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경.찬송가 발간에서 민족교회관 수립
선교사업 진행에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성경 및 찬송가의 역간이라 하겠다. 하물며 프로테스탄트 교회야말로 성경을 중심한 교회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그 어디에나 선교지에 들어가기만 하면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케 하는 과업을 먼저 수행하였다.
한국에 있어서는 유독 선교사가 정식으로 입국하기 전에 국외에서 성경이 번역 출판되었고 이것이 국내에 반입 전포되었다는데 특색이 있다. 그러나 만주에서 출간된 로쓰 번역(Ross Version) 성경이나 일본에서의 이수정 역 성경은 단시일에 너무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역이 많았다. 또 지방 사투리의 표현이 섞여 있었다. 그런고로 표준어로 되는 정확한 성경의 번역은 필수적 요청이었다.
1887년 언더우드,아펜셀라,스크랜톤,헤론의 네 사람으로 조직된 성서위원회는,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않는 외국인들이면서 참고 서적이나 한글 사전도 없는 상황에서 고생을 다하면서 번역사업에 착수하여 20년이 지난 1906년에 신약성경의 결정본을 출간하였다.
1908년에 김정식,김명준,김창식의 한국인 세 사람이 번역 위원으로 가담되었음은 한국민족 교회사 상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 사실로서 기뻐할만 하다. 1911년에는 구약성경의 번역이 끝나면서 출간되었고 또 그해에 신구약의 합본 성경도 간행되는 거사를 만났다.
성경이 나오기 전 해인 1910년은 국가적으로 한민족이 일본에게 합방 당한 너무나 슬픔에 가득찬 해이었다. 그러기에 당시의 수백만 한국인들은 한글로 된 성경을 보자 열렬히 애독하였다. 나라 잃고 멸시 당하는 힘겨운 처지에 빠질수록 더욱 우리말과 우리 글의 귀중함을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은 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 민중 사이에도 널리 보급되어 한글을 퍼쳐 한국 국문학사에도 불멸의 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이 성경의 내용이 진리로서 무지와 몽매를 깨우치면서 겨레 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여 애국 애족심을 크게 일깨웠은 두말 할 것 없다.
찬송가의 편간도 한국교회의 문서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선교사들은 성경 번역과 거의 동시에 찬송가의 편간 사업에 착수하였다. 1896년에는 감리교 찬송가로 '찬미가'가 나왔고 1898년에는 장로회에서'찬셩시'를 출간하였다. 초대 교인들은 정확한 곡조로 유창하게 찬송가를 부르지는 못하였으나 나라 잃은 설음 속에서 그 얼마나 열심히 찬송을 불렀는지 모른다.
1.우리 황상폐하 천지일월 같이 만수무강
산높고 물고운 우리 대한국에 하나님 도우사 독립부강
2.이천만 동포난 한맘 한뜻으로 직분하세 사욕은 버리고 충의만 앞세워
임군과 나라를 보답하세
위는 초대교회에서 찬송으로 부른 애국가의 몇 절을 뽑은 것이다. 초대 교한국교회는 태극기와 십자가를 항상 걸엇으며 말하자면 태극기와 십자기는 애국하는 한국교회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찬송의 연창은 우리 민족이 도탄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새 희망을 찾으려고 애쓴 그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실로 이는 한국 민족교회관 수립에 있어서 크게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