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아빠만 믿고 따라와 아는 곳 하나 없는 멀리까지 와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여기 와서 지역 감정으로 같은 아파트 나이 드신 분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고, 어렸을때부터 허약했던 몸으로 저와 동생을 키운다고 우울증도 심했어요. 게다가 아빠가 막내인데도 직접 할머니를 모시는 바람에(5분 거리에 할머니가 사십니다) 엄마는 20년동안 할머니 병원 수발 등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셨어요.
큰 아빠들은 할머니 가지고 계셨던 땅 할머니 몰래 팔아먹은 뒤로는 할머니집에 오지도 않고 신경도 안 씁니다. 명절 때도 제사 드릴 때만 와서 음식만 먹고 쏙 가저리고 준비와 뒤처리를 담당하는 건 엄마였어요. 그럼에도 엄마는 시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할머니를 가까이서 모셨어요. 아빠도 그런 엄마에게 정말 잘해줬고요.
문제는 할머니가 치매 오고 나서부터입니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며느리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제가 자라면서 안 들어본 며느리 욕이 없습니다. 저희 엄마에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외모 비하 같은 것도 많이 하셨어요.) 치매가 오더니 엄마를 도둑 취급하더라고요.
그때 엄마를 찾아와서 도둑년 __ 뭔년 온갖 욕을 퍼부은 뒤로 엄마는 무서워서 할머니를 더 이상 모시지 않습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저와 아빠가 찾아가요.(대개는 다른 날에 갑니다.) 그래도 아빠는 아들이고, 저는 손녀니까 그래도 효를 다하려고 갔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는 엄청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때부터 아빠가 엄마에게 잘 대하는 게 좀 사라지더라고요. 못 대하는 건 아닌데, 전처럼 잘 해주지도 않아요. 그리고 할머니가 엄마 욕을 하는 거에 대해서 아빠가 위로 한 마디만 해줘도 좀 좋나요.. 아빠는 그래서 할머니 안 모셔도 아무말도 안 하는데 뭔 위로까지 해주냐는 식입니다. 저희 엄마는 엄연히 할머니랑 남인데 말이죠.
그리고 할머니가 여태 제 앞에서 엄마 욕을 할 때는 제가 적당히 끊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어요. 근데 오늘은 뭐가 그렇게 기분 나쁜 건지 엄마가 인간도 아닌 짐승이라느니 이간질을 해서 가족 간의 정을 다 끊어놨다니 대가리가 썩어빠졌다느니 욕을 해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무리 병이라고 하지만 제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할머니를 보러 와야 하나요?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엄마는 주말에 아빠랑 데이트를 한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아빠의 주말은 온통 할머니와 있거든요. 그러면서 엄마한테 미안해하지도 않고요. 할머니야 병자니까 어쩔 수 없죠. 근데 저희 아빠 대처가 진정 맞는 건가요? 아무리 할머니가 병자라도 제가 이런 소리 들으러 할머니집에 와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