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떨고 있다면,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그대가 종교인이 된다면,그때 그 종교는 가짜이다.
원숭이들이 갖고 장난치는 종교, 흉내만 내는 종교,모조품 밖에 안 되는 종교이다.두려움으로부터는 모조품 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붓다가 말하는 이 '믿음'이란 무슨 뜻인가?그가 말한 믿음이란 '샤드하 Shaddha'다.샤드하의 싼스크리트말은 쉬라드하 Shraddha이다.실제로는 그것은 믿음이란 뜻이 아니다.그것은 확신을, 자긴 안에서의 신념을 뜻한다.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교이다.붓다는 그것만이 참된 종교이고,다른 모든 것은 빗나간 종교라고 말했다
만일 그대가 두려움에 떨면서 실재를 향해 다가간다면 그것은 엉뚱한 길이다.그리고 그대가 엉뚱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그대가 보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이다.
그대의 눈이 잘못되어 있으며,가슴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진실은 두려움으로부터는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에서만 진실을 알 수 있다.
샤드하가 필요하다.자기 안에서의 확신이 필요하다.자기 안에서의 믿음이 필요하다.
인간은 두려움이 아니라신뢰를 갖고 실재에 다가가야 한다.
믿음이나 신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지키고 있으며,자신을 보호하고 있고, 언제나 싸움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그는 늘 절대적이다.그가 하는 기도, 그가 행하는 명상조차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어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신뢰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줄 안다.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를 전적으로 내맡길 줄 알며,신뢰하는 사람은 강물을 거스르지 않고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법을 안다.그는 그 흐름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냥 흘러간다.그는 그 흐름에 실려 흘러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갖고 있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며, 내가 관찰한 것이기도 하다.두려워하는 사람은 내게로 와도 나에게 전적으로 내맡길 줄을 모른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나에게 귀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아무도 자기가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특히 약한 사람은 더 그렇다.그들은 자신들이 약하며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그들은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길 수 없고, 귀의할 수 없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기가 쉽다.오직 강한 사람만이 통째로 복종할 수 있다.그는 자신을 신뢰하며,자신을 확신하고,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곳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 속으로 여행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그곳으로 들어가는 데 흥분을 느끼고 얼른 그것을 맛보고 싶어한다.어떤 댓가를 치루든지,얼마나 큰 위험이 앞에 도사리고 있든지 그는 위험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오쇼라즈니쉬 강의>
(근원의빛 상승의 형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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