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민규 기자 [mgkim@ilgan.co.kr]
●벌 받는 기분으로 한 달간 머문 일본
오지호가 취중토크 인터뷰에 응한 건 지난 4월초.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 주 전에 만날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오지호가 심경의 변화를 보여 1주일 가량 인터뷰가 늦어졌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삼겹살집에 먼저 도착해있던 오지호는 한 눈에 봐도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다. 8㎏ 정도 빠졌다고 했다. 그에게 취중토크에 응한 이유부터 물었다. "전 괜찮다고, 이젠 그 친구를 마음 편히 떠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물론 제 처지를 잘 아는 친한 형들은 '마음 고생했다'며 격려해주지만 그외 많은 분들은 아직 저를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엊그제 호주에서 돌아왔는데 공항에 도착하니까 벌써 사람들이 저를 향해 수군거리더라고요. 간만에 만난 사람들도 '어, 한국에 있었네. 언제 왔냐'며 거리를 두는 게 느껴졌고요. 절 보는 시선이 너무 따갑고 답답했어요. 누군가 붙잡고 제 진심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일본과 호주에 머물렀다고 들었어요.
"예. 그 사건 있고 제가 미니홈피에 글을 올린 뒤 바로 짐 싸서 일본으로 갔어요. 도저히 한국에 있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매니저 형 아는 분이 마침 출장을 가셔서 빈집이 있다길래 염치 불구하고 거기서 한 달간 살았어요. 동경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미토라는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혼자 지냈나요?
"처음 며칠은 매니저 형과 둘이 있었어요. 형이 불안했는지 제 옆을 지키고 있더라고요. '나 괜찮으니까 서울가서 일 보라'고 보내놓곤 죽 혼자 있었어요. 태어나서 완벽하게 혼자가 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좁은 다다미 방에서 그 친구 떠올리며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되뇌었어요. 너무 힘들면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고 저 자신한테 말을 걸었고요. 거의 반폐쇄 상태로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휴대폰은 로밍해 갔나요?
"아니요. 그럴 정신도 없었고,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끔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정도만 했어요." -술은 자주 마셨나요.
"그 일 있고 오늘 처음 마시는 거예요. 줄담배 피우는데 술까지 마시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한 잔도 안 마셨어요."
●"진짜 힘든 건 그녀가 너무 보고 싶다는 것"
오지호는 "일본에서 보낸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잘 모르실 거예요. (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이 속에 있는 건 어느 누구도 몰라요. 많은 분들이 '그냥 액땜한 셈 치라'고 말해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요. 진짜 혼란스러운 게 뭔지 아세요?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이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위로가 되는 것 같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더 헝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예요. 결국 모든 걸 제가 다 껴안아야 돼요." -괴롭겠지만 그 때로 돌아가보죠.
"저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탤런트 a라고 기사가 뜰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검색어로 제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a는 오지호가 아니다'라는 기사가 떴어요. 그때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a였잖아요. 인터넷에 뜬 기사들, 다 맞는 말이지만 정확한 건 하나도 없어요. 진실은 그 친구와 저만 아는 거니까요." 오지호는 괴로운 듯 연신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는 "지난 일, 오해가 있지만 굳이 풀고 싶지 않아요"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가장 힘든 건 뭔가요?
"기사와 댓글들? 솔직히 하나도 안 무서워요. 연기 못한다는 질책? 수백번도 들어서 단련됐어요. 그런 것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아요. 제가 진짜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그건… 그건… 지금도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거예요." 오지호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건 이 고백을 한 뒤였다. 안경을 벗고 양손으로 뺨을 감싼 채 괴로워하는 그를 모두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10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오지호가 화장실로 향했다. 급히 달려온 매니저들은 "더 이상의 인터뷰는 곤란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인터뷰 강행을 원한 건 오히려 오지호 본인이었다. "형, 나 오늘 다 얘기할래. 이대로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자리에 앉은 그에게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빈소에는 왜 가지 않았나요?
"저 스스로 가장 한심스러운 부분이 그거예요. 제가 못난 놈이기 때문이죠. 왜 나는 그녀를 숨기려 했을까. 왜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했을까. 다른 남자들도 다 나와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어요. '빈소에 기자들이 있을 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무서웠어요. 그리고 밝힐 수 없는 진짜 이유도 있었고요." ●49재 올린 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져 -그게 뭔가요.
"(한참 망설인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지(가명)가 일하던 업소 관계자라면서 '생전에 수지가 가게에 진 빚이 좀 있는데 대신 갚아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어요. 소속사 사장님이 저 대신 그쪽 분들을 만나고 오신 뒤 '빈소에는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지금 돈이 문제냐. 달라는대로 주고 빈소에 가겠다'고 했지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네가 돈을 주냐. 괜히 약점 잡힐 수 있다'며 끝까지 말리셨어요." -잘 아는 분들이었나요.
"전혀요. 수지와 저를 잘 아는 마담과 동료들은 절대 심하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일본에 있을 때 수지가 제 꿈에 두번 나타났어요. '아이고, 인간아. 좀 잘 해라'라며 오히려 저를 측은해 하더라고요. 며칠 전 수지 유해가 모셔진 암자에 가서 49재를 드리고 왔습니다. 두 시간 동안 절 하면서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줬어요. 빈소에 못 간 죄인이니까…. 49재라도 제 손으로 꼭 지내주고 싶어서…." 오지호는 다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오지호는 귀국 일정도 여자친구의 49재에 맞췄다고 말했다. 오지호의 부모도 이날 아들과 함께 암자를 찾아 절을 했다고 한다. -계속 질문해야 하는 저도 괴롭네요.
