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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발언 사이

꺅도요 |2004.02.23 14:30
조회 895 |추천 0

침팬치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가 3%라 한다.

97% 가 같고 겨우 3%가 차이가 나는데 이 적은 차이가

인간과 침팬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란다.

이 세계에서의 인간과 침팬치의 지위의 격차를 생각해 보면

이때의 3%는 나머지 97% 보다 훨씬 무게 있고 의미있는 차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여기 유리컵이 하나 있다.

이 유리컵에

1의 힘을 가해보면 그떡없다.

다시 처음 1의 힘에다 다시 1의 힘을 가해봐도 끄덕없다.

다시 1+ 1 = 2의 힘에다 1의 힘을 가해보다, 그래도 끄덖없다.

이런식으로 계속 1의 힘을 가해보자.

마지막 9의 힘을 가하면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깨지진 않는다. 아직 유리컵이란 얘기다.  

그러나 마지막 1의 힘을 더했을때

그때 만약 유리컵이 깨지면 ? 와장창 깨지거나 금이 가서 더 이상 컵으로 쓸 수 없다면?

그때 마지막으로 가해진 힘1의 의미는 이전까지의 힘1들과는 영 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해진 힘1은

유리컵을 깨트리면서 유리컵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파괴한다.

유리컵은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되고 존재 가치가 상실되고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참, 무서운 힘1이다.

 

사람이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란 말이 있다.

무늬만 사람이지 사람의 품위와 품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지적일 게다.

나는 이 무늬만 사람과 속도 사림인 그 두 사람의 경계를

적절한 침묵 과 발언으로 삼고 싶다.

사람이 사람이고 싶으면

이 둘의 구분을 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엄청 밉다. 죽이고 싶도록 밉다. 할 수만 있으면 죽이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죽이고 싶다는 말 혹은 마음과 실제로 죽이는 행동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삼천만이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묵과 발언 사이에도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침묵과 발언이 종이 한장 차이라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3%의 차이가 종의 차이를 가르 듯,

힘1의 차이가 유리컵의 존재 자체를 파괴시키듯

그 종이 한장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작은 차이가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작은 차이가 품위있는 인간과 천박한 인간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할말과 하지 않을 말을 구별 못해 늘 화를 부르고

현명한 사람은 둘의 구분을 비교적 잘함으로써 복을 불러 들인다.

현명한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꿀꺽 삼킴으로써 품위를 지키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대로 내뱉음으로써

자신을 천박한 구렁텅이로 추락시킨다.  

 

제발 ....우리 모두 잘 구분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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