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결시친에 관련한 내용은 아니지만 인생 선배님들이 가장 많이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20대 후반 여성입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말을 더듬거나 그런 류의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일이나, 불만 등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소심한 제 성격의 탓이 99프로 이상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집안 환경이 영향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 형제 사이의 위치에서 저의 주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통제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어렸을때는 그저 호기심이 많아서 이건 왜? 왜?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너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는것이냐. 라는 대답이요.
부모님의 별거가 오래되고, 기 센 시댁살이를 지내오며 저희 어머님이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것은 조용히 하는 법, 순응하는 법이었습니다.
너는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엄마가 하라는대로만 해.
너는 ~~해야해, 토달지마.
시험에서 틀리는 갯수대로 회초리를 맞고
좋아하는 아이돌 브로마이드가 찢기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 잘못이고, 저를 가르치기 위한 훈육의 과정이라고 배워왔으니까요.
그저 엄마 말대로만 하면 나의 미래는 탄탄대로이나, 엄마의 말을 어기는 날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살았고,
저는 엄마가 낳아주고 키워준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언젠가는 어머님께 갚아드려야하는 의무를 새겨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형제들 또한 같은 프로세스 안에서 교육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절대원칙에 대해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건 처음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저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공동생활을 경험했습니다.
많이 힘든 날이었습니다.
사회성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았던 저는 같이 생활하는 친구, 선후배들의 눈치를 보고
짓궂은 장난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한채 꾹꾹 눌러왔습니다.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어느순간 잠이 늘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학교, 자습실, 버스, 심지어 길을 걷는 순간에도 잠에 드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학교 공부에는 당연히 집중할 수 없었고, 잠든 시간을 대신해서 수업 진도를 따라가느라 계속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신체검사 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떻냐고 권유하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있는 아이라며 한숨을 쉬던 어머님은 심리상담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식으로밖에 자라지 못한 것이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더이상 저는 어머님께 제 마음속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속이야기를 하는 것은 죄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자리 잡았습니다.
참고서 한권, 옷 한 벌. 가지고 싶은 물건 하나도 이야기하기가 무서워서
괜찮아, 라는 만능답변만 반복하다보니 더이상의 갈등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가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고, 저는 엄마를 거역하면 안되는 딸이니까요.
그렇게 서울의 대학교로 진학한 뒤, 저는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
용돈은 생활비 대출로 충당했고,
알바비는 어머님의 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생활비에 보태야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셨거든요.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공부할 시간 없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11시가 넘어서 집에 오면 부업.
학교에 오면 잠에 빠져사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아르바이트는 대학생활 4년 내내 단 1주일도 쉴 수 없엇습니다.
하루만 쉬어도 엄마의 생활비 걱정을 들으며 죄책감에 시달려 일을 구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게도 마지막학기, 한 기업의 계약직 업무를 따내면서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취업 소식에 엄마는 좋아하시기보단 취준생인 형제를 위해 취업사실을 숨기라고 먼저 이야기하셨습니다.
처음 대학에 합격했을때, 입시에 실패한 형제를 위해 대학 합격증을 숨기라고 이야기했던 것 처럼요.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저의 잠문제는 더 심각한 양상을 보였고, 사무실에서 실신한 뒤 실려간 응급실에서 기면증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클리닉을 소개받고, 검사 일정을 조정하던 중 이 사실을 발각당하면서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자 취급 하시더라구요. 화가 치밀어올랐고, 서러워졌습니다. 엄마가 더이상 불쌍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옳은 것일까 하고 마음속 의문으로만 간직했던 것들이 입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왜 생활비 명목으로 1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내야하는지
아르바이트 한번도 하지 않은 취준생 형제 대신에 생활비를 보태는것이 왜 당연한 일인 것인지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을 보탠다는 엄마의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된다는 이야기
이렇게까지 집에 집중했는데 나는 왜 내 몸 하나 들여다 볼 수 없는지까지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으면 죽을것같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천하에 둘도 없는 ㅆㄴ을 만드셨습니다.
결국 저는 첫 일탈,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요.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더라구요.
어떻게 찾았냐 물으니 제가 집에 두고 온 노트북의 계정을 통해 위치찾기를 하셨답니다. 형제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울고 불고 저를 잡고 사정을 하길래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제가 호구였어요 하지만 새벽에 길바닥에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을 연출해서(주목받는 상황) 저 스스로 약해져버렸습니다....
그 이후 검사를 받았고
저는 기면증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몇년간 저를 감쌌던 그 안개의 정체가 드러나자 한편으로 씁쓸해졌습니다.
약물치료를 받아야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결과를 듣고 정신병이며 너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며 그 와중에도 저를 깎아내리는 태도에 사랑은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엄마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제 연봉
연봉이 오르면 돈을 더 보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좋아하셨고
일을 그만두면 하루만 쉬어도 쓸모없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모아둔 돈을 집 대출금 상환에 쓴것도 모자라서 추가 대출을 받아 이사갈 생각까지 하고계시네요
못참겠어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랬더니 키운값을 내놓고 나가라네요.
제가 투자받은게 없는데 뭘 주고 가야하냐 했더니10달 키운 값도 투자라고 하시네요
말도 안통해서 이제는 말을 하고싶은 생각도 싹사라집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모아둔 돈도 없이 나가는 것도 쉽지않고, 제 직장의 협력사에 언니가 다니고 있어 조금 걱정이 됩니다.
제가 아직도 덜 깨달은것같기도 하고, 하편으론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스스로가 괴롭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