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2살 남자이고, 현재 군 복무 중에 있고 지금은 잠시 휴가를 나왔습니다. 이런 곳에 글을 써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평소에 고민이 있으면 꾹꾹 눌러 담아 참고 살았는데 도무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이곳에 제가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꽤 길고 두서없는 글이 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우울하고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라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이해해 주세요.. 사실 누가 읽어 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되겠지만요..
어렸을 적에 제가 초등학교 6학년 까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가 나름 화목하다면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정이 있다는 행복의 가치를 알기도 전에 점점 저의 가족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중1 이 되던 해 부쩍 부모님의 다툼이 늘더니 크게 싸우기도 하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서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으시고 연락도 안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늦게 까지 일을 하시기 때문에 저와 동생은 거의 둘이서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죠. 항상 학교를 다녀오면 동생은 혼자서 라면을 끓여먹고 학원을 다녀오고 저도 라면을 끓여먹고는 학원을 다녀오고 했습니다.
그렇게 중1, 중2 2년 가량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항상 엄마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아버지와 싸우기 마련이었고 다시 집을 나가고 그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항상 집에 남은 아버지의 질책은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정말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저와 동생에게 대하는 태도가 정말 다르다고 많이 느꼈는데, 엄마가 집을 나가고부터는 그런 구박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왜냐면 실은 엄마가 바람이 나서 그렇게 되었다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엄마가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면 아버지와 싸우는 모습을 몰래 숨어서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엿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죠 그래서 중2 때 저는 엄마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 전부였던 엄마가 너무너무 밉고 보기가 싫었습니다. 보기 싫은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렇게 중2 겨울까지 전전긍긍하다 아버지가 저의 이모에게 저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3이 되기 전에 이모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 동생도 아버지를 정말 무서워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동생을 혼자 두고 저 혼자 이모 집으로 가게 된 것에 대해 아직도 너무 후회스럽고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아무튼 중3이 되면서 이모집에 오게 된 저는 솔직히 말해서 심적으로는 조금 더 편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항상 답답하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모와 이모부는 저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마음은 편했습니다. 그렇게 이모집에 살때 가끔 엄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의 저는 엄마에게 매우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항상 만남을 기피했습니다. 훗날에 스스로 후회할지도 모르고요..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자세하게 후술 하겠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기피하다 보니 어느새 완전히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을 이모집에서 보내고 난 저는 고등학교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모도 저를 더 이상 집에서 돌봐줄 형편이 되지 않아 저는 기숙형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참.. 외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과도 멀어졌고, 같은 초,중교를 나온 친구들과도 떨어져 저 혼자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 항상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저에겐 친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와중 이모도 사정이 생겨 주말마다는 집을 가야하는데 이모집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와 거리가 정말 먼 외할머니집을 주말마다 왔다갔다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2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하셔서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다시 만나게 된 엄마의 모습은 실은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옛날의 건강한 모습이었던 엄마는 온데간데 사리지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 충격이어서 어린 마음에 다시 몇 달 동안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엄마를 만났습니다. 다행히도 엄마는 많이 호전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엄마와 같이 둘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지만 시간이 지나 그런지 엄마에 대한 거부감이 꽤 많이 줄어들었고, 주말마다 할머니집을 오가는게 지친 마음에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같이 살게되면서 엄마는 저에게 엄청 잘해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같이 사는 것에 익숙해 진 뒤로는 사실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살고 있었고 저는 그것에 대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정말 싸우면서 서로 상처도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이렇게 살던 중에 할머니가 저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습니다. 실은 지금 있는 아빠가 네 아빠가 아니라고, 네 친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셨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저는 생각보다 무덤덤 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 계신 아버지가 저에게 대한 행동들이 차라리 친아버지가 아니였기 때문에 그랬던 거구나 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슬픈 것은 저는 제 친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는 것과 제가 어렸을 적 돌아가셨다는 것 이었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버지가 실은 돌아갔다니.. 