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는 사회면 보다 연예면에 나와야죠"
모자를 눌러쓴 최진실은 오후 6시 정각에 나타났다.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핸드백에서 카드와 볼펜을 주섬주섬 꺼내든다. 며칠 전 출산한 선배 부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한 것이란다. '아가야,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걸 축하해∼. 아빠 닮지 말고 꼭 예쁜 엄마 닮으렴. 진실이 언니가.'
-역시 아줌마 보다 언니로 불리는 게 안심이 되죠?
"그럼요. 타협할 수 없는 여자들의 로망이죠(웃음). 서른 넘으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운 거 있죠. '우정의 무대' 가서 노래 부른 게 엊그제 같은데…. 레몬소주 어때요? 이왕이면 비타민 들어간 게 낫잖아요. 나이 먹으면 몸 챙겨야 돼요."
최진실은 군 복무중이던 동생 최진영을 면회하기 위해 mbc tv '우정의 무대'에 네 번이나 출연했다고 한다. "그것도 강원도 철원으로요. 지금 이화여대 교수가 되신 주철환 pd가 연출할 때인데 '동생 만나러 가자'고 불러놓고는 못 부르는 노래까지 부르게 했죠. 그땐 제가 이효리였어요. 많이들 좋아해주셨죠."
-사실 요즘 이효리 보다 인기가 더 좋았죠?
"에이, 민망하게 제 입으로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요. 그때만 해도 tv가이드, 스타채널 같은 주간지가 인기였는데 제가 기르던 강아지까지 기사로 다뤄질 정도였어요."
-취중토크 인터뷰를 먼저 요청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나 봅니다.
"얼마 전 김명민씨 취중토크 한 걸 봤어요. 인터뷰가 서로 뻔한 얘기 묻고, 답하는 건데 이런 취지의 인터뷰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장일단이 있지만 아무래도 술이 들어가면 진솔해지잖아요. 억눌려 있던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거니까."
-본인 관련 뉴스는 어떻게 접하나요?
"주로 인터넷으로 봐요. 구독 신문은 두 개로 줄였고요. '악플 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이 재밌으면서도 참 씁쓸한 것 같아요. 뼈저리게 느낀 건데 연예인은 연예면이나 문화면에 나와야지 절대 사회면에 나오면 안 돼요(웃음). 가십이라도 연예면에 나올 때 행복한 거예요."
●집에선 두 얼굴을 가진 엄마
최진실은 7세, 5세인 1남 1녀의 엄마다. 환희와 수민이. 서울 잠원동에서 친정 어머니와 함께 3대가 산다. 레몬소주를 서 너 잔 마신 그는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말수가 부쩍 많아졌다.
-혹시 과잉보호 안 하세요?
"절대 안 해요. 될 수 있으면 강하고 거칠게 키우자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며칠 전 환희가 집에서 놀다가 약지 손가락이 찢어져서 10바늘이나 꿰맸어요. 마음 속에선 불이 났지만 그럴수록 애 앞에선 담담하게 '너 그럴 줄 알았다'며 꾸짖어야 돼요. 엄마가 아이 앞에서 쩔쩔 매면 아이가 더 불안해 하거든요. 또 그래야 다음에 안 다치고요."
-집에선 어떤 엄마인가요.
"두 얼굴을 가진 엄마죠. 한없이 착한 천사였다가 어느 순간 무서워지니까(웃음). 1주일 중 딱 하루 촬영이 없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뒹굴어요. 사람들도 집으로 부르고요. 애들 눈을 보고 있으면 심장에 납이 달린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아이고, 이 애들을 앞으로 어떻게 잘 키워야 하나' 책임감이 밀려드는 거죠. 솔직히 잠이 안 오는 날도 많아요. 혼자 거실에서 한강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소파에서 토막잠 자고 촬영하러 나가는 날도 있어요."
-무슨 걱정이 가장 큰가요?
"아빠 몫까지 제가 해야 되니까요.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1주일에 하루씩 집 근처 영동호텔 여성전용 사우나에 아이들 데리고 가는데 내년부터 환희는 입장이 안 된대요. 식혜, 요구르트 사주는 아줌마도 있지만 항의하는 분들도 있으신가 봐요. 목욕탕에서 아들 때밀어 주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내년부턴 진영이 삼촌이 데리고 다녀야죠."
-아빠 빈 자리가 그럴 때 크겠군요.
최진실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술이 당긴다"며 술잔을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원 샷이었다. 술잔을 꺾어 마시는 기자에게 "그렇게 마시는 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계속 눈총을 보낸 그였다.
