고 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비난하고 비꼬고 성질내며 힘들게하고 분위기 이상해지면 분위기 이상하다고 꼬장부리고, 왜 그러시는 거죠? 왜 욕하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가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 겁니까? 자신의 순간적인 기분이 전부입니까? 사람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어떠한 기분인지,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왜 느끼는지 대화를 통해 서로 알고 고치고 개선합니다. 감정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지금 이 편지를 읽으면서도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셨겠죠 이정인지. 당연합니다. 말을 안했으니까요. 아니 못했으니까요. 자신의 감정을 주체못하는 것에 왜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괜찮아질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섣부른 기대이며 헛된 희망이었죠. 점점 더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공부도 편입도 모두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 때문에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아빠라는 존재는 이러한 성과에 끼어들 구석은 없습니다. 조금 있네요. 등록금은 내주셨으니까. 받은 도움만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대하겠습니다. 돈만 벌어오시며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신 아빠라는 존재니까요. 이 편지를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읽게 되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는 여러 번 대화를 원했고 대전에 내려가기 전에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저는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어렵고 앞이 안보이고 희망이 없을 시절이니깐요.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고 과거를 회상하며 미안했다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착각이었네요. 대화는 말대꾸가 되고 싸움이 되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저는 그날 마음을 접었습니다. 이미 돌이킬수 없을 만큼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상처받았고 지쳤습니다. 저도 이제 이런 제 감정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노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빠라는 존재와의 관계개선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인사만하고 거리를 두며 지내고 싶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지더군요. 아빠라는 존재는 자기 자신을 아주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라더군요. 엄마는 십수년전부터 말씀해왔죠. ‘건강관리해라. 나이먹으면 힘들어지니 술을 줄여라. 운동을 해서 체력을 관리해라.’ 귀뜸으로도 안들으셨죠. 관리를 못해서 기운이 없고 컨디션을 안좋은 것을 왜 상대방에게 화풀이 하나요?  우리는 옆에서 수도없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고 몸이 힘드니 아주 힘들어 죽겠습니까?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도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같이 다니려면 체력을 조금 기르는게 좋겠다.’ 악순환입니다. 체력이 없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체력이 없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이 악순환을 누가 만들었죠? 젊음이 평생갈 줄 알았습니까? 나이들어 건강이 나빠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자세는 없습니까? 평생을 술, 담배로 몸을 혹사시켜 놓고 약 몇 번 먹고 운동 조금 하면 나아질 줄 알았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평생 노력해서 관리해야 일반인처럼 살까 말까입니다. 자신의 업보를 왜 주변의 탓을 하고 비난하죠? 주변의 조언과 추오에 귀기울이지 않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엄마가 우리가 먹을 것을 하고 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음식을 해도 비난과 비교, 폄하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왜 준비한다고 생각합니까? 안하면 엄마를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아닌 대접을 하면 비난을 덜 할까봐입니다. 저는 집안일을 도우면서 분명 엄마보다 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으로 엄마를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모습에 저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저는 잘해도 하지 않고 못해도 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려고 합니다. 잘해도 못해도 누군가는 비난을 받으니 차라리 안하겠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살기 좋습니다. 날씨가 좋고 밖은 풍요롭고 무언가를 구매하지 않아도 돈을 쓰지 않아도 구경하고 어떠한 것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은 세상에 굶어 죽지 않는 세상에 이렇게 어둡게 상대방도 어둡게 만들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고찰을 깊게 하시길 바랍니다. 아빠라는 존재 자기 자신이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왜 남들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눈 앞에 두려는 것이죠? 어떤 욕심인거죠? 이해가 절대 되지 않고 답답함이 극에 치닫습니다. 그럼 나가라고 하지만 진짜 외출을 하면 어찌되죠? 또 들들 볶으며 사람을 말리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이게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이며 행동입니까? 왜 자신이 누리지 못한다고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해야합니까? 왜 상대방의 자유도 구속하며 사람들 힘들게 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30년밖에 살지 않은 나도 알겠는데 70이 다 되어가는 아빠라는 존재는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하셨나요. 건강도, 정신도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을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지내는 것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고 실천을 하지 않습니까? 비난, 폄하, 나태, 게으름 등 부정적인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언행, 근면, 성실, 칭찬, 인정 등의 긍정적인 것들은 인지하고 노력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하게 살려면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더불어가는 인생에서 이런 것들은 노력하지 않고 혼자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함께 있어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고 혼란에 빠지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원인을 인지하지 못하고 좋지 못한 결과에 주변사람을 탓하고 힘들게 하겠죠.

