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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마지막이 되버린 나

허리는나의힘 |2021.01.30 01:47
조회 206 |추천 0
안녕 형 누나 동생들 , 29살 이제 20대 마지막이 된 나를 지금까지를 돌아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글 써보고 싶었어 반말, 띄어쓰기, 받침 이해해줘 술을 조금 먹은상태로 적게 된거라넷상이래도 제 정신으론 못 적겠더라구 -) 길어서 지루할수도 있고,다른 분들보다 이야긱를 재밋게 잘 하지도 못할거야 그래도 -그냥 내가 살아 온 29년 이야기야
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고, 아버지는 전기로 일용직, 아파트 관리원으로어머니는 글쎄? 
내가 나를 알기 시작한? 내가 기억해낼 최고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안 계셨어 ( 이혼 )할머니 손에 자랐구 친 누나 한명 있었어. 아버지란 사람은 뭐 3~4일에 한번 집에 왔었나?뭐 그마저도 잠만 자러 오는거였구, 근데 그 잠만 자는 아버지가 어린 나는 많이 보고 싶었는지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엄청 나는데도 아버지가 귀찮아 하더라도 억지로 안고. 자려고 했던기억만 남아있네. ( 참 이거 하나 기억에 남아 있네 ㅠ ) 
초등학교에 입학
입학식엔 작은 고모만 오셨어, 아버지의 친 동생 관계셨구 할머니 장사도 도와주셨던나랑은 어색하지만 나와 누나한테는 고마운분이야작은 고모가 입학식에 오고 입학식이 끝나고 구슬동자라는 배에 구슬 나가는 장난감 하나입학 선물로 받게 됬어. 그 하나가 정말 감사하더라 구슬동자라는 장난감을 사주신것도 감사하지만 난 입학식 전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들 다 오시는데 혼자일까봐나이 먹고 생각하면 왜 그랬지 라는 생각도 들지만 겨우 8살때의 감정이잖아 그치?그러고 초등학교 생활 잘 지냈지 여러모로 솔직하게지만 부모님 안계신거 주변에서 다 아시니까이거저거 사소한거라두 챙겨주시고 관심도 가져주시고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언저리쯤 어느 초등학교 코치가 우리 학교에 와서 나를 스카웃을 하게된거야. 나는 코치에게 용돈 2천원( 그때당시 2천원이면 철권(오락)  20판, 닭꼬치 3~4개는 먹을 수 있었어 나의 하루 용돈은 500원 4일치 용돈을 받은거지 )과 명함을 받고, 공부를 더 안하고 운동만 하면 된다는말 한마디에 너무 하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말을 했지 아버지는 정말 좋아하시며 잘 할 수 있겠냐힘들거다 와는 말과 거부 할 수 없는 미소를 띄우시며 나에게 물어봤지태어나서 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웃는 얼굴과 물음이 있었던게 처음이었던거 같애나는 그거 하나가 뭔가 아버지에게 좋은 일을 한거와 같았고, 나도 물론 하고 싶었던것도 있었지만바로 예 라고 대답하며 진학 절차와 운동부에 일주일?이주일? 만에 끝내고 시작하게 됬지( 정말 시작하는게 아니었어..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는 운동만 하면 되고 잘 하면 성공 하는줄만 알았던 나름 순수했던 나공부도 안해도 되고 운동장에 뛰어다니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지..
