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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야기

ㅇㅇ |2020.09.24 21:16
조회 201 |추천 0
혈육적으로는 아빠나 언니들 오빠들 있지만
아무도 내 가족이 아니였더
나는 그저 아들 욕심을 가지던 60대 남성이
젊은 여자와 바람 피다가 태어난 여자얘일뿐

아들을 바랬고 아들이 태어나면 마누라는 버리고
너를 평생 책임 지겠다고 많안것들을 엄마 한테
약속했지만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났을뿐

이미 아들 한명에 딸 네명 있음에도
그 사람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엄에게서 다시 아들을 받아내려고 했지만
아들을 가지긴 했지만 엄마의 몸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서는 아이를 포기 하라고 했지만
그 남자는 무조건 태어 나게 해야된다고 우겼다고
한다 아빠라고 부르기엔 아빠라는 단어가 아깝다

어차피 그 남자는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
만나주지도 않는다

우리엄마는 출산 잘할려고 했지만
결국 엄마는 돌아가셨다 아기를 낳다가
아기도 죽었다 아기는 아들이었다
그남자는 아들이면 제대오 보관 했다가 줘야지
너땜에 아들이 죽었다고 엄마의 시신에 대고 퍼부엇다
난 그때 여섯살 이었다

그남자의 나이는 67세
67세에도 아이를 만들수 있는 능력이 대단하다
욕심도 대단하고 그남자의 욕심에 나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는 그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날 가족 취급 해주지 않았다
눈치밥을 먹으면 살았다


아빠라는 작자 호적에 넣지는 않았다
내가 들어오면 자기것들을 빼앗는다고 하며
날 가족으로 인정 해주지도 않았다

물론 그남자의 외도가 문제였고
그남자의 욕심에 우리엄마에게도
그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준거


그리고 우리엄미 내연녀 였고
그 집안 사람들에게 엄마고 상처를 준것이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그런것들을 이해하기엔
어려웠다 본처 아주머니는 너무 무섭게 대했다


잘못 하지 않았지만 회초리를 항상 맞았다
너무 아팠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있었는데
뺨을 맞았다 너무 아팠다 집을 나가고 싶었다
무작정 집을 나왓다 하지마 내가 갈곳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비참했다

아빠라는 작자가 그동안 무심해서 미안했다며
오늘은 아빠랑 놀자고 하며 나를 데러갔다
짜장면을 사주셨다 짜장면을 내생에 처음을 먹었다
맛있냐며 군만두도 먹으라고 하셨다
아빠란건 이런건가 엄마가 없더라고 아빠를
의지하면서 이렇게 짜장면도 먹고 아빠와놀고
이야기가 나누고 싶었다 이집에서 버티목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다먹었으면 일어 나자고 하셨다
내손을 잡아줬는데 손이 뜨끈했다 너무 좋았다
짜장면을 먹고 아빠와 간곳은 그곳은 너무 입에
담기에도 무서운 곳이었다

매일 같이 폭행을 당하고 무서웠다
그곳은 보육원 고아원이라고 불리는곳이다
원장님에게 훈계라는 핑계로 항상 폭행을 당했다
맞지 않는 날이 더 무서웠다
자고 있을땐 칼로 찌르는거 아니냐고
숙희 라는 친구가 말을 꺼냈다 그 이후로 차라리
맞지 않는날이 무서웠다 맞는날이 더 많앗지만
어쩌다가 맞지 않는 날들 한두번씩 오곤 한다



그곳에 갔을땐 나의 나이 7살 너무나도 무섭고
무서웠다

고아원에 손님이 올땐 원장님은 천사가 됐다
손님들에 평생 여기에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그럼 맞지 않을텐데
손님들이 인사하고 나가는 순간 원장님은 변한다

누가 제일 말을 듣지 않았지라며
혼내셨는데 너무 아팠다





차라리 그남자의 집에서 사는게 낫겠다 싶어 무작정 고아원에서
나와서 그남자 집을 무작정 찾았다 내가 알고 있는거 그남자의
이름 그리고 주소를 알고 있었다 그남자 집에 주소를 적혀있었는데 심심할때마다 그 주소를 종이에 똑같이 쓰곤 했다
짜장면 먹으러 나가는 순간에도 그종이릉 꼭쥐고 갔다

우리집 찾아주라고 지나가는 경찰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집에 찾아 갔다 그남자와 그남자부인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니가 여기 왜왓냐고 무섭게 말을 했다
거기 너무 무섭다니깐

그남자는 그곳이 니 집이야 라고 냉정하고 차갑게 말했다
난 다시 이끌리어 지옥에 갔다

원장님을 나를 혼낼려고 벼르고 있었다
무서웠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무서워서 도망 가고 싶었지만
내가 갈수 있는곳은 없다는걸 느꼈다


차라리 여기서 안혼나도록 노력 해야 된다는걸
아님 죽어서 나가야 된다는걸
나는 어떻게든 튀지 않고 잘 해낼려고 했다
나는 혼나 수가 줄었지만
그것때문에 아이들의 시샘을 샀다
원장님의 폭행이 줄었지만 아이들의 폭행이
시작됐다 나는 나를 미워 하지 말아주라고
우리모두 튀지 않고 혼자지 않도록 노력 한다면
모두 행복해질수 있다고 하니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원장님의 진주 반지가 사라졌다 원장님은
고아원 여기 저기를 수시고 다녔고 진주 반지는 당황 스러운
곳에서 나왔다

아이들 마다 사물함이 있는데 진주반지가 내 사물함에서 나왔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는 아니라고 난 훔치지 않았다고
누군가가 넣어둔거라고 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한번도 느끼지 못했더 고통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동안 내가 당한 고통은 예행연습이었구나 생각이들었다




