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것도 아니었고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그래도 무능력한 남편 대신해 온 몸 부서질때까지
자식 키운다고 밤낮으로 일 한 사람..
돈을 벌어도 벌어도 자식들 매일 굶고 지내니까 어디가서 먹을거 생기면 즐거운 목소리로 집에 와서
야 갈비 먹어! 했던 사람..
그때는 몰랐다. 그냥 다 몰랐다.
27살.이제 돈 좀 벌라니까 암에 걸리셨다.
오래 투병했고 나는 점점 스러져가는 엄마를 지켜봐야 했다.
간병이 힘들어서 짜증을 많이 냈다.
그때도 몰랐다.
어느 날 병실 의자에 앉아 비쩍 말라버린 엄마를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가 웃으면서 왜 그렇게 쳐다봐? 라고 했다.
투병 중에도 혼자 청소를 할 정도로 괜찮아보였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
나는 임종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두려웠다. 내가 무너질까봐.
그때 엄마는 무슨 말을 하고싶었을까.
집에서 혼자 미친듯이 울었다.
집에서도 위패를 쳐다보지 못했고, 문득 연 가방안에 있던 상복에 놀라서 도망가기도 했다.
나는 영원히 엄마에게 고층 아파트를 사주겠단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지방으로 내려가 취업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회사 일찍 그만 두는 사람들, 일 대충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나같은 간절함이 없겠네.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게 본가 안 가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나는 이제 고아고 돌아갈 집이 없다.
부정했던 외로움을 인정하게 되었고..
가족을 꾸리고 싶어졌다.
그게 꼭 결혼으로만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닌..
그냥 나도 돌아가면 따뜻하게 맞아줄 부모님이 필요해졌다.
지나가다 보이는 시골집들이 부럽다.
도시의 한적한 주택골목이 부럽다.
그냥 그런 곳은 잘 챙겨주는 부모님이 살고 계실것 같아서..
나도 베개 베고 누워 뒹굴거리며 깎아 준 과일 먹고, 티비 보다가 낮잠 푹 자고싶다.
명절 못 보낸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나 혼자 시장에서 전과 떡을 사다 먹어도 즐겁지가 않다.
북적이는 대가족 속에서 웃고 떠들면서 있고싶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 먹고싶다.
엄마가 살아돌아 온다 해도 난 그대로 투덜거리겠지만..
엄마 하고싶다는거 다 하고, 먹고싶은거 다 먹게 해주고싶다.
진짜 엄마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