슬프기도 하면서 또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해졌고, 특히 여자친구가 생기면 여자친구에게 정말 많이 기대곤 했습니다. 고3 때 만난 여자친구가 그 당시 전부라고 느낀 저는 공부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여자친구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철이 정말 없었죠 그러다 20살이 되던 해에 여자친구가 환승이별을 하였고, 그때 저는 엄청난 절망감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무너지고 말았던 것 입니다. 입학했던 대학교도 자퇴를 하고 20살 1년을 외할머니집에 틀어 박힌 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제가 정신을 못차리고 방황하며 산다고 생각한 시기를 적었습니다. 후술할 내용들은 제가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부터의 이야기이자 마음이 무거워지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0살을 내다버리고 저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대학을 다시 다녀보자는 마음에 엄마집으로 다시 내려와 집과 가장 가까운 대학에 원서를 내어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녀보려고 하였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다 내고.. 국가장학금도 못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계신 아버지와 실질적으로 같이 살지도 않고, 지원받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국가장학재단에서는 저의 아버지의 소득을 함께 잡아 결국 소득분위 책정이 9분위로 나와 사비로 등록금을 다 충당해야 했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에 제가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더군요.. 억울했지만 사전에 미리 알고 대처를 못한 제 잘못도 있고 건강보험료도 아버지의 피부양자로 되어 부담된것도 사실이니 받아들인 채 무거운 마음으로 할머니와 엄마에게 돈을 받아 등록금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가 보지도 못하고 결국 한 학기가 끝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6월 무렵 집에 법원에서 서류가 하나 날라왔습니다. 저의 엄마에게 온 것이였습니다. 읽으면 안되지만 도무지 안볼수가 없겠더군요.. 그렇게 벌벌 떨며 읽으니 엄마가 사기죄로 고소를 당했더군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내용을 보니 저와 함께 살면서부터 한 사람에게 돈을 요구를 많이 했더군요.. 저때문인가 싶어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한 저는 군 복무라도 빨리 마치고 오자는 생각으로 2020년 7월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도망친 감도 없지않아 있지만요..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군 생활도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굳이 군 생활을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아무튼 한 달 전부터 마음에 병이라도 생긴 듯 이전과는 다른 우울감이 저를 계속해서 갉아먹고 있습니다. 휴가를 나오기 전에는 군 생활에 싫증을 느껴 생긴 우울증이라 생각하였는데, 휴가를 나오고 엄마를 다시 보면서 마음에 있었던 우려들이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엄마를 생각하니 지난 몇 년간 다시 같이 살게 되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저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던 엄마에게 마음이 열리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정말 엄마와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군 생활을 하루하루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청난 불안감이 찾아오더군요.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과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더군요. 특히 엄마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더더욱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 휴가를 받아 집으로 오고 엄마를 본 순간 제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전까지 분명 엄마는 나름 건강하고 기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만에 보는 엄마는 정말 기운이 없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때 1차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던 중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갔다가 자고 있던 엄마의 발목에서 전자발찌를 보게 되었습니다.. 에이 아니겠지.. 설마 아닐거야 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봐도 범죄자들이 차는 그 전자발찌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2020년 8월 이후로 구속심사를 받는 피고인 중 도주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 조건부보석을 해주는 제도가 마련되었더군요. 집에 보니 재택감독장치도 설치되어있고.. 정말이지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엄마가 전자발찌를 찼다는 사실자체도 힘들지만, 제가 가장 힘든 것은 엄마 스스로가 전자발찌를 착용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많이 상했을까봐 힘이듭니다.. 내색하지않지만 얼굴이 정말 많이 상해있었고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제가 없던 지난 1년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만해도 마음이 너무 아렸습니다. 물론 제 엄마가 지은 죄가 있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에게 그런 사실들을 숨기려고 하고 그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해야되는 저도 정말 마음이 찢어져 갑니다.. 한때 엄마를 미워했었지만 지금은 정말 엄마가 행복하게 살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엄마가 전자발찌를 차고 있으니 참.. 그게 저 때문이가 싶기도 해서 더욱 아픕니다.. 물론 모든 것이 저의 엄마가 자초한 일입니다.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저로써 너무 힘이듭니다.. 며칠 뒤면 부대를 복귀 해야하고 전역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옆에서 엄마를 돌봐드리고 싶은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정말 무기력합니다. 미워했었던 엄마라, 내가 미워했었다는 것을 엄마도 알고있기에 더더욱 미안하고 아픕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미래를 보고 달려야 할 나이에 이런 상황들에 처해진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걱정보다는 행동으로 앞서야 할 시기에 저의 많은 걱정과 고민은 내 자신을 괴롭고 아프게 만들고 있네요.. 아무것도 아니야 지나고나면 정말 별게 아닐거라고 늘 스스로 속삭이지만 정말 쉽게 나아지질 않습니다. 정말 심리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할까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 없어지진 않았으나, 조금은 털어낸 것 같습니다.. 글이 길고 지저분하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라면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