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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시작은 공산주의이다

뉴라이트의 시작은 공산주의이다

일단 되게 웃기지만, 뉴라이트의 시작은 공산주의입니다. 즉 보통 극우를 표방하던 전체주의자들이 공산주의와 연관성이 있던 전적(대표적으로 무솔리니)과 같은 경우가 이런 경우인데, 이들의 시작 자체가 애초에 좌경화된 학생운동권이 전향하면서 뒤집힌 거죠. 즉, 빨갱이 시절 버릇은 못버리고 우익으로 옷만 갈아입은 식이라고 보심 됩니다. 이래서 욕을 많이 처먹고요. ㅉㅉㅉ

당연하지만 이런 "빨갱이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미친듯이 지랄발광을 하는 거라고 보심 됩니다. ㅉㅉㅉ 참고로 불매운동이 마땅한 어떤 불소시개의 저자인 이모씨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전향한 안모씨의 제자입니다. ㅋ

얘들의 주장은 사실은 우익이 아닌 좌익의 주장입니다. 보통 큰정부, 글로벌리즘이 의미하는 바가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를 빨고 이승만을 빨아야 하다 보니까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데다가.. 그런 주장을 과거에 자기들이 해서 그냥 편한대로 깝치는 것 밖에 되질 않는 거죠. 사실 전체주의는 극우를 표방하든 말든 사실은 극좌와 극우가 비슷한 속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바로 그짝입니다.

​ 뭐 그보단 일본사를 좀 알면 그런 주장을 안 했을 건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___"의 시각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즉 스스로를 "___" 정도로 생각하는 관점이 듬뿍 들어간 꼴통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죠. ㅉㅉㅉ

아, 뭔말이냐.. 개인적으로 불소시개 책을 쓴 이모씨의 주장을 하도 어떤 미친 알바새퀴가 퍼다 찍어 놔서 봐온 건데, 여기엔 근본적인 에러가 수십가지 이상이 있습니다. 한번보면? ㅋ

(1) 먼저, 애초에 일제가 "한반도"를 근대화했다는건 우리한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소리와 진배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건데..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이 허약한 양아치 쪽바리들이 미국에 시비털다가 몇대 더 처맞을거 조기항복해서 대부분의 공업지역이 북한에 속한 채로 광복을 맞이합니다. 그 결과... 결국 근대화는 개뿔이고 한반도 내에서 근대화의 수혜를 입은 지역은 북한이고 아닌 지역은 남한이었죠...-_-;;

(2) 두번째로 그때 도입된 근대문물이 부정되냐? 됩니다. ㅉㅉㅉ

일제강점기는 1945년 까지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일본의 공업능력은 1940년대 당시 전간기 유럽수준이었죠. 즉 공업화가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었고 후달리는 공업능력은 이탈리아와 비등비등 했습니다. 다른 점은 이탈리아에 비해서 뜯어먹을 식민지가 많아서 간댕이나 키울수 있었던 결과 군대의 양적 비대화가 가능해서 커 보였지만.. 문제는 그 부실한 개판은 미군을 상대하면서 여실히 드러나게 되죠. ㅉㅉ

문제는 한반도의 당시 상황입니다. 즉 우리는 "근대화된" 것이라기 보다 "근대화 흉내를 냈던 일본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질 못했던 것이 현실인 거죠. 즉, 역사상으로 일본은 1980년대쯤을 제외하곤 단 한순간조차 선진국이었던 적이 없는 국가입니다. 당연히 "뒤쳐진" 근대화에 머물러 있는 "전간기 수준의 겁대가리 상실한 똥망국가" 일본에서 "근대화"를 논하는 자체가 우습다는 건...ㅉㅉㅉ

즉, 실증적인 문제를 가져와라? 풉. ㅋ

묻죠. 왜 미군과 상대하던 일본기의 격추교환비가 13:1이 평균이었고 전차의 격파교환비율이 33:1 이었을까요? ㅉㅉ 이게 바로 "근대화"의 허상이라는 겁니다. ㅉㅉ 즉 근대화의 척도랄수 있는 공업능력의 민낯을 보면 일본은 틀림없는 3류였죠. 양적비대화만 했지, 내실이 없었던 겁니다. 따라서.. 사실 우리는 근대화를 1960년대 이후에 했다고 보면 됩니다. 정확히는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허상"을 깨부순 시점부터 근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집권층에 의해서 그림자처럼 남은건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죠.

