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귀찮은 일상 속으로 알아서 뛰어들어가게 해준 원동력은 너를 향한 그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하였나?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너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한 건 아니었던 듯하다.
너에게 미안해야 할 말이지만, 너의 성격을 잘 알기에 정말 단 한 순간도 너의 전부를 완전히 원해본 적은 없다.
너가 가진 분위기, 너를 바라보는 내 감정, 너에 대한 내 소유욕.
너를 둘러싼 장면 장면들을 심각하게 사랑하였다.
둘 사이 오고가던 감정의 단서들은 이제 영영 둘만 아는 것이 되었다.
결국 이어지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남들에게 숨겼기에, 이제 더는 만날 일이 없기에, 너로서는 나와의 인연을 저버리기 무척 쉬웠을 것이다.
너와 나 모두 감정의 실타리를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대도, 너가 "몰랐다."고 한 마디 내뱉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인연이었다.
뻔히 다 알면서도 기다림을 이기지 못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린 너가 너무 밉다.
너를 미워하면서도 너의 장면들을 여전히 사랑하는 나 자신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너의 걸음걸이, 너의 그 웃음, 누가 봐도 멋진 옷태, 나를 찾던 눈빛, 자신감에 찬 그 표정 하나하나, 과장스러운 몸짓까지.
좋아하는 마음은 흐려졌어도 내가 사랑하던 그 장면들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너의 성격이 참 못났기에 미워하기가 쉽다는 것은 나에겐 어쩌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삶을 다시 찾아가며 너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든 묽혀 보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보다 쉽사리 마음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사실은, 너를 단념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이었다.
너를 포기한다는 말은 아직도 속으로 너를 원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너의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말은 너에게 기대하는 바가 남아있다는 말과 같았다.
묽어진다는 말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진 채로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 취미이자, 낙이자, 가장 간절한 소원이었던 너는 이제 가장 먼저 물리쳐야 할 악역이 되어버렸다.
어떤 형태로든 너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태연할 수 있을지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애써 외면하는 척 집에 돌아와 너에 대한 새로운 장면을 다시금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내 표정과 말투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온전히 고요할 수 있기를 또 한 번 빌어본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단번에 너를 발견하고는 설레오던 내 마음이,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두 배로 뛰던 가슴이,
이제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잠잠할 수 있기를
너 하나만을 바라봐오던 그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