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때 그 호스트.”
이래서 세상은 넓고도 좁은 거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저 악연을 그것도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서 딱 만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냐 말이다.
“말 함부로 하지 말지.”
그날 아침엔 자고 일어나서 부드러워 보였을까? 지금의 그에게서는 그때와 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더 차갑고 냉정한, 뭔가에 기분이 상한 듯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물론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력적이었다.
‘미쳤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잖아요. 부끄러우면 직업을 바꾸던가.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혹시 출장도 다녀요.”
“이 여자가 정말.”
순간 민아의 똘기가 발동했다. 혹시 때리고 싶으면 때리라는 듯이 고개를 들이 밀며 깐죽거렸다.
“내가 상관 할 봐는 아니라는 거 잘 아는데요. 그래도 한 마디만 할게요. 왜 인생을 그렇게 살아요. 아니 생긴 것도 멀쩡하겠다. 시지 육신 멀쩡하면 다른 일을 좀 찾아봐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 나면 아이한테 뭐라고 할 건데요. 아버지는 밤일 했다라고 할 건 아니잖아요. 혹은 가끔 낮에도 일 다니기도 했어. 좀 정신 좀 읍.”
바깥바람에 노출되었던 차가운 민아의 입술과는 대조적으로 진현의 입술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마치 엄마의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당신 입 다물게 하는 건 이 방법이 최고 인 것 같은데. 난 바빠서 이만. 그리고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전에 모르는 남자 집에서 잠을 잔 자신에게나 충고 좀 하지.”
부끄럽게도 진현이 자신에게서 민아를 떼어 놓았을 때에야 그녀는 자신이 그를 안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미 충분히 했거든요.’
“좀 놓지. 이런 건 자식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건데.”
그렇게 진현은 할 말을 잃어버린 민아를 그 자리에 세워 놓고 가버렸다. 잠깐이었다. 한 10초. 그런데 그의 기습 키스에 또 한 번 민아의 심장이 녹아 버리려고 했다.
“저 인간은 내 인생이 독이야. 미쳤어. 윤민아. 정신차례.”
민아는 진현이 쫓아오기라도 할 것 처럼 계단을 요란하게 뛰어 오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울까.”
집에 들어오면 반기는 강아지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 왔지만 그녀가 없는 동안 혼자 있을 강아지를 생각하면 쉽게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학회 따위의 일로 집을 비웠을 땐 맡기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아~~. 외롭다. 잠깐. 왜 외롭다는데 그 인간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띵동
발버둥 거려도 빠져 나올 수 없는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진현의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누구세요?”
“언니 나 진경이.”
“어 잠깐.”
문을 열자마자 진경이 소주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술 한 잔 하자 언니야.”
“들어와.”
진경이 내민 봉투를 받아 들고 그녀가 들어오도록 몸을 비켜주었다.
“근데 갑자기 웬 술?”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혼자 살아온 세월이 많은 만큼 민아는 혼자 지내는 생일이 사람을 얼마나 씁쓸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애도 참. 말을 하지 그럼 케이크라도 사왔지.”
“됐어. 그래도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야. 혼자 술 마시면 재미없는데.”
“그치.”
진경은 언제나처럼 술을 마시기 위해 이것저것 깨내 준비를 했다. 금세 술상이 만들어졌고 두 여자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얼큰하게 술이 올랐다.
“언니?”
“응?”
“난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무슨 소리야?”
상처를 많이 받은 목소리였지만 진경의 표정에서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일 뿐이었다. 민아는 가끔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직접 아픔을 드러내기 전에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저 언제나 맑음. 남들이 보는 일기예보는 속에서 일어나는 태풍을 감지하긴 힘들었다.
“난 축복받지 못했거든.”
민아는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진경이 고통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녀의 말에 놀랐다.
“있잖아. 나.... 사생아야. 그래서 우리 할아버진 나 미워해.... 자기 손녀가 아니라고....치이. 우리 할아버지 치사하지.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나두 우리 할아버지 손녀이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구.”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어?”
