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해자는 곧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온대. 나는 절대 그걸 눈 뜨고 볼 수 없어. 내 삶, 내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지난해 4월 불과 17세의 나이에 불과했던 A양은 성폭행으로 인한 고통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더는 고통받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9년 6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A(16)양은 교제중이던 같은 학교 3학년 B(18)군으로부터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다. 단 둘이 술을 마신 뒤 A양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B군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여자친구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A양이었지만 전교생이 스무명 안팎인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A양은 주변 사람들과 가해자 측으로부터 갖은 비난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A양의 고소로 강간치상죄로 재판에 넘겨진 B군은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였다"며 범행을 줄곧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여자친구였던 피해자를 간음하고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피해자에게 거짓말 등으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피고인의 가족들도 피해자에게 '피고인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연락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했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1심 재판 이후 A양은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 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호소했고 끝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A양의 사망과 성폭행과의 인과성이 있다고 판단해 B군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고인에게 방어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판결을 선고한 것은 위법했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은 해당 사건을 파기환송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로 돌려보냈고 유족 측은 강간치상죄가 아닌 강간치사죄를 주장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2부(견종철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이 사건 범행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징역 7년으로 감형했다. 모든 선고 공판에 참석했던 숨진 A양의 유가족들은 "내 딸을 살려내"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에 피해자 유가족과 강원여성연대·강원도여성권익증진상담소·시설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오는 16일 춘천지법 앞에서 사법부의 부당한 판단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정윤경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는 "학교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 피해자, 성폭행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2차 가해들로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피해자가족들의 피해는 대체 누가 보상해줄 수 있단 말이냐"라며 "10대의 어린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성폭력 사건을, 어머니의 오열을 사법부는 듣고 싶지 않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연 사법부는 피해자의 죽음에 영향이 없다라는 말로 그 터널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