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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해군분 위해서 청원 한번씩만 해줘

ㅇㅇ |2020.07.05 21:01
조회 46 |추천 0
제목을 뭐라고해야할지 모르겠어서...제목이 좀 두서없는데
들어와줘서 고마워 글은 내가 허락 받고 결시친에서 퍼왔어
10대판 화력 좋으니까 한번씩만 관심 가져줘

내용 요약하자면
해군으로 일하시던 분께서 크게 다치셨는데
치료비도 제대로 지원 받지못하고 압박감에 출근 하시다가 돌아가셨어 근데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있어
청원 한번씩만 부탁해
하는데 1분도 안걸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dbUn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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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청해진함 홋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이형준 하사의 누나입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저희 동생 사고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잘못을 한 자는 그에 맞는 처벌을 받길 원해서입니다.

저희 동생은 2018년 11월 해군 잠수함 구조함인 청해진함에서 홋줄에 발이 묶여 양발이 모두 골절되었고 6번의 대수술 후 후유증을 앓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7번째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2020년 4월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제 동생이 타고 있던 청해진함은 함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7 부두에 있어야 했지만 6 부두에서 정박할 준비를 했으며 홋줄은 6 부두에서 이미 나가 있었습니다. 홋줄을 배로 다시 넣었는지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함장은 후진을 지시했고 엔진이 작동되면서 나가 있던 홋줄이 스크루에 감기면서 제 동생 발이 묶여 홋줄과 같이 끌려갔고 한순간에 제 동생은 두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됐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당시 청해진함에 탑승했던 현직 해군들이 증언한 내용입니다")

사고가 난 직후 동생의 상태는 양발이 골절되어 뼈가 모두 부서져 있었고 한쪽 발목은 ㄱ자로 꺾여 뼈가 튀어나왔었고 다른 한쪽 다리는 뼈가 산산조각 났었습니다 피부또한 다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동생이 홋줄에 맞아 피로 물든 빨개진 눈으로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자신의 다리가 절단되었는지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동생은 6번의 큰 수술을 하며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어 마약성 주사를 맞으면서도 고통을 계속 느끼며 지낼 수밖에 없었고 동생을 지켜보는 저희 가족도 함께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고후 참모총장까지 찾아와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 치료에 전념하라고 하였으나 그 말을 믿은 저희가 바보였습니다.

6번의 대수술 후 의사는 동생에게 재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동생 상태는 일반 재활이 아닌 특수재활치료를 해야만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군에서 지원 가능하다는 해군의료원에서는 특수재활을 해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수재활 치료비는 지원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고 동생은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걷고 싶은 절실한 마음에 빛을 내서 라도 해야겠다 싶어 사비로 특수 재활을 시작했지만 한 달에 500만 원이나 되는 비용을 앞으로 장기간 받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수천만 원의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길까 두려워 한 달만 하고 끝냈었습니다.

그후 해군의료원에서 특수재활을 받아야 하는 동생은 기구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재활환경에서 일반적인 물리치료 수준의 재활치료를 받으며 지냈고 다리상태는 호전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은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누나인 저에게 자기가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라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찢어지는 거 같았지만 저는 그저 위로밖에 해줄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꼭 걸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느날 동생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었습니다.
동생의 상사가 동생에게 찾아와 이제 좀 걷네 출근 할 수 있겠다며 장기(정규직)를 할 거면 출근해야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제가 본 동생의 상태는 아픈 걸 참아가며 절뚝절뚝 한 걸음씩 천천히 걷는 수준이었습니다.
왜 그분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동생에게 심적인 압박을 주었을까요....
동생은 사고 이후 다리가 자신이 생각한 거 보다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로 이 다리로 다른 직업을 구할 수나 있을까.... 요즘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 두다리가 성치 못한 자신을 어디서 받아줄까 생각을 했고 4년 단기복무 부사관이었던 동생은 의무복무 기간이 지나면 자신이 이 상태로 내쳐 버려질 거란 생각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불안증과 불면증도 생겼었습니다.

그후 가족들 모두 치료가 우선이라며 뜯어말렸지만 살아갈 날이 많을 줄 알았던 동생은 미래에 대한 큰 압박감에 절뚝거리는 다리로 출근하기 시작했고 성하지 않은 몸으로 업무에 복귀 후 상태가 호전되지 못하였고 그러다 결국 7번째 대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23살에 생일상도 받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수술을 여러 번 하다 보니 한번은 쇼크가 왔었는데 그때 죽다 살아난 동생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잘못해서 다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죽어버리지 왜 살아났는지 원망스럽다고....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죽는 건 두렵지 않다고 아픈 게 두려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길래 어린 동생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졌을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거 같았습니다....

또한 해군 측은 제 동생사고사건을 안일하게 대처하였고 당사자인 제 동생이 사고상황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지만 사건기록을 열람하지 못하게 은폐하였고 끝내 저희 가족 모두도 수사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는 채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청해진함 사고와 관련하여 징계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고 해군 측 입장 발표에는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하여 주의와 경고 등 조처를 했다는 말을 내놓았습니다

도대체 피해 정도는 어떻게 구분이 되는 것이며 제 동생은 양발이 부서져 다리의 피부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영원히 뛸 수도 없게 되었는데 또 6번의 수술을 받으며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주의와 경고로만 끝나는 일이 되는건지....

제 동생사건이 있고 6개월 후 벌어진 최영함 홋줄사건에는 함장 등 사건관리자 3명이 감봉 근신 등의 징계를 받았지만 제 동생사건을 벌 받아야 할 사람은 벌을 받지 않은 채로 이대로 묻혀가고 있습니다.

동생이 떠난 사실만으로도 삶이 힘든데 동생이 억울하고 불쌍하게 세상을 떠나 하루하루가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제 동생이 왜 이렇게 안타깝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저도 이런 일은 뉴스에서만 보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제발 저희 가족을 도와주세요. 한 분 한 분의 작은 관심들로 제 동생 사건이 재수사 될 수 있도록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대로 된 징계를 받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1살인 나이에 해군에 입대해서 특전사에 지원하겠다고 말한 지 한 달 만에 영원히 뛸 수없는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안타깝게 죽은 제 동생의 죽음이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재조사를 간절하게 원합니다....

청원에 동의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dbUn9a





(관련기사)

(1)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241821?cds=news_edit

(2)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24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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