"짚신과 새옷을 제사상에 올렸고, 밥을 실은 배도 물에 띄웠어요. 한쪽에서 물건을 태우고 있는데 마침 새가 지저귀더라고요. 나팔을 불던 스님이 '그 친구가 와서 우나 봅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날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졌어요. 49재 끝내고 하산하는데 중턱에서 파란 꿩이 나타나 차 앞으로 유유히 지나가며 산기슭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거예요. 그순간 그 친구가 진짜 다녀갔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수지씨를 떠올리면 지금 무슨 생각이 드나요.
"미안한 마음 뿐이죠. 그 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냥 헤어졌더라면…. 사고 있기 1주일 전에 싸우고 수지가 계속 제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러다 말겠지 하고 저도 신경을 안 썼는데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저 만나는 게 힘들고 부담스럽다며 헤어지자고 할 때 그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꿈에 나타난 그녀는 자꾸 '잘하라'며 혼내요" -가장 안타까운 건 뭔가요.
"죽기 전날 수지한테 걸려온 전화를 안 받았어요. 평소 같으면 안 그랬을 텐데 그때 뭐가 씌었는지 전화받기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죽기 직전 새벽에 저한테 음성 녹음을 남겼어요. 전화 꺼놓은 상태였는데 오전 11시쯤 녹음 내용을 들었죠. 술에 취한 목소리였고, 소음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그녀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어요. 수지는 이미 그때 다른 나라에 간 상태였죠. 제발 내용은 묻지 말아주세요. 저 혼자만 알고 싶어요. 수지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날 오후 6시쯤이었어요. '진짜 마지막이었구나' '설마 아닐거야'하며 제 마음도 동요하기 시작했죠. 왜 전화를 안 받았을까, 제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특히 수지 집이 tv에 나올 때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정말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 아닌가요? 그걸 보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가고 싶을 정도로 울컥했어요. 시청자들은 리포터가 하는 얘기가 모두 진실이라고 믿을 거 아닙니까. 매니저 형에게도 '형,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나설게'라고 말했어요. 너무 화가 났어요." -49재 치른 후 수지씨가 꿈에 나타나진 않았나요.
"딱 한번 나왔어요. 제가 촬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걸어오더니 '인간아, 좀 잘해라'라며 또 꾸짖더라고요. 엉겁결에 '알았어. 잘 할게'라고 했더니 웃으며 혼자 걸어가더라고요." -수지씨도 마음이 편안해진 모양이네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49재 치르고 꿩을 본 뒤로 잠이 잘 오기 시작했어요. 이전보다 마음도 좀 가벼워졌고요." -겪지 않아도 될 큰 일을 겪었는데 어떻습니까.
"연예인이 된 걸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후회했어요. 유명인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인생에 대해서도 돌이켜보게 됐고요. 그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산 것 같아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요." -한 드라마 pd는 '풀릴만 하면 꼬인다'며 오지호씨를 안타까워 하던데요.
"<환상의 커플>로 탄력을 한창 받을 때라 그런 말씀을 한 것 같아요. 이번 일로 cf 수입 10억원이 날아갔다는 얘기도 누가 하더라고요. 모두 제 인연이고 업보인 거죠. 인기를 얻을수록 자유는 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누가 저를 위해 총대를 메겠어요?" -자, 수지씨를 어떻게 떠나보낼 건가요.
"솔직히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지금 이런 말을 하면서도 너무 보고 싶어요. 딱 한번만이라도 만나서 얘기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이런 감정, 멍든 가슴처럼 한동안 저한테 남아 있겠죠. 얼마 전 수지 남동생을 만났는데 '누나, 좋은 곳에 갔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계속 '미안하다'며 그 친구가 울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 보니까 저도 따라서 울게 되고요." -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미니홈피에 쪽지 보내주신 것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읽어봤어요. 고맙습니다. 말없이 응원해준 분들께도 절을 올립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아요. 누가 만신창이가 된 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이쪽이 알고보면 비정한 동네거든요. 누가 총대를 메려고 하겠어요?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는 말처럼 좀 더 추스린 다음에 기회를 기다려야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그때부턴 본업에만 충실하고 싶습니다." -이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예. 전에 살던 삼성동에서 그 근처로요. 짐 정리 하면서 그녀와 찍었던 사진도 나오고,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 파일도 보고 그랬어요. 이제 수지를 보내줘야죠." -끝으로 오늘 인터뷰 후회하지 않겠어요?
"왜곡하지 않고 말한 그대로 써주시면 후회 안 할 겁니다. 주위 사람들 말고 모르는 분한테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좀 후련한 기분도 드네요."
오지호와의 취중토크는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쓸쓸했다. 연인을 잃은 그의 상실감과 죄책감이 토씨에까지 배어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오지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못난 놈 얘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가지 부탁 드리고 싶어서요. 저 보다 그 친구가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괜찮거든요. 그러니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