"결혼 안 하셨죠? 전 비록 결혼에 실패한 여자이지만 제가 훈수 한 마디 할게요. 미모, 학력, 집안 다 필요없어요. 배우자는 이해심 많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최고예요. 스펀지처럼 상대방의 희노애락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만나세요. 열등감, 자격지심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피하세요. 그게 언젠가 공격성으로 드러날 수 있거든요."
●"환희 아빠와 결혼한 건 후회 안 해요"
-조성민씨 원망은 안 하나요?
"예. 한 두 달 전에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그날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애증이 말끔히 사라졌어요. 좋게 말해서 서로 용서한 거죠. 한화 이글스에서 제발 등판 좀 자주 해서 아이들한테 자랑스런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요. 응원까진 못 해도 마운드에 자주 서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환희 아빠 얘기 안 하고 싶은데 자꾸 물어보시네요. 그 사람과 결혼한 건 후회 안 해요. 그 사람 만나서 연애하고, 임신하고… 다 좋았어요. 충분히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저한테 보석같은 아이들을 줬잖아요. 문제는 좋았던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죠. 서로 감당하기 힘든 상대였어요."
-아이들한테 아빠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나요.
"다행히 환희는 어른스럽게 잘 이해하는 편이에요. 제가 술 먹고 늦게 들어가면 환희가 절 안아주면서 '엄마,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래요. 갈수록 멋있는 녀석인데 전 그럴 때마다 속없이 눈물이 나요. 나중에 제가 환갑이 됐을 때 우리 아들이 '엄마 다 괜찮다'며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저를 껴안고 다독여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수민이는 아빠와의 추억이 거의 없어요. 엄마로서 그게 너무 안 됐고 속상하죠."
-수민이도 아빠의 존재를 알죠?
"핏줄이라는 게 참 기가 막혀요. 수민이가 장난감을 모아놓는 비밀창고가 있는데 성민씨 사진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까 제 앨범에서 꺼냈대요.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 나오면 '아빠 나와?'하고 묻는 것도 수민이에요. 우리 딸이 아빠 많이 보고 싶대요.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아빠 야구선수'라며 끔찍이 챙겨요. 그걸 지켜봐야 하는 어미 맘이 어떨 것 같아요?"
그런 날이면 최진실은 또 불면의 밤을 보낸다고 털어놨다. 그럴 때 의지하는 건 역시 사람. 휴대폰으로 연결된 누군가에게 신세한탄도 늘어놓고, 울먹이기도 한단다. 20~30명 중 가장 어깨를 잘 빌려주는 사람은 친구 이영자. 그를 새벽교회로 인도해 준 사람도 그녀다. "힘들 때 뾰족한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면 어느 정도 마음이 후련해지거든요. 제가 남편 복은 없어도 친구들 복은 있나 봐요."
●세상과 사투를 벌이면서 산다
-주위에 우군이 많아서 든든하겠어요.
"언젠가 저도 죽겠죠. 그때 저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사람들이 있으면 돼요. 잘 나갈 때 꽃등심 먹은 사람 보다 힘들 때 라면 같이 먹어준 사람이 오래가는 법이거든요. 사랑 때문에, 사람 때문에 늘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새살이 돋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사랑이고 사람인 것 같아요. 인생? 그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아요. 살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할 수 있는 거죠. 전 죽는 날까지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은 여자예요."
-인간 최진실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요?
"비교적 잘 알죠. 제가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데 매니저와 코디네이터들이 아침에 만나면 제 표정부터 살펴요.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눈치를 보는 거죠. 기분 다운된 날은 아무도 먼저 말 안 걸어요. 움직이는 시한폭탄이기 때문에 괜히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을 수 있으니까요(웃음)."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나요?
"가끔은 그렇죠.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그럴 때마다 영자가 '친구야, 그건 하느님이 널 교회로 호출하는 거야'라며 응원해줘요. 불면증에 시달릴 때 '영자야, 잠이 안 와'라고 문자메시지 보내면 뭐라고 답이 오는지 아세요? '친구야, 언능 자. 다음 생에선 내가 남자로 태어나 널 재워줄게'라고 와요. 몸이 아픈 날은 촬영 펑크 내고 싶은 유혹에도 시달려요. 그럴 때마다 우리 애들하고 괌에 놀러가는 모습을 떠올려요. 힘든 오늘을 견뎌내야 행복한 내일도 맞이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곤히 자고 있는 새벽에 전화가 오면 받는 편인가요?
