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雪化)
헌데...
둘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담이와 호랑이가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둘은 황급히 담이에게로 다가갔다.
담이가 눈을 떴다.
이럴수가...
“녀석이 어깨를 때렸어요. 조금... 아파요.”
그리고는 생긋 웃는것이었다.
결이 담이를 안아 올리는 동안, 휘는 호랑이쪽으로 다가갔다.
호랑이는 완전 숨이 끊어진것은 아니었으나 살 가망은 없어 보였다.
정수리에는 휘가 준 단검이 깊이 박혀 있었다.
이 검이 빗나갔다면...
생각만해도 휘는 몸이 떨렸다.
“젠장... 어찌 이리 무모하냐.”
결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담이를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며 담이를 책망하는 말을 했다.
“뱀과 호랑이가... 천적이지요?”
담이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곧 정신을 잃었다.
“괜찮은거냐? 상처가 심하냐? 나을 수 있겠지? 많이 고통스러운거냐?”
“아아... 결이님... 그리 보채지 말고 제발 한번에 한가지씩 물어 보시지요. 제 입은 하나지 않습니까.”
“아, 알았다...”
“뼈가 상했습니다. 하지만 뼈는 시간이 지나면 새로 생기기도 하고 붙기도 합니다. 허나... 피를 많이 흘렸으니, 오늘밤이 고비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랑이를 잡는데 데려간것부터가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
어쩌자고 그렇게 위험한곳엘 데리고 갔단 말이냐...
나 때문에 어찌 되기라도 한다면...
“어깨뒤쪽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아아... 흉터는 상관없지 않으냐...”
죽지만 않는다면, 이라고 덧붙이려 했으나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록은 잠시 조용했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상처가 많이 아프니, 이 약차를 많이 마시게 하십시오. 고통을 잊게 해주고, 덧나지 않게 하는데도 효능이 있는 차입니다. 정신이 드는것이 중요합니다."
“알았다.”
무록은 돌아가는 길에 휘를 만나 결이 했던 질문에 똑같이 대답해 주어야 했다.
담이는 잠이 든건지 정신을 잃은건지 모르게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록이 담이의 어깨를 드러내 치료를 시작했을 때, 결은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언뜻 보기에도 담이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찢겨져 있는 듯 했다.
결은 주먹으로 자기를 죽도록 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담이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휘와 자신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담이 고통스러운지 거칠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이는 담이의 입에 약차를 조금 흘려 넣었다.
“이겨내라... 넌 강한 아이니... 이겨낼거다...”
결의 뇌리에 칠년 전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던 어린 담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너는... 해보다 밝은 웃음을 갖고 있었다...
“휘님... 아가씨는, 아가씨는 괜찮을까요?”
“...무록이 다녀갔으니 괜찮을거다.”
“제, 제가 옆에서 돌봐드리면 안될까요?”
아옥이는 백짓장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꼬박 반나절을 담이가 있는 방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결이 있으니 괜찮다... 조용해야 한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했다.”
“하지만... 아가씨가 어찌 되시기라도 하면...”
“무슨 소리냐! 아무 일 없을거라니까...!”
“예, 나으리... 아이구... 이놈의 입이... 아가씨는 무사하실거에요. 그러믄입쇼... 벌써 두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겼는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휘 역시도 쉽사리 방 앞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20. 조의대두형 모사달
“아버지!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양가 이야기는 끝났다.”
“혼례라니요! 대체 그게 무슨...”
“그럼, 영영 장가를 안 갈 셈이냐? 너도 이제 나이가 적지않고, 가문의 장자로서 후손을 봐야할 것 아니냐?”
“아버지, 아직 담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담이가 네 처라도 되느냐? 정혼도 안한 사이에 그 애 생사와 혼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정혼은 안했지만 제 배필은 담이 뿐입니다!”
“듣기도 싫다! 이런 못된 놈 같으니... 네 눈에는 그깟 계집하나만 들어오고, 아비 어미와 가문은 상관없다 이 말이냐?”
“그 말이 아닙니다...”
“지금 판국이 어느 판국인데 계집 타령이냐? 조금이라도 힘이 없으면 쓰러지는게 지금 정국이야!”
“담이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으시면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담이 애비 말이냐? 그 자는 이미 도망친 죄인일 뿐이야. 거기다 이미 저세상으로 갔다.”
“...네?”
“못 들었느냐? 그 자가 절노부 산속에 은닉해 있는것을 찾아내 처형했다 들었다.”
“그럴리가... 찾아냈으면 부족으로 모시고 왔겠지 남의 부족땅에서 처형을 했겠습니까?”
“흠, 흠... 그거야 호송하는 동안 또다시 도망칠까봐 그런것 아니겠느냐? 그나저나 이미 죽은 사람 이야기는 더 궁금해 할것도 없고, 혼례치를 마음가짐이나 갖거라!”
원이는 방에서 물러나자마자 말을 달려 담이의 마을로 향했다.
이젠 흉가나 다름없이 폐허가 되버린 담이의 집에서 원이는 남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대체 어디 있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아버지 소식은 들었느냐?
“오라버니...”
결은 늦은 밤 담이 곁에서 졸고 있다, 담이의 헛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담이야... 정신이 드느냐?”
“...원이 오라버니...”
“...!”
전에도 담이 입에서 나왔던 이름이다...
조의대두형 모사달의 장자...
“오라버니... 아버지가... 아버지가...”
담이는 헛소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자가 대체 네게 무엇이냐?
결은 담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같이 치미는 질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죽을지도 모르는 아픔과 싸우며 부른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결은 잔인해진 심정으로 담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담이는 갑자기 더해진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아악...!”
담이가 눈을 뜨자, 희미하게 결의 모습이 들어왔다.
“내가... 살았나요...?”
“...알고 싶으냐?”
갑자기 결의 입술이 다가왔다.
아픔으로 머리가 혼란한 와중에도 담이는 이 뜨거운 입술이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휘님처럼 따뜻하지 않아...
차갑고... 잔인하다...
결이 입을 떼자 담이는 탄식처럼 아픈 숨을 내 뱉었다.
결은 잠시 서서 내려보는듯 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방을 나가버렸다.
아옥이가 황급히 담이의 방으로 들어가는것을 본 결은 허공을 향해 손짓을 했다.
검은 그림자 넷이 결의 뒤로 나타났다.
“계루부의 조의대두형 모사달과 그의 장자에 대해 샅샅이 캐내라.”
그림자는 다시 소리도 없이 흩어졌다.
결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젠 네가 아직 못깨달은것을 가르켜줘야겠다. 넌 이미... 칠년 전에 내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