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온 글입니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가볼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술자리를 경험했지만,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술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뭐, 웬만하면 다 좋게 마셔서 그럴 수도 있지만 술이라는 게 나이가 들수록 감흥이 떨어지고 만다.
어쨌든 내 인생 최고의 술은 스물한 살 때 마셨다. 1992년 어느 날, 집안일 때문에 아침 일찍 시청에 간 적이 있다. 시청에서는 호적초본이 필요하다며 아버지 고향의 면사무소를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터미널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아버지 고향 팔봉으로 향했다. 지금이야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갈 거리지만, 이곳저곳 다 들렀다 가는 완행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팔봉 행 버스도 두 시간에 한 대꼴로 드물었다.
아무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팔봉면사무소에서 호적 초본 떼는 일을 끝내고 나니 점심때가 다 됐다. 한적한 시골의 면소재지에서 밥 한 끼 사 먹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스정류장 바로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낡은 테이블 두 개가 전부였고 주인도 가게를 잘 지키지 않는, 그야말로 소박한 시골 상점이었다. 메뉴라는 것도 ‘막걸리나 한 주전자’가 올려진 시골밥상이 유일했다. 그래 좋다. 할 일도 끝냈으니 막걸리나 한 잔 먹고 가자. 주인 할머니에게 밥상을 주문했다. 김치와 된장찌개, 호박잎이 올라간 시골밥상. 동그란 양은 상을 받고 막걸리를 한 사발 쭉 들이켰는데, ‘크아악’ 정말 맛이 기가 막혔다. 그래서 거푸 두 잔을 더 들이켰다. 낮술이 무섭다고 겨우 두 잔 마셨을 뿐인데 술이 확 올라왔고 그제야 팔봉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팔봉산은 태어나서 그때까지 아버지로부터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에는 여우가 득실거렸고 호랑이도 살았다는 그 산. 아버지가 인생을 두고 가장 사랑하셨다는 그 팔봉산이다. 아버지의 추억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팔봉산이 그냥 좋았다. 지금도 여우가 두 마리쯤은 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팔봉산을 감상하고 있는 사이,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아차, 하는 사이에 놓치고 만 것이다. 이제 다음 버스까지는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막걸리 한 주전자 더 마시자. 그렇게 막걸리를 더 주문했더니, 할머니가 주전자를 들고 와서는 내 밥상 앞에 앉아서 “어디에 사는 뉘슈?” 말을 걸어온다. ‘누구라고 하면 아나?’ 이런 생각으로 별 기대 없이 아무개라고 대답했는데, 놀랍게도 그분은 우리 아버지를 잘 알고 계셨다. 할머니의 아들 되는 분이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까지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더니 내 눈이 우리 아버지를 꼭 닮았다며 너무 반가워하신다. 두 번째 주전자는 첫 번째보다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세 번째 주전자는 버스가 한 대 더 지나가기 직전에 올라왔다. 이제는 버스가 아니라 리무진이 와도 이걸 다 비우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심산이었다. 행길이라고 하지만 버스를 포함해 자동차라고 해봐야 한 시간에 서너 대 지나갈까 말까 싶은 한적한 시골 면소재지에, 아버지의 젊은 시절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와 팔봉산을 바라보면서,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는 버스를 한 대씩 보내면서 마시는 술을 어찌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 돼서야 비틀비틀 버스를 잡아타고 시내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집으로 걸어갔다. 그때까지도 계속 여흥이 남아 있었다. 그때는 이미 내가 내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돼 있었다. 꼭 장에 나왔다가 쌀 팔은 돈으로 막걸리나 흠씬 마셔버린 우리들의 할아버지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팔봉산이,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의연하게 계속 버텨주는 그 산이 더욱 그리워졌다. 죽기 전에 그곳에 한 번 더 가볼 수 있을까? 그 행복한 순간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시간이 나지 않는다. 얼마 전 아버지 산소를 가는 길에 그 버스정류소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식당이 바로 그 위치에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들르진 못했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내 인생 최고의 술자리를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겠지.
<날개없는 30대 남자들의 유쾌한 낙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