"그럼요. 제가 새벽에 자는 사람들 깨우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받아줘요. 대부분 취객들이죠(웃음). 갑자기 보고 싶다며 호출하는 친구, 이 사람 저 사람 전화 바꿔주는 사람, 술김에 서운했던 감정 털어놓는 선배, 사는 게 힘들다고 우는 동생…. 정말 대한민국은 술 권하는 사회 같아요. 사연 없는 사람이 없어요. 온 국민이 드라마 작가해도 될 것 같아요."
●평탄한 인생은 매력이 없다
두 병 가까이 레몬소주를 마신 최진실은 "내일 새벽부터 촬영이라 이제 술은 그만 마셔야 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매니저가 차 시동을 걸기 위해 나갔지만 최진실의 이야기는 그 뒤로 30분 더 이어졌다.
"아까 저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많냐고 물었죠? 솔직히 많았어요. 지금 얘기 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곡하지 말고 잘 적어주세요. 우리 수민이가 아빠 보고싶다는 말도 꼭 써주시고요."
-우아해 보이지만 물 밑으로 열심히 갈퀴질하는 백조가 생각나네요.
"우리 사는 거 총알만 안 날아다니지 전쟁이에요, 전쟁. 요즘 촬영중인 드라마도 가끔 납득이 안 되는 대본을 받으면 작가·연출 선생님과 많이 싸워요. 무례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가짜 연기 하는 건 죽기 보다 더 싫거든요. 적당히 머리로 하는 연기, 시청자 속이는 연기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요. '대충 묻어갈 줄도 알아야지, 넌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사냐'며 조언해주는 분도 있지만 난 그게 잘 안 고쳐져요. 평탄한 인생은 매력이 없거든요. 치열한 게 최진실인데, 그걸 고치면 내가 없어지는 건데…."
-반대로 삶의 희열을 느낄 땐 언젠가요?
"작가 선생님이 주옥같은 대사를 주셨을 때. 어떻게 내게 이런 대사를 주셨을까, 감탄할 때 기쁘죠. 그리고 적당히 관심 받고 여유로운 요즘도 행복해요. 한때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았잖아요."
-또래 연기자들 중 누구와 친한가요.
"(이)미연이요. 미연이가 주연한 드라마 첫회 보고 문자메시지 보내줬어요. 정말 기대하던 드라마였어요. 요즘 강수연·황신혜·이미숙·김희애 같은 중견 배우들이 좍 포진해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한지 몰라요. 우리 386세대 탤런트를 너무 빨리 이모나 고모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연기하는 가수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시청률 좀 낮으면 어때요? 제발 기 죽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언론도 댓글 보고 기사 쓰지 말고 중립을 잘 지켜줬으면 해요. 우리들은 내성이 생겨 상처 잘 안 받지만 그들은 아직 연약해서 속으로 울어요. 실패도 경험인데 아직 그걸 모르죠.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이 겁나지는 않나요?
"무섭진 않지만 조심은 해야죠(웃음). 저도 만약 요즘 같이 인터넷이 성행할 때 데뷔했으면 아마 1년 안에 '축 사망'했을 거예요. 처음엔 '인터넷이 뭔데 나를 평가하냐'며 댓글에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겸손해졌어요(웃음). 차라리 정곡을 찔러줬을 땐 고맙기도 하더라고요. 세월 앞엔 진실이도 어쩔 수 없나 봐요."
●조성민에게 보내는 편지
환희 아빠, 짧았지만 우리도 한때는 행복한 부부였다. 어쩌겠어. 우리 인연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걸. 서로의 잘잘못 이제 그만 따지기로 해요. 우리 두 사람 지금까지 충분히 벌 받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고, 팔자라고 생각하자. 나 씩씩하게 두 아이들 키우고 있어요.
딱 하나, 당신한테 바라는 게 있어. 나도 열심히 살 테니까 성민씨도 두 아이 아빠로 최선을 다해줬으면 해요. 우리 애들한테 만큼은 누구보다 떳떳한 엄마, 아빠가 돼요. 몸 관리 잘해서 환희, 수민이가 자랑할 수 있는 야구선수 아빠가 돼줘요. 공 하나를 던지더라도 멋있게. 수민이가 tv 보면서 당신 응원한다는 사실 잊지마요.
환희 아빠,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준대. 우리 환희·수민이가 어른이 됐을 때 '우리 엄마, 아빠가 최진실·조성민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게 살자. 알았지? 그리고 혹시 누가 먼저 재혼하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진실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