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스타 하다가 맞춤법 논란 글, 반지성주의 관련글이 보이면 하고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여기가 제일 많은 것 같아서 여기다 쓰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해서 논할 때 세종대왕님을 많이 거론하니 세종대왕님의 한글창체 기저에 깔린 사상적 측면과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어가 겪은 변화들을 중점적으로 위와 같은 논리에 비판해 보겠습니다.
먼저 무식을 지적하는 일부 사람들이 범하는 무식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잘못된 어휘나 맞춤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두고 '세종대왕님이 노하시겠다'하는 식의 공격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님이 창체하신 것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글자 '한글'입니다. 또한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창체하던 시기의 한국어는, 많은 사람들이 중세 국어 공부하다가 좌절을 몇 번 경험해서 알겠지만, 어휘 측면에서나 문법 측면에서나 현대 국어와는 그 모습이 매우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맞춤법과 어휘를 틀렸다고 해서 언어의 창시자가 아닌 문자의 창체자 세종대왕님을 끌어다 언급하는 것은 언어와 문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발언인 겁니다.
그 다음으로, 외래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국어 교과서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한 외래어 및 외국어 사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해 보자면, 식자층이 즐겨 사용하는 한자어도 사실 고유어 입장에서 보면 외래어입니다. 한국어 전체 어휘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는 사실 한자어가 들어올 당시의 (중국이 초강대국이었던) 세계 정세와 그에 따른 필요에 의해 수입된 말들입니다. 한자어가 고유어를 대체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자어의 자리를 영어나 기타 외국어나 외래어가 대체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나 외래어의 도입이 의사소통에 장애를 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감이 다른 외국어 및 외래어를 한자어나 고유어로 억지스럽게 바꾸는 것이 국내 의사소통 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 대외 의사소통까지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굳이 번역해서 한국에서 쓰고, 그걸 다시 굳이 번역해서 외국인과 대화해야 하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외래어의 도입에 대해 반대하면서 한자어는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신조어에 관해서도 저는 우리가 조금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으로 인정받는 시조와 가사, 판소리 등에서는 그 당시 서민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준어라고 보기는 어려운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욕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수험생들은 외려 그런 말들을 분석하고 공부하기도 하지요. 신조어는 '삼포 세대'와 같은 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시대상을 함축하여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시대의 삶을 반영하고, 또 함축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신조어의 유래가 특정 계층이나 개인에 대한 혐오와 같은 부적절한 것만 아니라면, 신조어가 얼마든지 널리 사용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킹받는' 국어 지문 분석할 우리 후손들이 고생을 좀 하긴 하겠지만요.
마지막으로 '무식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 또한,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어휘는 어휘가 어려운 만큼 복잡한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언어를 더 풍성하면서도 간결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맞춤법 또한 읽는 사람이 글을 쓴 사람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요한 때와 장소에 한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논지는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말자 내지는 맞춤법을 무시해도 좋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식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어휘력이 부족해 맥락을 잠시 놓쳤을 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궈야 하는 것인가요? 언어의 목적은, 적어도 이런 공격이 오가는 인터넷 상에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가 줄어들어 '돼'가 된다는 문법 정보를 굳이 밝히어 적지 않아도 사람들은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됬다'가 틀린 표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 외에 이런 표기가 초래하는 문제점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문장이 너무 난잡해 '해석이 어렵다'라고 불편 사항을 전달하는 것은 괜찮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사람들이 가시를 세우고 비판하는 잘못된 표기나 어휘 사용은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껴야 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발 더 나가면, '무식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장애를 더 가중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식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 뜻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무식을 질타한다면, 사람들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숨기고 대충 넘기게 됩니다. 이는 더 큰 의사소통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세종대왕님의 정신을 한 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세종어제훈민정음'은 한글 창체의 목적이 '어린 백성'들을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은 '어리석다'라는 뜻을 가진 중세국어 단어입니다. (여기서도 어휘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터넷 상에서 맞춤법과 어휘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무용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글은 식자층이 아니라 어린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백성들을 위해 창체한 한글을 놓고, 어휘가 부족하다느니, 맞춤법이 틀렸다느니 지적하는 것은 한글 창체를 덮어놓고 반대했던 당시 사대부들의 행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님 이름을 끌어다 쓰다니, 세종대왕님이 노하실 일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어린 백성들을 욕되이 이르는 이런 일이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어휘와 맞춤법 등은 지금까지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연속체인 국어의 한 부분입니다. 변화하는 국어의 한 부분이 단지 현재의 '표준'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모욕과 수치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밤에 인스타 보고 열받아서 글 써봤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에 동의하신다면 마음껏 퍼가셔서 이 글과 제 생각이 널리널리 퍼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비판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