난 그 이후로 항상 우울했다 너무 슬퍼다
하늘도 무심하진 않았다



나를 맘에 들어 하는 자원봉사자님들이 계셨다
아직 초등학교 가기전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입양이 되었다


너무 천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집에 가서 처음 드라마라는거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 내용은 입양된 남자가 동생 장난감 주우러 간 사이에
욕조에 동생이 빠져서 죽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파양
당했다 내용이 너무 무서웠다


난 그 드라마 너무 싫었다


드라마를 내생애 최초 봣는데 딱 그내용이 나왔다


나는 미움 받지 않기위해 노력이란걸 해야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 하는게 아니라 미움 받지 않는 노력
어제는 엄마 아빠가 너는 보면 뭔가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너를 더 보여줘도 된다고 마음을 열라고 하셨지만
버림 받을까 두려웠다 내 자신을 보여줬다가 싫어 하면 어쩌지
하면서 나는 그때부터 연기를 했다

미움 받지 않도록

2008년 초등학교 입학 했다
나라는 사람은 유치원도 다니적이 없고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한체 학교를 간거라 서툴렸다

받아쓰기 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은 말은 굉장히 어른 스럽게 하는데
받아쓰기는 애기네 애기 이러셨다

0점 맞안 받아쓰기레 엄마나 아빠 도장 받아오라는건
나 파양시키라는 뜻인가 생각 했다 차마 받지 못했다
선생님에겐 깜빡 했다고 돌려됐다

집에 가니 엄마가 엄마한테 할말 없냐고 하셨다
선생님이 말했구나 싶어서 도장 받아야 하는데
점수가 너무 부끄러워요 라고 하니 엄마는 괜찮다고 하셨다
어머 빵점이구나 라고 놀라시긴 하셨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라고
하셨다

받아쓰기 컨닝일 했는데 들켰다
선생님이 받아쓰기도 못해서 컨닝 하냐고 꾸지럄
하셨고 나는 그때부터 왕따를 당했다
처음 시작은 받아쓰기 컨닝 한거
빵점 맞는걸로 시작했지만 점차 변질 됐다


애들은 어느새 내가 커닝으로 왕따 되고
빵점으로 왕따된걸 잊었고 난 그저 왕따 그자체였다
미움 받기 싫어지만 아는 이유 없는 미움들을 많이 받게 되었다
어느곳도 내가 버틸곳은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재들을 무시하는거다 난 왕따가 아니다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 걸듯 생각 하곤 했다
어떻게든 나 버텨야했고 난 공부란걸 열심히 했다
기초가 없는 나인데 역시 공부 하나 마나 똑같았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나아지겠지 하며
이를 악물고 악빠리오 버텼다

꼴뜽에서 점점 올랐다 나는 중간정도 됐다
그러자 애들 입에서 오래만에 컨닝 이야기가 나왔다
쟤 컨닝 쟁이잖아 초1때 받아쓰기 하나도 못해서 컨닝 한거 모르니
계속 컨닝 하거야 라며 다시 컨닝을 끼워 맞춰 나를 왕따를 시켰다
내 노력이 무시당하는 아픔을 당했다

하지만 포기하면 분명 나올 반응은
공부 포기 하는순간 점수는 낮아질테고
컨닝 한거 들켜서 컨닝 안하잖아 라고 하겠지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하면 계속 컨닝 한다고
왕따시키겠지


둘 갈래에서 나는 고민 했다 공부 포기냐
의심 받더라도 공부를 포기 안하냐

나는 신중히 생각을 해보았다
애들한테 욕먹더라도
엄마 아빠는 좋아 하겠지 하고서
나는 계속 공부을 열심히 하곤 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때도 열심히해야 엄마 아빠에게 사람으로써
인정 받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는했다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사람으로써 인정 해주길
바라는 생각 보통 중학생이 하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 돌아보니 어릴적 나는 왜 그랬을까 싶을때도 있다



중학교는 전교 10등으로
주변 사람들은 잘하네 상위권 이라고 했지만 나는
상위권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나는 더 높이 가야만 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만 했다 난 높이 올라야만 했다

그렇지만 자꾸만 전교10등만 했다
중학교때나 지금이나 왜그러지
생각 했다


엄마가 어느날 내게 물었다
ㅇㅇ이는 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니

나는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하는거예요
라고 답했다

엄마는 왜 열심히 해야 하냐고 물었더

미움 받지 않기 위해라고 했다

누구한테서 미움 받은면 안되니?
엄마는 우리 ㅇㅇ이가 공부 잘하든 못하든 사랑해
ㅇㅇ이는 우리 딸이잖아 너는 내딸이야 라며 불안해
하지마라고 했다

내가 왜 공부은 열심히 했을까 부모님께 버림 받지 않기 위해
공부가 아니라 엄마 아빠한테 애교를 부리거나
엄마 아빠 어깨를 주물어 주며 안마 해주고 다리도 안마해주고
그러면서 이쁨 받는 삶을 살았어도 됐을탠데 라고 내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좀더 엄마 아빠에게 다가 갔다 안마 해주고 지압해주고
애교 부리고 엄마 아빠가 전보다 밝아져서 좋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혼자 고아원에서 슬퍼하고 외롭게 혼자 있고해서
내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데러오거라고 설명 해주셨다


공부에만 집중 하지 않고 엄마 아빠와 친밀하게 지내고 나의 삶은
지금 까지 찾아볼수 없었던 평안이 찾아왓다

전교 10등에서 전교3등 까지 점수가 올랐다
난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보다
가족이과의 삶을 더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됐는데
점수가 오히려 올랐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건가싶다



올해 스무살 난 그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부 할수 있는 사람이 돼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만나서 좋다


좋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과정들은 거칠고 무서웠지만
추천수0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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