(3) 세번째... 이 알바새퀴가 주장하는 이모씨의 강의라는 어그로질을 담아둔 유튜브 채널의 주장 등등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가 선진적이고 독창적이다 따위의 개짖는 소리를 하고 있든데... 에혀. ㅉㅉ

일본군 위안부는 "전혀" 선진적인 제도도, 독창적인 제도도 아니었죠. ㅉㅉ 보통 이 또라이들의 문제가 이런 겁니다. 원숭이 새퀴들이 어디서 안 베껴왔을리가 없다는 거죠. ㅉㅉㅉ 그럼 실상은 뭐냐...ㅋ 일본군이라는 개양아치 집단 중에서 특히 노답이었던 관동군은 이런 저런 실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즉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에 군공창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그 결과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자 그거 말고 딴 방법이 없나 생각하던 중 눈에 들어온게 바로 프랑스군의 BMC였죠. 이는 종군 야전매춘소라는 의미입니다만, 실제로 일본군 위안부의 "원형"이자, 이 위안부제도가 강제동원없이 자발적으로 운영되었다면..? 이라는 가정에 대한 어느정도의 답을 주는 사례입니다. ㅋ

즉, 이 BMC를 본따기 시작한게 1937년부터의 위안부인데, 대략적 특징은 같습니다. 기본 개념은 식민지 여성들이나 본토여성(이부분만 독창적.. 프랑스군은 자국 공민권을 가진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쓰지 않았음)들을 데려다가 타지의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쓴다는 발상인데.. 프랑스군은 이게 "고용" 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이게 "강제동원" 이었죠. ㅋ 이로서 아마 현지인과 얽히면서 생기는 트러블을 방지하는 방향을 고려했던 모양이지만, 결론은 자국, 식민지 할거 없이 막무가내로 여성들을 강제동원해서 위안소에 처박았고 그 결과 답안나오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거죠.

즉, 만일 이 저자란 교수 타이틀은 달고 있지만 그게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인간이 "범죄의 독창성"을 주장하고 싶었다면 맞는 말인데. ㅉㅉ 애초에 전쟁사를 논하면서 이런 상식조차 없는 주장을 하고 처자빠진 자체가 문제란 겁니다. ㅉㅉㅉ

(4) 다른문제?

이건 누누히 지적하는데, 1937년 이후의 수탈은 그냥 수탈입니다. ㅉㅉ 그걸 수탈이 없고 수출이라고 주장하는 자체가 뇌가 어디로 가출한 거죠. ㅋ 더욱이 당시의 수탈은 추축국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이것을 "미화" 하고 있는 건 전쟁범죄 미화 중인 거겠죠? ㅉㅉㅉ

게다가 그 이전의 문제도 뻔한게.. 토지조사에 대한 이 불소시개치곤 돈이 아까운 종이쪼가리들에서 주장한 내용을 보면, 애초에 이게 "수탈의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ㅋ 왜냐고요? 이건 일본사가 증명하기 때문이죠. ㅉㅉ

누누히 말하지만 조선반도에서 쌀수탈이 필요 없었다는 헛소리를 하려면 데라우치가 조선총독 임기 후 수상이 된 다음에 쌀소동으로 인한 폭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일이 없었어야 합니다. ㅋ 실제로 본격적 수탈이 감행된 이후 조선에는 빈농이 증가하고 식량부족 상태가 이어졌지만, 일본의 쌀값은 개념없는 수탈로 쌀값 폭락을 가져올 정도로 수탈해간 쌀덕분에 적어도 데라우치 모가지를 처날린 쌀소동은 없었죠. ㅉㅉ

이는 식민사관이나 반일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로 이어지는 당시 일본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꼴통같은 소리인 거죠.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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