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정상이 맞는 걸까요? (긴글, 횡설수설 주의)
쓰니
|2020.06.27 22:02
조회 107 |추천 0
현재 23살이 된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질문의 제목대로... 저는 지금 제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이 많이 우울합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써내렸지만, 툭하면 눈물이 나오는 체질이라 지금도 글을 다 써갈 즈음엔 울고있을 것 같습니다. 그 어느곳에도 말할 수 없어서 이곳에 올려봅니다. 미리 긴글 죄송합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 제가 7살이었던 무렵. 그 때부터 할머니는 술을 드실 때마다 제게 '너희 아버지는 결혼을 잘못했다.', '네 애비는 불쌍한 사람이다' 같은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욕을 들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엔 그게 잘 와닿지 않아서 그저 멍했고, 어느정도 생각이 들어찼을 즈음엔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는 건가, 두분의 잘못된 결혼을 통해 나온게 나라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걸까 하고 속이 상해 울기만 했습니다. 고등학생 즈음 되고나니 왜 내가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며 대들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결국 고3때 따로 분가해서 살게 되셨습니다. 물론 그 때까지 끊임없이 밤에 술만 마시면 그 소리를 고스라히 들어야 했었습니다.
부모님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엔 점잖으신 분입니다. 시시껄렁한 농담도 곧잘 하시는 분이고, 적어도 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분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아버지는 몸이 받쳐주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하시면 집에 들어와서 고함을 지르며 물건을 때려부수는 술버릇이 있으셨습니다. 평소 멀쩡하실 때도 무언가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폭발하면 물건을 집어던졌습니다. 사람에게 손찌검은 결코 하지 않으셨고, 사람 쪽으로도 물건을 던지지 않았지만 전 지금도 아버지가 무서울 정도로 그 기억이 좋지 않게 남았습니다. 술이 깨신 아버지는 그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고, 어느정도 화가 진정되고 나서도 고함을 지르지 않을 뿐, 그 무서운 분위기에 며칠동안 말도 제대로 못 꺼낼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특히 다리가 편찮으십니다. 최근에 큰 수술로 하여금 많이 나아지셔서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평소에 그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것을 압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랑 할머니보단 어머니에게 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일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건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였고, 그때 이후로 저는 부쩍 어머니랑 많은 시간을 보내며 친해졌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속으로 앓고 있는 고민들을 어머니한테 털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려부순 뒤에 일말의 사과 없이 마치 없던일 처럼 흘러넘어가는 아버지의 일도, 밤마다 제게 부모님의 욕을 퍼부으며 너도 똑같은 년이라고 욕하던 할머니의 일도, 중3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잠들지 못했던 일들도, 어머니한텐 그 어느 것 하나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그 일들이 더이상 나를 위협할 수 없게 되고나서야 '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왜 그때 이야기 하지 않았어'라면서 속상해 하셨습니다. 저도 이런 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최근에 있던 일로 인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나이를 많이 드셨고, 덕분에 술을 먹고 정신을 놓으시는 일이나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는 일도 많이 없어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십여년동안 천천히 유해지셨고, 덕분에 저는 뒤늦게 부모님에 대해 반항심이 섰던 것 같습니다. 툭하면 아버지가 하는 말에 날카롭게 반응하고, 사춘기가 뒤늦게 온 것 마냥 까칠하게 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도차도 제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걸 알지 못할정도로, 저는 한동안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상대하기 꺼려질 정도로 사나웠습니다.
어머니가 어느날은 아버지가 없는 날에 저를 앉혀놓고 물었습니다. '너 요새 왜 아빠한테 그모양이야, 뭐가 불만이야.' 저는 감정이 차오르면 울음을 참느라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가 없어서, 노트에 휘갈기듯 글씨를 썼습니다.
'난 아직 아빠가 무서워. 아빠가 소리지르고 그랬던 것 때문에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것 같아.'
이렇게 휘갈겨써서 보여드렸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면, 그때 딱히 명확한 답을 듣고싶어서, 해결해주길 바라서 적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그래서 그랬구나, 같은 위로 한마디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걸 보자마자, '너는 네 아빠를 무서워하는게 아니다.', '지금 네 행동이 어딜 봐서 무서워서 하는 행동이냐.', '지금까지도 네 아빠가 무섭다면, 그건 병이다. 정상이 아닌거다.'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기억이 심하게 왜곡되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저런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너와 네 아빠 사이에 껴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고 말하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답을 듣고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던건... 본능적으로 이런 답을 듣게 될지도 몰라서 그랬던게 아닐까 하고.
이후로 저는 아버지에게 다시 유해졌습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전처럼 날카롭게 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점에 만족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집안은 다시 평화로워졌습니다.
어쨌든, 저런 시간이 지나고나서... 부모님은 저를 잘 키우셨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저 또한 특별히 사고 치는 것 없이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생이 되고나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끊임없이 미루고 미루고, 그러다보니 과제까지 미뤄버리는 탓에 학사경고를 먹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최악의 경우로 제적처리까지 당할 정도로 학교생활에서 거의 손을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번학기 평점이 엉망이면 학사경고 총 3회로 제적처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만창과를 준비하다가 디자인학과를 들어와 강의를 1년 정도 수강하고나니 이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시험을 쳐서 만창과에 들어가는건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 창작을 배우기 위해 입시를 준비했고, 그 덕분에 완전하진 않지만 어쨌든 스스로 생각하고 작업해야 하는 과에 들어왔는데 그 순간부터 전혀 창작이 안되고, 수업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무기력하게 잠들어 있는 시간도 있고, 모든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둔 채 유튜브를 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SNS위주의, 얼굴조차 모르는 상대방과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 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즐거워서 모든걸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던 사람들과의 연락이 귀찮고 힘들고, 매일마다 한 번씩 가족이 다같이 모여 앉아서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이 불편해졌습니다.
제가 천성이 게을러서 이 지경이 된 것인것 같아 스스로가 너무 못나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집이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라 한번은 이불을 털기 위해서라며 옥상에도 혼자 올라가서 밑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주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식칼에 눈이 가기도 하다가도, 몸이 아픈건 끔찍하게 싫어서 조용히 방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평생을 착하게 잘 지냈으면서 왜 23살이나 먹고 이제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게될까봐 부모님한텐 그 어떠한 이야기도 못하겠습니다. 부모님이 지난 시간동안 제게 희생하셨던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설령 대학을 제대로 못나와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그만큼 도로 갚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있어서...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무슨 일이든 하는게 낫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요. 제가 좀 더 정신 차리고 지내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명확한 답을 얻고싶다기 보단, 어디에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 이렇게 적어봅니다.
만약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