 

 사람은 지식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지혜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지혜는 자기 자신이 느끼고 배우고 실천해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보면서 타인의 언행을 보면서 이런점은 배워야겠다 생각해본적이 없나요. 저는 항상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개선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나이불문하고 갖추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이 아니고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내에 얼마나 성숙한 언행을 하고 사고를 했는지가 어른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저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주어진 시간에 더 열심히 살고 더 가치있게 살고 어울려서 더 잘 지내는 것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웃을 시간도 모자른 시간에 비난하고 인상 찌푸리며 인생을 허비하는 것에 이해가 안되며 닮고싶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저는 아빠라는 존재를 보며 항상 이 문구를 마음에 세깁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기분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보여주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감정을 분출하고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구속시키고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언행을 하게 됩니다. 죽기 직전에 어떤 것이 생각날까요. 인생에서 후회되는 점, 아쉬운 점이 가장 많이 생각나지 않을까요. 자신의 성질을 못 이기고 가족에게 막말을 퍼붓고 거친 언행을 하며 나중에 그것들이 다 돌아올 것인지,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을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까? 대전내려가기 전에 다툼을 했을 때에도 그렇게 울고 불고 참지도 못하며 술마시고 그랬으면서 아빠라는 존재는 학습능력이라는게 없는 겁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뀔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뀔 여지가 있는 존재라면 이미 변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바뀌였겠죠. 답답한 마음에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주절주절 써놓은 것입니다.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오늘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울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키우면서 우리만을 바라보며 참아왔던 과거가 잘못된 것이었을까하는 걱정과 여자로서의 인생에 대한 회의감, 좋은 것을 못 보여주고 지내왔던 미안함,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조그만한고 짜잘한 일들을 풀 곳이 없어서 저한테 말씀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마음 등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고 여자로서의 인생을 만족시켜주는 일은 누구의 어떤 사람의 몫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아빠라는 존재의 몫이 제일 큽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이런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람과 사람간에 있어야한 유대감과 기본적인 감정교류의 필요성을 말이죠. 요즘 엄마의 언행이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아닙니다. 엄마는 지난 30년간 억압받았지만 가족을 위해 관계를 위해 참고 조금 더 나은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금전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말이죠. 엄마는 요즘 종종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것을 못보여주고 키워서 미안하다고, 내가 참지말고 다른 조치를 취했어야 했나 후회가 된다고 말이죠. 저는 항상 아니라고 그것 보다 더 잘할 순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있을까요? 엄마정도나 되니깐 그런 상황을 잘 견디고 넘긴게 아닐까요? 하지만 엄마는 요즘 생활을 겪으면서 과거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아빠라는 존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엄마를 구속하고 투정부리며 언성을 높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면 미래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래가 암담하고 힘이 빠집니다. 암울한 미래가 확정되어 있는데 굳이 살아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빠라는 존재는 지금 대구의 한 사람의 행동과 같습니다. 그리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요. 엄마는 지금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엄마에 대한 가족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람처럼 살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고 이해를 하려 노력하십시오.