“그게.... 한번은 우리 엄마가 집안 행사 때 술이 이따 만큼 취해서는....”
진경은 엄마가 그 당시 얼마큼이나 취했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양 손을 크게 돌려 원을 그렸다.
“집안 행사 때 나타났거든.... 그것 까지는 좋았는데 술에 취해서 아무 남자한테나 춤추자고 그러고..... 킬킬 웃고 그러더니 테이블 위에 넘어져 버렸어. 푸훗. 그때 우리 엄마 모습을 봤다면 언니도 웃었을 거야. 음식에 범벅이 되서는 꼭 음식 많이 먹기 대회에 나온 사람처럼 보였거든.”
웃으면서 말했지만 진경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민아는 그냥 진경의 어깨를 잡아 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왔는데 화가 많이 난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 어릴 적부터 나한테는 곁을 주지 않던 할아버지라 소리 없이 현관에 서 있는데.... 우리 오빠가 귀를 막아 줬는데 다 들어 버렸어..... ‘바람 피워 딸자식을 낳아 온 것도 부족해서 집안 망신시키는 거냐. 자식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어렸어도 바람 피운다는게 뭔지 알았거든.... 킥킥 나 조신했나봐.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민아는 가만히 기대어 있는 진경의 몸을 살살 흔들었다.
“아니. 그럼 나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걸.”
“!”
진경은 민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란 눈을 치켜들었다. 자신 같은 고민으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을 줄을 몰랐었다.
“나도 그래.... 너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전혀 축복받지 못했거든.”
민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난 고매하시고 학식이 높은 우리 아버지 자식이 아니야. 엄마가 잠시 잠깐 한 눈 팔다가 생긴 버림받은 생명이거든.... 우리 아버진 단 한 번도 날 안아 준적이 없었어. 아마도.... 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아버지 자식이 아닌 걸 알았나봐.... 사랑받기 위해서 애교도 부리고 재미없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절대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고백을 하는 민아가 안쓰러웠는지 진경이 민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하면 서로의 상처가 보듬어 질 것 같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셨어. 내가 다쳤었거든. 쯧 그네 타고 놀다가 튕겨져 나가는 바람에 팔에 금이 가버렸어. 그런데 아버진 병원에도 나타나지 않았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셨거든. 정말 많이 서운하더라고 난 다쳐서 아픈 것 보다 마음이 아파서 울어버렸어. 그래서 엄마가 화가 많이 났나봐..... 너도 알지 그러다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진실을 알아버린 거지. 그때 우리 오빤 집에 없어서 내 귀는 못 막아 줬지만 항상 날 아껴줬어.”
“다행이다. 그래서 나와서 사는 구나.”
“응. 이제는 혼자 사는 게 편해.”
“그래도 엄마 아빠가 함께 사셨나봐.”
“동생들도 둘이나 있어.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우리 집에선 나만 아웃사이더야.”
“아빠도 의사라고 했잖아. 그래도 언니가 의사됐는데 싫어해?”
민아는 진경의 볼에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난 자식은 의사가 되기를 싫어했거든. 이상하게 집안에 하나 애물단지가 있잖아. 우리 집에선 그게 오빠였어. 공부는 잘했는데 의사는 싫다고 했거든.”
“그런데 언니가 의사가 되어 버려서 더 싫어했겠구나.”
“어. 그것도 무지.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군말 안하고 주시던 학비랑 용돈을 일체 끊어 버렸거든.”
“힘들었겠다. 어떻게 대학을 나왔어. 의대는 돈도 많이 들잖아. 오빠가 대 준거야?”
“아니. 우리 오빠도 의대를 가지 않겠다고 하는 덕에 일체의 원조가 없어져 버렸는걸. 나나 오빠나 열심히 아르바이트 했지. 다행이 과외해서 돈은 쏠쏠히 벌어서 크게 고생은 안했어.”
“그래도 많이 힘들었겠다. 난 오빠가 도와줬어. 난 공부도 못해서 과외 알바는 꿈도 못 꿨거든. 킥킥. 그런데 우리들의 아빠는 누구일까? 언니는 알아?”
