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어린 시절마냥 날 보듯이
나도 젊은 시절의 엄마로만 보고 살았나보다.
이렇게 힘없이 약해지리라 생각못했다.
4남매에 능력없는 부모에 객식구(외할아버지 친구아들)
까지 고작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에
미싱공장에서 밤낮없이 돈벌며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리키고...
어린나이에 홀로 짊어지었을 그 무게...
외할머니가 재산만 보고 중매하는 바람에 만난
시골동네 망나니 내숭에 속아 결혼.
결혼초부터 도박,재산탕진,생활비 양육비x, 시골집농사도왔지만 임금도 한번못받고,외도(빚지고 늙은년과 야도주10년), 폭력, 질병ㆍ시어머니 간병등 으로 당한세월.
난 아주 어릴때 그인간이 나가도 엄마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릴 키우셔서 그렇게 힘든일인줄 몰랐다
여자혼자 자식둘을 키운다는것...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안힘든건 줄 알았다.
사회생활을 한뒤에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도망치듯 이혼후 고향인 도시에왔지만 사는게
힘들었다. 집구하는것 부터도 모든게
차갑고 거친 도시의삶.
그틈에 아들은 장애가 있는 여자랑결혼해버렸고
나랑같이 산다.
난 나름 일찍 취업한 덕에 효도를 한다고 했는데
아직많이 부족한가보다.
난 아직도 엄마가 젊은 엄마인것 처럼
아프셔도 잠깐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번에도 별거아니겠지..
저녁을 먹고 청소하는데
기침을 하시더니 피가 나온단다.
감기기운탓아닌가 했지만
계속해서 나왔다
119에 불러 차에 탓지만
쉽게 가질 않았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흡기질환이 있으면
지정병원 받아주는 병원으로가야한다.
일단 동네병원으로갔지만
코로나 검사도해야하고 만약 확진이되면 격리실에 가야하는데 현재 자기병원은 없단다.
폐에도 이상있는듯하니 대학병원가란말 밖엔 못들었다.
119에 또 타서 새로생긴 큰병원으로 갔지만
검사는 많이하더니 또 코로나검사 오래나와
그때까지 기다리느니 좀더 빨리나오고 병상도 확보된
병원으로가란다. 폐도 왜 그러는지 지도 잘은 모르겠으니 멈추는 약투여햇단다.
그리고 그병원에서 알아봐준 먼곳에있는 더 큰병원으로 옮겨지게 되고 거기서도 코로나검사가 걸렸다.
그 전병원에서 시간 착오로 더 딜레이 되서 하루를
넘겨버렸다..
보호자도 받아야한대서 나도 받아 같이 음성판정
씨티찍은거 보더니 그래도 심장이나 폐에 심한건 없단다. 단지 의심 질환이니 검사를 해보는게 낫다고 해서
또 검사 이것저거하고 결과기다리는 중
그래도 이 병원은 엄마의 어렸을적 앓았던 질환에 대해 알고 있어서 물어보고 이제가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큰 걱정 안해도 되니 안심하라고 하신다
앞서 두 병원은 코로나 병상과 이런폐는 처음본다며 모르겠다는 말뿐이였는데
여기 마지막 병원 의사선생님은 과거 그 시대때 유행했던 질환을 알고계서 약간 그때생긴 약간의 변형으로
인한 거라하셨다.
그리고 나이로인해 면역력도 약해지셔서 그런것 같다며 1인격리는 24시간도 안돼서 일반병동으로 옮겼다.
그런데 또 병동이동이 기다렸다
응급에서 간호통합ㅡ격리1인실ㅡ 지금 일반이다.
힘들다...
잠도 못자겠고 그냥 와서 아무것도 없다
힘없이 링겔과 호흡기를 꽂고 계신모습보니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거울속 내모습이 이렇게 늙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젊은시절 엄마로 생각하고 살았다는게...
한심한 자식...
나는 큰 착각쟁이였다.
세월이 이러 흘러가고 있는데...
친 오빠가 당장 곁으로 내려오란다.
멀어서 자신이 해줄수없는게 없어서.
병원에서 나가면 집도 내놔야하고 알아보고
정신없을 듯 하다.
왜 나는 엄마는 늘 젊은 엄마로만 영원 할줄 알았을까.
바보 멍청이다.
내일부터 식사가 가능하단다
코로 노래부르시며 잘 주무셔서 다행이다.
이제부터 엄마의 건강만을 바라보며
모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친오빠를 보는건 별로 안좋아하지만
엄마를 위해 굽히겠다. 철저히
제발 우리엄마 건강하게 해주세요!!!
빌고 또빌고 또 빌것이다.
암튼 일반병동으로 옮긴 아주 기쁜날이다!
엄마(부모는)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그 말이 맞다. 뼈때리고 부셔져 가루가 되도록.
내일은 또 어떤일이 있을지 불안하지만
긍정적으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