운동부 들어간 첫 날, 바로 6학년형들 개 같이 맞고 뛰고 기합 받더라그 때 나는 상황판단이 안됬어 왜..그래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 직접 나의 학교에 같이 오셨고 내가 운동장에 있는 모습을지켜보기까지 하시니까 맞더라도 기합 받더라도 좋더라 그런 마음으로 중학교까지 버텼어 버텼거든? 근데 왜 어떻게, 거기서 더 심해질수 있나? 합숙까지 하게 되니( 주말 토요일 오후운동을 끝내고 외박을 가면 일요일 저녁운동전에 복귀야 1박2일.. )기합은 더 심해졌고 심지어 눈 만 마주쳐도 선배들한테 맞고 갈굼 당하더라거기에 따까리? 라 해서 빨래도 마사지도 해주고 뭐 별의별짓을 다 한거 같네그러다 2학년이 되서 도저히 안되겠다 해서 관두고 싶다 아버지께 말했지 되돌아오는 대답은 당연 안된다 니가 뭘 할껀데 그럼? 이라는 대답과 나에 실망하는 모습휴, 그래 울며 겨자먹기로 참았어 ( 다들 알거라 믿어 우리나라 운동부들의 )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에 입학 하는데, 누가 들어도 좋은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나에게 거기에 가고 싶었고, 그 학교는 구타 및 갈굼이 무조건 없다기에 ( 무조건은 아니었으려나 )여튼 조금이라도 없으면 됬으니 근데 중학교 감독이 우리 귀 얇고 얇은 실 귀를 가진 아버지를 꼬셔서고등학교 감독한테 $ 받고 나를 넘긴거야, 그냥 하위 고등학교... 갔지근데 딱 이제 가기전 아버지가 타지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데려다주시더라 ( 차로 2~3시간 )내릴때 ' 나 이 학교 보낸거 후회하지 말아 ' 라며 후폭풍을 예고 하며 그냥 들어갔지역시 정말 지네들이 못하면서 후배들 탓, 그냥 저녁만 되면 잘 못이 있으면 쌔게 잘 못이 없으면 약하게 무조건 그런 문확가 있더라. 그냥 이 꽉 깨물고 죽기야 하겠나 생각으로 지냈지근데 안되더라 밥 한끼 제대로 먹을 시간 없고 잠 하나 푹 잘 시간 없는데 그래서그냥 정말 평일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지 ( 운동선수들 전부는 아닌데, 내가 했던 스포츠는 합숙하는 월~토 에는 휴대폰 금지여서 외박 나갈때받구 들어올때 걷는 식이었어. 그래서 공중전화로 몰래몰래 했지 )나 집 간다. 라고 말하고 다들 일과 준비중인데, 짐 싸서 몰래 집으로 그냥 가버렸어가고 나니 역시 되돌아오는건 제 정신일땐 나에게 화 제대로 못내니 밤 늦게 술에 왕창 취해서 들어온아버지, 엄청 뭐라더라 그 때 아버지한테 첫 뺨을 맞았나? 그랬거든 뭐 나도 대들어서 그런거구근데 뭐 아버지가 뺨 때려봣자 운동한 사람들 보다 아프겠니그런데 참 그 나이에 마음이? 아프다는 느낌을 받더라. 그냥 나 아들인 나를 좋아해주는게 아닌운동선수인 나, 그냥 운동해야되는 나 를 좋아해주었던거구나 라며그때 이 후 버티고 그만 뒀지, 그러고 고등학교를 5번 전학 다녔어, 나름 나 조금 잘 했었나봐그렇게 사고를 치고 잘 관둬도 받아주겠다던 학교가 있었으니근데 결국 마지막 고등학교에서 2학년 후반부였을거야 자퇴를 했지뭐,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부턴 삐딱선 계속 탔었고 사고도 치고 다녔고 집도 많이 나가고 나도 잘 했다곤 못해자퇴 하고 나서 집에 있으면 무조건 밤 10~11시에 만취 해서 오던 아버지무조건 나를 불러, 매일 똑같은 질문들 거세지는 나의 반항 -그렇게 하다 고등학교3학년 중반부가 지나고 지인분이 아깝다며 3부릭그 테스트를 보는게어떻겠냐라는 권유, 운동선수시절에 나를 많이 도와줬던분이고 나도 그때쯤 막막하더라구그래서 응하고 테스트를 보고 통과를 했지, 솔직히 인맥빨로 들어간거 같애들어가서 반년? 열심히 했지, 근데 이미 일이년 쉬어버렸고, 내 멘탈적인 부분도 운동선수에적응이 안되더라 그렇다 해서 뭔가 팀이 대단한 팀도 아녔구 
그렇게 21살까지 하고 결국 나는 지쳐버렸지 안될거 붙잡고 싶지도 않고 열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또 그만둬버렸지 그러고 21살 후반에 입대를 했어. 군에 있으며 생각 많이 했지어릴때부터 겉 꾸미는것도 좋아했고 전역하고 서울로 그냥 꿈 하나 가지고 가야겠다 생각이 든거야그래서 말차때 **비어 집 면접 보고 전역하자마자 일 시작해서 한달 일한 급여 주6일 11시간? 했거든그거와 군에서 종짓돈 모은돈과 함께 올라가야겠다 해서 바로 올라갔지물론, 아버지 반대가 심했어 그냥 기술이나 배워서 살아라 니가 뭐하겠냐 뭘 할순 있냐 말도 많이들었고, 그래도 지금까지 하기 싫은거 꾹꾹 해 왔고 이제 하고 싶은거 하고 싶더라그래서 그냥 케이티액스 예약학고 하루전에 아버지한테 문자로 통보 하고 올라왔어
23살후반 서울 첫 상경 놀러도 못 와보고 운동선수라는거때매 소풍 수학여행은 꿈도 못 꿨지열심히 검색검색 한 일주일? 동안은 찜질방 + 피시방에서 지냇던거 같애그러다 100 / 36 이라는 관악구에 방을 잡았고 서울살이 시작 했지. 근데 마음과 다르게일이 안구해지더라, 일이래봤자 **비어 남짓 한달과 이상한 경력들1~2달간 일을 못구하고 별의별 단기 알바 했던거 같네. 그때 월세와 생활비 때매정말 뻥 안치고 한달정도를 하루에 라면 3분의1조각? 4분의1조각? 으로 하루 버텼어...아버지한테 돈 요구 해봐야 내려오라고 할거 뻔하고 큰소리치고 왔는데 ㅎ..
