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사실 몇 번 그러다가 이내 시들해졌습니다.
겨우 중학생이 무슨 멋이 그렇게 있었겠습니까.
제 남편 사실 그다지 멋있게 생기진 않았었습니다.
키도 작았고 덩치도 왜소하고 말주변도 별로없고 공부도 그저그렇고.. 생긴것도 그냥그렇고.. 한마디로 평범 그자체였죠.
적어도 만화나 동화속의 왕자님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반창회때 한 번 보고, 두 번째로 친구 여럿이서 남편집에 놀러갔었고..
남자친구 있는 제친구들 통해서 그애소식 가끔듣는 정도로 그냥 그렇게 잘지냈습니다.
그리고는 고등학생이 되고..
고3 여름방학때 동네 남.녀 친구들이 열 댓명 모여서 계곡으로 놀러갔습니다.
물장난도 맘껏치고 수건돌리기며 노래시키기 등등 온갖 유치한 장난은 다하고 놀았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저를 물먹인 놈도 있었죠. 아주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님들도 아시겠지만 고3이라는 인격체가 어디 인격체로 여겨지기나 합니까?
고3은 그냥 고3이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고3!!
자나깨나 공부만 하라는거지요.
그러나 우리동네 남자애들.. 공부랑 안친하게 지내더군요.
차라리 우리랑 더 친했죠.
그러더니 10명중에 3명만 대학에 붙고 나머지는 낙방을 했지요.
모조리 후기대로 진학을 했답니다.
여기서 잠깐!!
지금까지는 저의 관점이었고 제 남편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나가자면 이렇습니다.
저의 평화로운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남편은 고통의 나날이었답니다.
반창회때 저를보고 첫눈에 뻑갔답니다.
그런데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한가닥 한다는 동창놈이 자기 바로옆자리에서 계속 저를
보며 침을 흘리더랍니다. 그래서 내색도 못했다나요?
여자들 소지품을 남자들이 골라잡아서 짝 정하는거 아시죠?
제꺼를 그 한가닥이 잡은겁니다. 물론 사회자랑 짜고서 말입니다.
근데 그때 저는 바로 도망을 갔었거든요. 왜냐고요? 그 한가닥이 무서워서죠.
제 남편은 없어진 저를 찾느라 고생꽤나 했다네요.
그날 이후로 자나깨나 제생각에 몽롱한 정신으로 삶을 이어갔는데...
그날 사회를 맡은 친구가 모여서 놀자(?)는 제의를 하더랍니다.
물론 그 중에 저도 있었죠. 다행이 그 한가닥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를 다시 보는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답니다.(자신도 모르게..)
근데 그때 갑자기 비가 왔거든요. 그래서 다들 흩어지는 분위기였는데 그때 신랑이 외친거
죠. “다들 우리집에 가자!!!”
그래서 가게 됐는데 그날 저녁에 부모님께 무지 혼났답니다.
친구들 불러서 집 엉망으로 해놨다고...
제 집앞으로 지나다녀도 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애가 많이 탔다네요.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고... 매일 그 생활의 연속이고...
친구들 매수해서 제 일거수 일투족 알아내기가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네요.
그러니 대학에 붙겠습니까?
알고봤더니 계곡에 놀러갔던날 저에게 물먹인게 남편이었답니다. 내 참 어이없어서...
그렇게 하면 둘이 더 친해질 줄 알았답니다.
고3 11월.. 그때는 가고자 하는 대학에 가서 시험을 치뤘습니다.
집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원서를 넣었다면서 시험 전날 묵을 방을 구하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제가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니까 하는말이 기차 여행삼아서 가자는 겁니
다. 기차타고 두시간 거리라더군요.
그래서 그러마하고 같이 가줬건만... 결과는 낙방이었죠.
집하고 가까운 후기대에 일단은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의 생활에 젖었습니다.
저는 상고를 나와서 바로 취직을 했거든요.
상고나오신 다른 님들도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전 좀 자격지심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은근히 남편을 괴롭힌것 같습니다.
안만나주기, 만나도 가끔씩만 만나주기, 만나서 짜증내기, 그래놓고 살짝만 달래주기..
어쨌든 우위에 서기위한 저의 계략이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준다더군요. 하필이면 남편이랑 영화보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소개팅 때문에 영화보는건 미뤄야겠다는 제 말에 남편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만에 이러는 겁니다.
“그럼.. 난? 나랑 먼저 약속한거 아닌가?”
순간 전 당황했습니다. 언제나 제 말이면 OK였던 그애가... 반항을...
“어... 어.. 그래.. 그치만.. 친구가 사람이 모자란다고..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그래도 선약이 있는데.. 니가 꼭 보고싶다던 영환데...”