“아니 몰라.”
민아는 눈에 슬픔을 가득 남고 술잔을 들이켰다.
“관심 없어. 유부녀가 꼬드겨 만나고 책임도 못 지는 사람인데 알아서 뭐하겠어.”
“맞다. 정말 그러네. 그런 사람 뭐 좋다고 그리워할까 난.”
“자자. 우리 음울한 과거는 잊어버리고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위해 건배.”
“건배.”
진경이 더 이상 술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자 민경은 진경을 편안하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진경아. 그런데 가끔은 있잖아. 아주 가끔은.... 내 친부가 누군인지 궁금해. 어디선가 날 보고 있는게 아닐까. 아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 너도 그렇겠지.”
“선생님?”
“네?”
“제 똥은 딸기 냄새가 나는데 선생님 똥에선 무슨 냄새가 나나요?”
새로 시작하는 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여전히 환자와 면담을 해야 하고 기록에 남겨야 심사과에서 귀찮게 하질 않았다. 사실 어떤 날은 할 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는데 청구 때문에 의무적으로 하고는 했다.
‘똥 냄새가 나지 뭔 냄새가 나겠니.’
“딸기...냄새요? 향기...롭겠네요. 전 평범해요.”
“그래요. 전 선생님 똥에선 향기로운 허브향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약 때문에 힘들지 않으세요?”
민아는 대화의 내용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가뜩이나 면담도 많은데 똥 냄새 때문에 시간을 버리고 있을 순 없었다.
“항상 먹는 초록색 알약과 작은 흰 알약들이 절 조금 괴롭히기는 하지만 병아리 색깔 귀염둥이 약하고 저에 심장을 닮아 붉은 정열의 약 덕분에 괜찮아요. 잠도 잘 오구요. 저에겐 붉은 색이 맞나 봐요.”
민아는 혹시나 환자의 약을 증량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약 색깔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에 남겨두었다.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거나 약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용량을 증량하거나 감량해야 하는데 같은 약이라도 색깔이 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써야 하는 경우가 이처럼 종종 있었다.
“하욱님?”
“왜요?”
“저기요. 제가 바빠서 그러는데 물 좀 담아 주실 수 있을 까요?”
“알았어요.”
거의 20명과 면담을 하자 손도 손이었지만 머리가 멍해져서 좀 쉬기 위해 면담실에서 나와 기지개를 폈다. 그 와중에 간호사가 환자에게 물을 떠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보여 그 환자를 찬찬히 지켜보았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굳이 할 것이 없어서였다.
“저기 저 환자 무슨 환자에요?”
“물 뜨고 계시는 분이요?”
오 간호사는 컴퓨터에서 잠시 눈을 떼고 민아가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환자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한참 컴퓨터에 오더를 입력하는 중이라 민아의 질문이 좀 귀찮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대답은 했다.
“네. 내 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
“병원장님이 주치의세요. 이하욱님이신데 만성정신분열증이요. 그런데 왜요?”
“물 담고 나서 뚜껑 닫기 전에 침을 뱉어서요.”
“예? 어머머머. 저거 간호사실 물인데....”
오간호사와 수간호사는 정수기에서 물을 담는 하욱의 등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구역질이 나오려는 듯 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저런 건 아니겠죠. 수 선생님?”
“내가 어떻게 알겠니. 속은 안 좋다.”
“보호사님. 가서 말 좀 해봐요.”
“내가 사건 하나 낼 줄 알았어. 다른 환자들이 하욱님이 뒤에서 치료진들 욕을 그렇게나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부터 물 떠달라고 부탁하면 안 되겠어요.”
아무말 안하고 있었지만 속이 안 좋은 건 민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병동에서 차 마시고 커피도 타마셨는데 지금껏 그 물 속에 환자의 타액이 스며들어 있었다니 경악할 만한 일이었지만 병동 식구들이 알아서 흥분을 하는 통에 그녀는 그럴 새도 없었다.