 

 우리집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아빠라는 존재의 화는 엄마에게 쌓였고 참지못하는 엄마는 우리에게 한풀이를 해왔습니다. 이 화는 우리에게 다가와 다시 아빠라는 존재에게 가고 있죠. 하지만 무지한 아빠라는 존재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우리가 갑자기 이렇게 화가 많아졌을까요? 엄마는 과거부터 모든 것을 혼자 알아보고 혼자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아빠라는 존재는 술먹고 잠만자고 있었으니깐요.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가져야만 했고 굳센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번쯤은 상의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주어야하는 인생에서 혼자 쓸쓸하게 인생을 헤쳐나갔단 이말입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왜 같이 살아야하는 거죠? 몸만 같이 지내고 마음은 따로인 관계인데 말입니다. 이 모든 부적절한 관계는 아빠라는 존재가 만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엄마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빠라는 존재의 투정과 비꼼을 보기 싫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일로도 어떠한 상황으로도 아빠라는 존재와는 엮이기 싫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악순환입니다. 아빠라는 존재의 막말로 인한 상처, 그에 맞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한 발악아닌 발악. 이로 인해 곱게 나오지 않는 말투. 말투를 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아빠라는 존재의 자세.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언행. 기분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하는 것들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죠.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안되어 있는데 가족회외를 원하고 화목한 식사자리를 원하십니까? 우리가족에서 화목한 식사자리와 모임은 이제 평생 없을 것임을 알고 계십시오. 모이더라도 엄마를 봐서 엄마를 위해서 모이는 것이니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수도없이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있습니다. 친구를 만날 때에도, 옷을 사러 갈 때에도, 장을 보러 갈 때에도, 휴일에 바람쐬러 갈 때에도, 어떠한 물건을 샀을 때에도 무엇을 하던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꼬투리잡히기 싫어서입니다. 항상 앞뒤가 다른 언행으로 언젠가 또 이러한 일들로 꼬투리 잡으며 유치한 언쟁을 해야하니까요. 어떠한 행동을 해도 아빠라는 존재에게는 진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말라 죽어버릴 것 같아 이에 맞서 생긴 대책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서로를 속이며 살아야 하나요. 왜 이런 삶을 살아야하나요? 도대체 지난 20년간 저에게 보여준 모습중에 올바른 것이 있습니까? 저는 20년간 속이고, 거짓말하고, 분노하고, 삐뚤어지며 살아왔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술먹고, 방관하며, 비난하고, 언성을 높이고, 물건을 부수고, 엄마와의 다툼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화하려 하지 않고, 사람을 의심했죠. 이것이 아빠라는 존재가 했던 행동의 전부입니다. 이런 것들로 이렇게 까지 사람들이 피해받고 삐뚤어지며 생활이 뒤틀렸는지 느껴지십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살고 싶은데로 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을 보여줍니다. 더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어지며 어떠한 결혼생활을 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해 결혼을 결심하더라도 두렵습니다. 저는 아빠라는 존재를 보면서 배울만한 것을 한번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까요. 쓰레기버리기, 침뱉기, 욕하기, 비난하기, 언성지르기,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의심하기, 비꼬기, 갖지도 않은 이유로 꼬투리잡기,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를 폄하하기, 비교하며 깎아내리기, 남의 말 무시하기, 무능함 등 어느것 하나도 닮고 싶지 않은 존재입니다. 과연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라 올바른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저 자신에게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 아빠라는 존재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결심을 항상 마음에 세기며 언행에 신경쓰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평생 숙제이며 숙명입니다.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인생의 의미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최선을 다해 아빠라는 존재와 같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런 말은 정상적인 아빠라는 존재와 함께 했을 때 이야기겠죠. 저는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관계, 사회생활, 경제관념, 가족관계 등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배운 자식은 못 배운 부모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말이 더욱 공감갑니다. 저는 아빠라는 존재의 언행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평생을 관용과 포용없이 살아온 덕에 남들과 관계가 차단당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마저 끊어버리는 언행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전문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혜로운 너그러운 포용력있는 여유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포용력과 여유있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어느것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하죠.

