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처자 이름 유리잔이라 하여 곱상한 외모에 매끈하니 일등 상품이었는지라, 이 집에 오기 전에 도자기는 물론 스댕, 플라스틱, 유리 식기는 물론 다른 모든 사내의 선망 대상이었도다. 허나 지금은 찬장 가장 깊은 곳에서 목구멍 텁텁하게 먼지만 먹고 사는 제 신세 한탄하며 왈,
"아아, 너무하도다. 너무하도다. 주인님 내 곱상하고 가련한 외모에 반하여 단번에 옳다. 너로구나 하시어 데려오셨건만, 어찌 나를 찾지 않는단 말인가. 이 눈물 바다를 이뤄 세상을 덮겠구나."
이 집안 경력 어언 삼 년이 다 되어 가는 유리잔 처자를 두고 3층 도자기 그릇 할멈 왈,
"이 우매한 유리잔아. 주인님께서 선택하셨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지 어찌 그분의 고운 심정을 몰라뵙느냐. 너는 쓰인 적이 몇 번 없어서 모르겠지만, 주인님께선 여름엔 우리 식기들이 더울쏘냐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퍼부어주시고 겨울에는 추울쏘냐 더운물을 퍼부어주시는데 에구 이 못된 년." 하고선 낮잠을 쿨쿨 자더라.
1층 칫솔 총각, 유리잔 처자가 불쌍하여, "할멈의 말은 가시가 돋쳐 있으니 가까이 다가가지 마시오. 우리 중 그 누구도 할멈의 가시 박힌 말을 그대로 박아두고 사는 이는 없잖소? 그러니 그대로 저기 저 흘러가는 개수대 물처럼 흘리길 바라오."
소주잔 아범 놀리듯이 속삭이며 왈, "칫솔 총각은 유리잔 처자가 마음에 드는감? 유리잔 처자가 있는 4층에 그 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부탁이라도 좀 넣어보리?" 라며 혼자 키득키득 웃는 꼴이 영 보기 좋지 않더라.
그때, 주인 찬장을 열고 칫솔 총각을 꺼내며 개수대에서 물을 잔뜩 묻히고 칫솔모를 박박 털어내고 이내 치약을 짜서 제 입에 가져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을 본 유리잔 처자, 제 신세와 비교하며,
"에구머니나. 내 신세도 가련하기 짝이 없지만, 칫솔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일지어다. 저 치약이란 놈은 본성이 사나운 놈이라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매캐한 맛을 풍기질 않나, 또한 나는 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주인의 이를 닦아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차라리 먼지 쌓인 유리잔으로 살아가는 편이 낫겠구나."
며칠 뒤, 주인이란 놈이 시장에 가서 요상하게 생긴 유리잔을 하나 더 사와서 찬장에 넣으니 그 이름 포도주잔이라, 서양에서 온 어여쁜 처자로다. 남정네들은 포도주잔의 굴곡과 미모에 반해 서로 말을 걸려 아웅다웅했고 유리잔 처자는 질투심에 휩싸여 하는 말이,
"본디 서양 놈들이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족속일 터, 게다가 뚱뚱한 상체에 비해 허리는 꼭 겨울날 맺히는 고드름처럼 가느다란 게 참 보기 좋구나. 너 같은 년이 이 찬장에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에 내 남은 수명을 걸마." 라고 하니 찬장 속 남정네들 떼거지로 유리잔 처자에게
"유리잔 처자는 사용되는 횟수가 극히 적어서 그런 것이라우. 신경 쓰지 마소."
"유리잔 씨, 당신의 외모가 가련하니 어여쁘면 뭐한답니까? 몇 년째 이 찬장 속에서 텁텁하니 먼지만 먹고 살고 있지 않소이까?"
"아아, 그대가 있었던 시장에서 그대의 이런 모습이 밝혀졌다면 어땠으리오. 아마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둬 주지 않았겠지."
그날 밤 유리잔 처자 씩씩대며 낮의 분함을 꾹꾹 눌러대며 오지 않는 잠을 쫓으려 애쓰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포도주잔 처자 보란 듯이 주인의 손에 들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약이 올라 세상에 옥황상제 님, 부처님 이 년이 무엇을 잘못했사옵니까. 그저 유리잔으로서의 소임을 철저히 하고 싶었던 것이 죄라면 이 찬장에 있는 모두를 먼지 구렁텅이에 처박아넣에 영원히 나갈 수 없게 하소이서, 하며 비는 것이 아니겠는가.
달은 지고 해가 떴지만 포도주잔이 돌아오지 않아 유리잔 처자를 제외한 모두가 쑥덕거리고 있던 와중에 막걸리 양반 늦게 기상하며 왈, "내가 어젯밤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 야심한 시간까지 자지 않았는데 안쪽 방에서 웬 짐승 소리와 교성이 섞여 들리더니 아마도 두 마리일 것이로다. 하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짖어댔고 다른 하나는 교성을 지르며 서로 공격한 것이로다.이내 쨍그랑! 하며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내 아침에 말하려 했건만 이리 늦게 일어나버렸구려. 필히, 그 매끈한 처자는 밤중에 나타난 사나운 짐승에게 당하여 유명을 달리한 것이 틀림없도다. 우리 모두 그 서양 처자의 명복이나 빌어줍세. 나무아미타불..."
그 사나운 짐승인가 괴물인가 하는 것 덕분에 쟁쟁한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유리잔 처자 입꼬리가 귀에 걸려 대롱대롱하였다. 그렇지만 짧은 생에 유명을 달리한 그 처자가 조금 불쌍하였으니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며 불경을 외우며 네년이 이리 일찍 가버린 탓은 그 잘록함을 넘어선 이쑤시개 같은 요망한 허리 탓이로다 꾸짖었다.
맞아 그냥 ㅅㅔㄱ스하다 와인잔 꺠진 상황이야 ㅋㅋ ㅃ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