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후지이 중학교 이지메 자살 사건은 1986년 일본의 도쿄도 나카노 구에 있는 중학교에서 어느 남자 중학생이 이지메(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한 사건이다.
장례식 놀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담임교사까지 이지메에 가담하여 일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우리나라 뉴스기사로까지 전해졌다.
1986년 2월 1일 이와테 현 쇼핑센터 지하 1층 화장실에서 도쿄 나카노 구 후지이 중학교 2학년생 시카가와 히로시 군의 목을 맨 시신이 경비원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바닥에는 '이대로 있으면 생지옥이 되고 말 거야'라는 유서가 적혀 있어 이지메에 의한 자살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피해자 히로시는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 학급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착한 성격에 152cm의 작은 체구인 히로시 군은 시간이 흘러 친구들의 빵셔틀을 하거나 하굣길엔 가방셔틀을 하며 이지메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지메는 점점 심해져 다른 반에서도 히로시군을 이지메 했으며 옷벗는것을 강요하는 등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11월이 되자 같은 반 아이들은 히로시가 죽었다고 가정하자며 히로시 군의 책상을 놓고 교실에서 향을 피우며 히로시 군의 사진을 영정사진처럼 만들어 빈 우유병에 꽃을 꽂아 장례식 놀이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칠판에 '바보', '사라져서 잘 됐네','잘 죽었어'라는 등 악의로 가득 찬 욕설이 가득 차있었고 히로시의 명찰에는 죽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매직을 칠해놓기도 했다.
게다가 교사 4명도 이 욕설 내용에 가담하기도 했다.
히로시는 아이들과 선생이 욕설을 적은 종이를 가지고 부모님에게 보여주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학교에선 자기보다 낮은 학급인 1학년생이 일부러 싸움을 걸어오거나 3학년이 또 폭행을 하기도 했다.
히로시의 아버지는 직접 학생들을 찾아가 다그치거나 교사를 만나 심하게 따졌지만 이지메하는 아이들은 고자질했다며 더 심하게 괴롭혔다.
히로시가 3학년이 되어서도 이지메는 계속되었고 교사들은 이지메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도 주의만 줄 뿐 엄격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히로시는 아침에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 되었다.
1986년 2월 1일 이와테 쇼핑센터 Fesan의 지하 화장실에선 히로시군이 발견되었는데 쇼핑센터 영업이 끝났음에도 화장실 문이 닫혀있자 경비원이 문을 열어보니 시체가 목매단 채 숨져있어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화장실 바닥의 유서가 적혀있었는데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 나 ..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고
나도 아직 죽고 싶진 않지만
이대로 있으면 생지옥이 된다고
그저 내가 죽은 이유만으로 다른 녀석이 희생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잖아
그러니깐 너희들도 바보 같은 짓 그만해
마지막 부탁이다.
1986년 2월 1일
시카가와 히로시
히로시 군의 가방엔 사복 여분과 접는 우산,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케부쿠로 선샤인 60 전망대 입장권이 있으며 죽기 전날 그곳에 들렀던 사실이 밝혀졌다.
아버지는 "히로시가 죽기 전 마지막 이틀 동안엔 삶과 죽음 사이에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철 안에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방황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교사들은 히로시가 이지메를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가벼운 장난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으며 자살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히로시 군의 문제로 돌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장례식 놀이에 자신이 썼던 글은 없었던 일로 하자며 학생들의 입 막을까 지 했다고 한다.
담임 교사 F는 무단으로 학원 아르바이트 일까지 한 것을 합해 교사 파직 등 당했으며 장례식 놀이에 가담한 교사와 교장은 감봉 처분이 내려졌고 스스로 퇴직했다.
히로시의 이지메를 가담한 16명은 상해와 폭행 혐의로 처분되었고 주범 A와 B 에겐 2200만 엔의 송해 배상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도쿄 고등 법원에선 장례식 놀이는 보통 사람이라면 큰 고통을 느낄 일인데 이를 멈추지 못할망정 가담한 학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판결 이후 이지메 문제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