 

 회사 면접을 보고 돌아왔을 때 첫마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돈은 얼마나 준다냐?’ 입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잘 다녀왔냐, 사람들은 괜찮은 것 같냐, 복지는 괜찮냐’ 이런 일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돈 돈 돈. 돈. 돈이 그렇게 좋으면 돈에 대해서 공부도하고 돈을 잘 벌기위해서 노력해보시지 왜 안하셨나요? 돈이 그렇게 좋으면 어떠한 노력이라도 하면서 행동에 옮겨보시지 그러셨나요. 돈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아파트값이 오르고 집값이 올라도 관리할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무슨소용일까요? 돈이 있어도 즐기지도 못하는 삶을 사는데 아빠라는 존재에게 진짜 필요한게 돈인가요? 마음의 여유 아닌가요? 그 여유는 자기 자신이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요? 정신이 피폐한데 어떻게 몸이 건강하겠습니까? 평생을 정신과 몸을 혹사시키며 살아와 전체적으로 피폐한 상태인데 정상적인 사람과 어떠한 대화가 되고 어떤 걸 같이 이루어가겠습니까? 아빠라는 존재의 언성높임과 비꼼과 투정은 모두 아기 같은 모습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원하는게 있으면 말하고 어떠한 기분이다 감정을 말하고 대화로 풀어가는 자세를 갖출 줄 몰라 아기처럼 울며 알아달라고 투정부리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합니까? 이런 것들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합니까?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이 한 행동을 뒤돌아보고 고치려고 노력하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그런 시간이 없었죠. 술먹고 자기 바빴는데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간 있었을까요. 나이가 들어 술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년배들과는 다른 인생에 욕심이 나십니까? 자식들에게 존경받고 손자 손녀가 어리광부리는 동년배의 생활을 부러워 하십니까? 부러워만 하십시오. 앞으로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니. 나이먹고 기본적인 언행이 수준이하인 사람에게 어떻게 존경을 하고 다가가 관계를 유지하기를 노력할까요. 부러워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을 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욕심입니다.

 

 앞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는 좁은 시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합니다. 돈은 벌고 쓰는 것이 전부가 아닌 협력과 이용에도 노력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관계에서 돈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더군요. 이번 세금문제와 가계문제로 형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협력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기분이 상한다고 막말을 퍼붓고 나가라고 몇 번이고 말하며 사람들을 힘들게 했죠. 만약 아빠라는 존재의 말대로 형이 나가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로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갔겠죠. 아빠라는 존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합니까? 이런 감정적인 일이 경제적인 일에 관련되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나요? 왜 말을 그런식으로 합니까? 미래가 안보입니까? 앞을 예상할 수 없습니까? 아빠라는 존재만 성질이 있습니까? 그렇게 형이 정말 나갔다면 집은 풍비박산나고 형은 아빠라는 존재와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대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빠라는 존재와 정이 없기 때문이죠. 엄마를 보면서 인내하며 아빠라는 존재에게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대우를 해주는 것도 과분합니다. 엄마는 항상 ‘아빠니깐, 아빠잖아’ 이러면서 우리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빠라는 존재에게 왜 잘해줘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정이 없고 아무 유대감이 없는 관계인데 아빠라는 존재만으로 사람들 엮는다는게 저는 굉장히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엄마가 어릴때부터 항상 중간에서 조율하고 하면서 이정도해서 대우 받는거니까 엄마한테 교육을 이렇게 밖에 못시켰니 이 따위 소리하지마십시오. 아빠라는 존재는 우리를 방관하지 않았습니까. 나아가 온갖 부정적인 나쁜 것을 경험하게 하며 마음속에 없어지지 않을 상처를 남겨놨죠. 엄마는 아빠라는 존재에게 대우를 하게 시키면서 우리가 비인간적인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억지로라도 다그치며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처럼 살 때 인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데 엄마는 저에게 그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마음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빠라는 존재가 있는 한 대우는 해줄 것입니다. 엄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나중에 나이들어 과거를 돌아봤을 때 ‘그래도 이정도는 했다.’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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