그러다 내가 원하는 일자리에 취직하게 되고 큰 돈을 모으거나 하며 살진 못했지만내 생활에 안전이란게 생겼고, 한끼에 무려 6천원짜리 밥을 먹어도 생활을 할 수 있다는거에행복해지더라 그 때 당시 내가 24살 근데 하루 근무 12시간, 주5일 실수령 150만원대였어.그렇게 일 하며 1년 넘게 일 하고 그만 두고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알게 되며서울 생활도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재밋게 보내고 있었어 -
근데 25살 또 사고가 터지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거야마음의 준비는 커녕 아무리 나는 고맙다 느껴본적 없는 아버지지만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가서 3일장 치르는데, 정말 물 커피 술 담배 딱 이거만 하며 3일 내내 잠도 한 숨도 못 잤어그렇게 때버리고 싶은 아버지인데도 슬프고 힘들더라, 용돈 만원이라도 못 준 아들래미가된거 같아서 그러고 3일장 동안 울만큼 울고 힘들만큼 힘들어서 그런가끝나니 생각보단? 생각보다야.. 괜찮더라? 다시 일상에 복귀하게 됬고 아무렇지 않은척다시 일상에 스며 들었지 1년정도는 안 믿기더라 그냥, 전화 하면 받을거 같고, 그냥 또 일 끝나고 술이나 마시러 다니고 있을거 같고 그것도, 참 
근데 또 일년을 못 넘기고 할머니가 돌아가신거지 나에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고애기때 장사 하느라 힘드셨을텐데 끝나시고 나와 누나 둘 다 욕조에 담가두고 한명한명때도 밀어주시고 나 운동선수전에 스트로폼 시장 김밥 어떻게서든 손에 쥐어보내주시고그런데 할머니는 몇년간 아프셨고 치매도 와 계셨던터라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이미, 그러니 막상 들이닥치니까 슬픈건 당연하고 울기보단 좋은곳으로 다음생엔자식덕 손자,녀덕 우리 같은 아들 손녀,자 만나지말고 좋은 자식 손자,녀 만나셔서 행복하셨으면좋겠다고 생각들면서 가족들 모두 잘 치뤘어 잘 보내드리구 끝이 났지
이러고 태풍 같던 25~6살이 끝이나고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한테 마지막으로나는 하고 싶은거 하며 큰 돈 벌면 좋겠지만, 적은 돈 벌어도 하고 싶은거 하겠다 라는말 한거와 같이 지금도 그렇게 하며 지내. 나이를 조금씩 먹다보니 이제 노는건 재미도 없고 미래가 걱정도 되더라구그러다보니 27살 후반부터 지금까지 투잡~쓰리잡 하며 지내고 있어남들은 몸상한다, 대단하다 말을 하며 걱정과 칭찬을 해주지만 겉으론 하하 하며 말지만속으로는 너네도 잔고에 0원이 찍히면 돌아갈곳이 없다면 그럴 수 있을까 라는 말을 하고 싶어비록 티끌 열심히 모으고 그렇다 해서 열심히 모으는것도 아냐 사고싶은거 먹고 싶은거할 거 하면서 보내고 있어 나는, 
지금이 행복해야 되는건데, 왜 한켠에 가끔씩 몰려오는 허무함과 무력감이 없어지지않을까나는 잘 하고 싶지 않아 이젠, 그냥 되는대로 살고 싶어 -29살이 된 지금 2021년, 모르겠네 지금도 본업을 끝내고 부업을 하고 집에서간단히 술 한잔 먹고 적게 됬네. 할머니 아버지 가끔은 너무 보고 싶네요.
길기만 길고 재미 하나도 없을건데. 여기까지 봐주신 형 누나 동생들 있으려나여튼 조언도 좋고 직석적인 말도 좋아 나만큼 힘든 사람 있냐를 찾으며 위안 삼으려는게 아니고 누구나 답답하잖아? 그 누구나 중에 용기 내어 이런 곳에라도 적어봐 
내일도 일 가야지~ 좋은 주말 보내고, 코로나 다들 조심해 ! 고마워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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