괜히 심통이 났습니다. 그래서 독하게 말하고는 소개팅을 나갔죠.
여기서 또 잠깐.
남편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남편은 그 영화를 보기 위해서 꽤나 애썼다고 합니다.
매회 매진이라는 소문에 그 전날 미리 극장에 가서 예매를 했었다더군요.
이쁘게 보이려고 옷도 한 벌 사고, 머리도 자르고.. 헤어젤도 사고.. 암튼 무지 기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근데 갑자기 제가 앞머리 뒤꽁지 다 잘라먹고 무조건 소개팅을 가야겠으니 영화를 못볼것 같다고 하더랍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제가 참 싸가지가 없긴 했어요.
큰맘먹고 반항도 해봤건만..
“사람이 살다보면 선약보다 중요한 약속이 얼마나 많은데? 먼저 태어났다고 먼저 죽으란 법 있냐?” 이러면서 돌아서버리니 참...
그날 소개팅한 남자랑 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소식을 접한 남편은 거의 폐인이 되어갔죠. 맨날 술마시고 인사불성되어서는 친구들이 저에게 전화를 했죠. 그럼 전 나가서 술값 계산하고 집까지 갈 택시비 친구들한테 쥐어주곤 했어요. 그러면서도 안만나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과연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그건 아직도 장담 못해요.
적어도 싫은데 억지로 만난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근데도 가슴 한구석에 남편에 대한 자리가 항상 있었어요. 참 알수없는게 사람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에는 데모도 참 많았어요. 남편도 학생운동에 꽤 깊이 관여했었나 봐요.
근데 전 그 사실을 몰랐어요. 남편 친구한테서 들었어요. 그 친구 꽤 모진말 하더군요.
싫으면 싫다고 하든지. 좋으면 좋다고 하든지. 왜 어정쩡한 자세로 사람 헷갈리게 하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싫다”라고..
일어서면서 그러더군요.
“××이... 요즘 학생운동하는데 죽어라고 쫓아다니는데... 말려줄 사람 너뿐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왔는데... 내생각이 잘못된거 같다. 우리.. 왠만하면 살아가면서 자주 안부딪혔음 좋겠다.”
순간 멍~ 해지는 느낌..
집으로 돌아가는길 골목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내가 지금 뭘하자는 거지? 내가 그애한테... 그애가 나한테.. 지금 뭐하는거지?’
다음날 회사에 월차내고 남편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입구부터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코끝이 매워오면서 눈을 못뜨겠는겁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뛰어가기 바빴죠.
저도 얼른 입을 가리고 서둘러서 올라갔습니다.
왠 함성소리도 들리고, 음악소리, 펑~펑 하는 소리.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설마.. 설마..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는 급히 올라갔는데..
학교 중턱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주위를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남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그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집회장면을 담고 있었나봅니다.
전 그저 망연자실했습니다. 언제 깎았는지 모를 수염이며 꽤재재한 모습이라니..
흐르는 눈물 콧물 수습하고 애써 태연한 얼굴로 가만히 뒤편에 서있었습니다.
한참 촬영을 하던 남편이 순간 멈췄습니다. 카메라에 있던 한쪽눈을 마저 떼고는 저를 한참 쳐다보더니 눈을 한 번 비비적거리고... 다시 보더군요.
제가 씨~익 웃었더니 자기도 피식 웃더군요. 카메라를 다른사람에게 넘기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위험한데 왜 왔어?”
“그럼 넌? 너한테는 안위험해?”
“그러~~엄. 난 천하무적이잖아. (씨~익)”
“....... 너.. 왜이러고 사니? 이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니?”
한참을 고개 숙이고 말이 없었습니다.
“의미는 무슨... 그냥... 이것도 내 모습이야... 그냥 그렇게 생각해줘. 그리고.. 나..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걱정안해도 돼.”
“걱정은 무슨.. 내가 왜 니걱정을 하냐? ......넌... 천하무적인데... ”
그때 왠 여자애 하나가 뛰어오더니
“선배. 뭐해요? 필름 다됐어. 빨랑와.”
순간 남편 아주 당황해 하면서..
“어? 어... 알았어. 곧 갈게.”
“누구야? ”
“어... 학교 후배... 동아리 후배야..”
“그래? 찾는데 가봐라. 나도 약속있어서 지금 가봐야 되거든.”
“그래.. 조심해서 가고... ”
저는 슬펐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뛰어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오늘 밤.. 같이있자고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매우 당황했지만 곧 그러자고 하더군요.
무슨일 있냐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그냥 기분이 울적하다고만 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갈 곳이 없으면 들어가는 숙박업소 있죠?
거기로 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결국 전 말했습니다.
남편에게도 말못한.. 저의 이야기를...
제가 그때까지 남편과 사랑하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던 그이유를..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