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야위시고 체구도 작으신 우리 외할머니
어릴 적에는 할머니랑 친하고 뇌도 텅텅 맑았을 때라 아무것도 몰랐는데
머리 좀 크고 할머니랑 멀어지고 나서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이게 된 이후로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파
할아버지랑 떠밀려서 하게 된 결혼으로 원치않은 관계로 피임도 잘 안 되던 시절에 자식을 여섯이나 낳으시고
알콜중독이시던 할아버지 술드실 동안 밭에서 나물캐서 장터에서 파셔서 여섯자식 학교 보내시고
물론 이모랑 삼촌들 모두 변변찮은 곳에 취직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게 대다수라 성공한 분은 안 계시지만 그래도 늙으셔서 여섯 자식들한테 효 받으면서 사시나 싶었지만
챙겨드리고 싶어하는 이모들은 모두 가난하거나 이혼하거나 자식들이 속썩여서 할머니 챙길 틈도 없고
돈 좀 버는 삼촌이랑 막내이모는 부모는 나몰라라 시골도 잘 안 내려오고
그나마 가정 멀쩡하고 일찍 철이 들어버려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려오셔도 골빈소리 안하는 내가 있는 우리집에 잠깐씩 오시거든 몸도 안 좋으셔서 몇 개월에 한 번 씩 약 타시고 검진 받으시느랴..
근데 최근에 막내삼촌이 조현병 진단이 나왔어.. 의학이나 법학에 관심 아주조금이라도 있는 애들은 알겠지만 이 병이 아주 위험하거든.. 심해지면 심해지지 절대 좋아지진 않고
자해면 다행이고 자살이나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병인데 최근에 삼촌이 조현병으로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이모들 다들 할머니께 숨기려고 했는데 그게 되나..
할머니 안 그래도 이 소식 듣고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셨는데
몇 주 전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머무셨거든 병원 가셔야 해서 근데 삼촌 폭행죄로 어수선할 때였어 각 식구들이 다들 탄원서 쓰고..나도 썼지
근데 주말 아침에 소란스러워서 눈을 뜨니까 엄마아빠가 싸우고 계시는거야..
사실 우리엄마가 많이 아프시거든..뇌출혈로 거의 사망하실뻔한걸 기적적으로 살아나신건데
아빠는 다른 이모들 다 뭐하는데 당신만 어머님 신경쓰냐..사실 당신이 제일 위험한 환자인거 모르냐 집에서 몸보신만해도 불안하고 걱정인데 다른 처제들은 뭐하는 거냐 하시고..엄마는 그래도 내 엄마인데 당신까지 왜그러냐 나라도 이러지 않으면 우리 엄마 누가 책임지냐 싸우시고..
두 분 다 이해가 가고 그러는 데 집 안에 할머니가 안 계시더라고.. 갑자기 위험한 생각 오만 생각이 다 들어서 자다깨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집 뛰쳐나와서 비상구 가니까
그 찬 비상계단 바닥에서 쪼그려앉아서 우리 할머니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계시더라
말로 형용 못했고 나는 그냥 할머니를 안아드렸는데.. 겨우 19년 산 내가 할머니를 감히 안아드려도 되나 싶고
잠시 뒤에 엄마가 들어오시긴 했는데 엄마가 문 열자마자 울고계신 할머니를 보고 아무말도 못하시고 눈물만 글썽이시다가 바로 나가버리셨어
그리고 다시 들어오셔서 눈물 닦아드리라고 수건만 던지시고 가셨다가 또 다시 들어오셨길래 난 빠졌지 아마 울음소리가 겹쳐 들린 걸 보니 두분이서 계속 우신 듯 해 난 그냥 방에서 멍때리고 마른세수만 하고 아빠도 속터지신듯 침실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시고..
그냥 평생을..누구를 위해 희생한 건지 모르겠을 우리 할머니가 그냥 다음생에는 최고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셨음 좋겠어
물론 우리 할머니보다 기구한 분 더 많으시겠지.. 더 힘드신 분도 계시겠거니와 나는 그냥 할머니가 다음 생에는 지금의 10배 10000배는 더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다.. 우이 할머니니까 꼭 그랬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